泰評 생몰년도 미상 [목차] == 개요 == [[태봉]]과 [[고려]]의 [[문신]]. == 생애 == 생몰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기록에 의하면 [[후삼국시대]] [[호족]] [[유긍순]](柳矜順)의 기실(記室)이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비서]] 겸 서기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궁예]]가 유긍순이 다스리던 염주에 쳐들어와 그의 세력을 무너뜨렸고 태평 역시 궁예에게 [[항복]]했으나 오랫동안 항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궁예가 태평을 군졸에 예속시켰다고 한다.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태조(고려)|왕건]]을 만나 왕건의 휘하에서 활동하다가 고려 개국에 공을 세우고 918년 순군낭중에 임명되었다.[* 출처: 고려사 열전 왕순식 부 태평, 동국통감 권12 신라기] 순군낭중 이전에는 기졸(騎卒: 기병)로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아마 왕건을 전쟁터에서 수행하는 동시에 궁예를 몰아낸 반정에도 참여하지 않았나라고 추측된다. == 대중매체에서 == === 태조 왕건 === [include(틀:스포일러)] 몇 줄 기록밖에 없는 인물이지만 2000년작 [[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상상력을 더해 [[왕건(태조 왕건)|왕건]]의 [[책사]]로 등장하며 [[천재]] 군사 [[참모]]로 묘사되었는데 [[배우]]로는 [[김하균]]이 연기했다.[* 이후에 등장하는 [[사극]]에서는 태평같은 [[선역]]보다는 [[악역]]이거나 좋지 않은 [[캐릭터]]로 자주 등장했다. [[대조영(드라마)|대조영]]에서는 [[고구려]] 간신인 [[부기원]], [[비밀의 문]]에서는 [[노론]] 김상로, [[무인시대]]에서는 [[김광립]],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명나라]] 장군 [[진린]], [[광개토태왕(드라마)|광개토태왕]]에서는 [[탐관오리]] 가렴, [[징비록]]에서는 [[양호(명나라)|양호]]를 연기했다. 선역으로 나온 것들 중에는 [[천추태후(드라마)|천추태후]]에서 [[현종(고려)|현종]]의 [[스승]]인 최항, [[대왕의 꿈]]에서 신라 [[진평왕]]을 맡았는데 문제는 두 드라마가 다 결과가 좋지 않다.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에서는 [[조선]] 중기의 명재상 [[최명길(조선)|최명길]]로 등장한다.] 처음 등장은 제79회로 왕건이 [[상주시|상주]]를 공략해 [[후백제]]의 허를 찌르려는 [[전략]]을 수립할 때 작전 회의 말미에 있던 군졸로 나오는데 군졸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전략을 건의해 왕건에 의해 전격 발탁되었다. 이 때 설명하며 나온 장면을 보면 다른 병졸들 사이에서 쉴 때마다 혼자 [[책]]을 읽는다.[*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태평의 책략은 [[이론]]만을 익혀 나온 것이 아니라 군졸로서 보고 겪은 실전들을 토대로 나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군대]]의 가장 기본적이자 필수적인 요소인 군졸로서의 [[경험]]이 책을 보고 익힌 전략 전술의 이론과 만나 시너지를 발휘한 셈이다.] 왕건은 태평의 책략을 이용해 조령과 죽령을 빼앗는데 성공했고 이후 태평은 왕건의 책사가 되었다. 왕건이 태평을 총애하는지 제84회에 왕건 및 왕건의 [[의형제]]들과 함께 [[목욕]]을 즐기는 모습도 나온다. 왕건이 [[철원군|철원]]에 복귀한 이후 [[아지태]]가 찾아와 [[반역]]을 제의하고 돌아가자 아지태를 여러모로 비범한 사람임이 확실하다고 평했으며 왕건에게 살고 싶다면 아지태와 손을 잡거나 어떻게든 전장터로 나서야 한다고 간언한다. 물론 왕건이 절대 아지태와 손잡을리가 없기에 [[종간(태조 왕건)|종간]]이나 [[은부]]에게 공격당하고 싶지 않다면 빨리 전장터로 나가라는 얘기. 때마침 후백제가 [[나주시|나주]]를 공격하여 왕건이 다시 나주로 가게 되었으며 이후 [[견훤(태조 왕건)|견훤]]이 나주를 수복하기 위해 대규모의 [[수군]]을 몰고 쳐들어왔을 때는 화공을 위해 천문을 [[연구]]하고 남동풍을 불게 하는데 영락없이 [[제갈량]]이다.[* 극 중에서 제갈량을 언급하기까지 한다. "어떻게 남동풍을 불게 했을까 연구를 하다 알게 되었습니다"라는 것이 태평의 해설이었다. 제146회에서도 [[최지몽]]과 함께 병문안을 온 최응도 병부령은 제갈량과 같은 인재라고 위로하며 쾌유를 바랬다.][* 당시 김하균은 [[김형일(배우)|김형일]]([[신숭겸|능산]] 역), [[김학철(배우)|김학철]]([[박술희]] 역)과 함께 컨셉으로 [[에어컨]] 광고도 찍었다.] 이후 왕건에게 [[역성혁명]]을 일으킬 것을 종종 설득하기도 했고 왕건이 [[시중]]으로 있을 때는 [[비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이후에는 병부의 수장인 [[병부령]]으로 임명되었는데 이후 참가한 [[조물성 전투]]에서 대대적으로 창궐한 [[전염병]]에 감염되는 바람에 그만 죽고 만다. 이 때 군사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창궐하는 가운데 그에게 본격적으로 증상이 나타나 물을 찾으며 절규하는 모습은 [[충격과 공포]]. [[안습]]한 것은 조물성 전투가 본격적인 고려와 후백제 간의 첫 전투였다는 점이다.[* 역성혁명 이후부터 [[아자개]]의 귀부, [[개성특별시|송악]] 환도까지는 별다른 전투가 없었고 태자 [[혜종(고려)|왕무]]와 박술희가 이끄는 고려군과 [[신검(태조 왕건)|신검]] 형제들과 [[애술]] 등이 참전한 후백제군의 전투는 전초전 성격이었던만큼 왕건이 친정을 나온 조물성 전투가 본격적인 고려와 후백제 간의 첫 전투라 볼 수 있다.] 왕건이 [[통일]]의 대업을 이루는 것을 보지 못했기에 차마 눈을 감을 수가 없다며 눈을 뜬 채로 죽었다. 임종하면서 태평은 "신이 죽은 뒤에는 신보다도 더 총명하고 학문과 기지가 뛰어난 천재인 내봉성령 최응을 크게 쓰시옵소서"라며 [[최응]]을 중히 쓰라는 말과 최응에게도 "폐하가 대업을 이루는 것은 그대의 손에 달려있다"며 뒷일을 부탁하는 유언을 남겼다.[* 이 때문에 태평을 다소 일찍 극에서 은퇴시킨 것은 결국 왕건의 책사로서 최응을 부각시키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도 있다.] 태평의 [[사망]]에 왕건과 최응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 했지만 태평의 계책으로 나주 수복전에서 수군도 크게 피해를 입고 [[능창|수달]]을 잃는 등 막심한 손해를 입었던 견훤은 태평의 [[부고]] 소식을 듣자 10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간다느니 속이 다 시원하다며 크게 웃었다.[* 고려군에게까지 대놓고 그런건 아니고 이후 견훤과 왕건과의 만남을 주선하러 간 [[최승우]]에게 시켜 '애도의 뜻을 표한다'라고 하기는 했다. 한편 후백제 진영에서는 [[견금강]]이 전염병에 걸렸지만 살아남았다.] 태평이 사망한 이후 최응이 병부의 수장이 되어 왕건을 보필하지만 결국 최응마저도 병으로 젊은 [[나이]]에 병사해 고려는 한동안 이들의 공백을 어느 정도 실감해야 했다. [[삼년산성]]에서 패배한 이후(제165회)에 지난 [[공산 전투]]에서의 뼈아픈 패배를 겪은지 얼마 되지도 않은지라 왕건은 크게 상심하며 "태평 군사를 잃고... 내 아우 신숭겸이를 잃었어!(생략)"이라는 대사를 하는데 왕건에게는 태평을 일찍 떠나보낸게 큰 손해였을 것이다. 극 중 최승우가 [[삼국지]]의 제갈량을 [[모티브]]로 했다면 태평은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그리워하던 [[곽가]]가 모티브인듯 하다. [각주] [[분류:고려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