[include(틀:터키의 대외관계)] [include(틀:위구르의 관계)] [목차] == 개요 == [[터키]]와 [[위구르]]의 관계. 터키와 위구르는 같은 [[튀르크]]계, 서아시아 또는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문화권에 해당되는 공통점이 있어 민간 차원에서는 서로 형제, 친구처럼 친하게 지낸다. 터키는 돌궐, [[서돌궐]]을 본향으로 여기기 때문. 본 문서는 지나치게 [[범투란주의]]적인 관점을 지양하고 오늘날 터키의 전신에 해당하는 셀주크 튀르크, 오스만 튀르크 및 오늘날의 터키 공화국과 신장 지역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서술한다. == 역사 == === 고대 === 고대 말 서기 3세기부터 6세기 무렵까지 [[소그드인]]들의 상업 네트워크는 서쪽으로는 [[아르메니아]]에서 동쪽으로는 [[발해]]에 걸쳐 있었다. 오늘날 타림 분지와 투르판 일대의 [[토하리스탄#s-3|토하리스탄]] 역시 소그드 상인들의 주요 무역 거점으로 소그드 상인들은 [[동로마 제국]]이나 [[사산 왕조]] 페르시아에서 생산된 물자를 중국으로 수출하거나 아니면 중국산 물자를 역으로 서역으로 수출하면서 부를 축적하였다. === 중세 : [[셀주크 튀르크]]와 [[카라한 칸국]] === 중세 [[카라한 왕조]]는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에서 동튀르키스탄 서부에 이르는 지역에는 광활한 영토를 두었으며 서쪽의 [[타지크]]계 [[사만 왕조]]와 대치하는 상황이었다. [[시르다리야 강]] 상류로 이주한 [[오우즈]] 튀르크인들은 사만 왕조와 카라한 왕조 사이에서 양 측과 동맹과 전쟁을 반복하다가 서진하여 페르시아계 시아파 [[부와이흐 왕조]]를 제압하고 [[압바스 왕조|이슬람 칼리프]]의 보호자가 되면서 중동의 패권을 장악했다. 셀주크 제국이 압바스 칼리프를 직접 보호하기 이전에 [[튀르크어족|중세 튀르크어]]는 [[아랍어]]나 [[페르시아어]]에 비해 격이 다소 낮은 언어로 평가받았으나 셀주크 제국이 중동을 장악하고 [[니잠 알 물크]]의 선정을 통해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면서 중동 내 튀르크어의 위상도 상승하였다. 중세 튀르크어의 위상 상승을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중세 [[카슈가르]]에서 공부한 [[마흐무드 알 카슈가리]]이다. 카슈가르의 할리크 마드라사에서 공부한 마흐무드는 셀주크 제국의 초청으로 [[바그다드]]로 이주한 후 튀르크어 사전을 편찬하여 중세 튀르크어에 대한 상세한 비교대조 자료를 남겨 튀르크 민속학 및 언어학 확립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 마흐무드는 자신의 사전에서 여러가지 튀르크어 방언 중에서도 카슈가르 방언이 가장 훌륭한 방언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는데 그 이유는 해당 지역 방언이 가장 페르시아어 영향을 적게 받으면서도 어휘가 풍부한 순수한 튀르크어라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마흐무드는 자신의 사전에 삽입한 지도에서 이슬람의 중심지 [[메카]]와 [[메디나]], 예루살렘 대신에 자신이 수학했던 카슈가르와 발라사군을 중심지로 그려넣었다. 이는 기존의 아랍-이슬람적 사고방식와 구별되는 튀르크 연대의식을 표현한 것이기도 했다. === 근세 === [[오스만 제국]]의 술탄은 1517년부로 이슬람 순니파의 [[칼리파]]를 겸직하게 된다. 동튀르키스탄 일대의 무슬림들 역시 순니파였고 이들 역시 20세기 초반 오스만 제국의 술탄제가 폐지되기 전까지 공식적으로 오스만의 술탄들을 칼리파로 권위를 존중하는 입장이었다. 오늘날 터키의 주류 종파는 이슬람 순니파 중에서도 [[하나피파]] 마드하브인데 동튀르키스탄의 위구르인, 카자흐인, 키르기스인들 역시 마찬가지로 하나피파 [[마드하브]]에 속한다.[* 동튀르키스탄에서 순니파 하나피파 마드하브를 따르지 않는 집단은 비교적 소수로, 타지키스탄 국경 산악지대에서 [[이스마일파]]를 믿는 [[와키인]]과 [[사리콜인]]이 해당한다.] 본래 신장 동부 지역은 14세기까지만 해도 불교와 마니교가 우세했으나[* 서부 카슈가르와 호탄 일대는 상술한 [[카라한 칸국]]의 영향으로 비교적 더 일찍 이슬람화가 이루어졌다.] 15~16세기에 걸쳐 신장 지역은 [[모굴리스탄 칸국]]의 [[지하드]] 및 [[수피]]들의 이슬람 선교로 불교를 믿던 위구르인들이 이슬람 하나피파로 개종하면서 이후 위구르인과 터키인들은 종교적으로 강력한 공통 분모를 가지게 되었다. 근세 당시에는 위구르인과 터키인이 이슬람으로 연대하는 현상이 지리적 위치 차이로 강력하지는 못했지만 종교적 영향력과 권위는 무시할 수 없었고 이러한 영향은 근대, 현대 위구르 민족주의 발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 근대 === [[로도스 섬]] 출신 터키인 교사 아흐마드 카말이 [[카슈가르]]에 터키식 신식 학교에서 교육 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아흐마드 카말은 당시 신장성을 다스리던 군벌 [[양쩡신]]에 이해 체포당했으나, [[후이족]]들의 중재로 학교에서 중국어도 같이 가르친다는 조건 하에 풀려나서 학교 운영을 지속할 수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신장(신강)]] 전역에 터키식, [[타타르]]식 신식 학교들이 세워지게 되었다. 신식 학교에서 공부한 [[위구르인]] 지식인들은 이후 [[동튀르키스탄 제1공화국]], [[동튀르키스탄 제2공화국]]의 민족주의를 주도하는 세력이 되었다. === 현대 === 중화인민공화국이 동튀르키스탄을 장악하자 수많은 위구르인들은 소련의 중앙아시아 일대로 도망치기도 했지만 더 멀리 터키까지 피난가기도 했다. [[동튀르키스탄 제2공화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합병을 선언하자 부주석이었던 이사 유수프 알프테킨(ئەيسا يۈسۈپ ئالپتېكىن, Isa Yusuf Alptekin)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이에 반대해 터키로 망명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위구르인들은 터키로 망명하여 터키에는 수많은 위구르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위구르인들의 해외 비자 발급을 최대한 제외하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 오늘날 터키에는 약 6만여 명에 달하는 위구르인들이 이주정착한 상황이다. 이스탄불이나 앙카라를 포함한 터키 대도시 각지에는 위구르인 이민자들이 [[위구르 요리]]를 취급하는 레스토랑들이 성업 중이기도 하다. 터키는 중국의 행동들을 비난하지만 중국과의 외교로 인한 무역에도 의존하기에 무작정 [[반중]]만 외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터키는 현재 터키 안에 거주하는 위구르인들을 위한 각종 복지정책들을 펼치고 있으며, 터키의 위구르인들은 [[터키어]], [[위구르어]] 모두 잘한다. 터키 극우와 친한 몇몇 위구르계 반중 인사들의 경우 [[아르메니아]]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독일로 이주한 위구르인 난민들은 [[터키계 독일인]]들의 지원을 많이 받는다. 위구르 망명정부에 해당하는 [[세계 위구르 회의]] 역시 터키계 독일인들의 지원을 받기 유리한 [[독일]]에 본부를 두고 있다. == 관련 문서 == * [[터키/외교]] * [[위구르/대외관계]] * [[동튀르키스탄 독립운동]] * [[터키-우즈베키스탄 관계]] * [[튀르크]] * [[이슬람교]] * [[터키인]] / [[위구르|위구르족]] * [[터키어]] / [[위구르어]]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동아시아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서아시아 국가]]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남유럽 국가]]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위구르/대외관계, version=16, paragraph=5)] [[분류:터키의 외교]][[분류:위구르족]][[분류:다중 합의/87]][[분류:지역·국가 관계]][[분류:나무위키 외교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