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wutai (? ~ ?) 생몰년도 미상 [[몽골 제국]]의 장수로 [[고려]] 측 사서에서는 당고(탕쿠, 唐古, tanggu), 원사에서는 당올(唐兀), 당올태(唐兀台), 당올대(唐兀臺)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1231년 8월에 몽골의 사신인 저구유가 살해된 사건으로 원수인 [[살리타이]]를 따라 고려를 침공하기 시작하면서 [[푸타우]](포도), 디주(적거)와 함께 서로군을 이끌고 남하하다가 [[동선역 전투]]에서 [[채송년]]이 이끄는 고려군을 기습하지만 [[이자성]], [[이승자]], [[노탄]] 등의 항전으로 패한다. 동선역의 패배로 어쩔 수 없이 후퇴해서 살리타이와 합류하면서 안북도호부에 주둔하였다가 11월 29일(12월 24일)[* 이하 괄호 안의 날짜는 모두 양력.]에 살리타이가 이끄는 3군과 함께 개경을 포위할 때 포리에 진을 쳤으며, 살리타이가 강화 제의를 하자 12월 16일(1월 9일)에 고려 조정에서 사신으로 파견된 회안공 [[왕정]]에게서 선물을 받았다. 12월 26일(1월 19일)에도 고려 조정에서 파견된 사신에게 선물을 받았으며, [[고려]]와의 싸움이 귀주성, 자주성 등의 항전으로 장기화되어 강화 협상을 맺자 살리타이와 함께 1232년 4월에 철수하였다. 그러나 8월에 다루가치에게 욕보였다는 것과 강화로 수도를 천도한 것 때문에 원수인 살리타이를 따라 고려를 또다시 침공하였다가 12월에 살리타이가 처인성에서 전사하자 철수하였다가 1235년에 고려에서 원나라로 귀순한 동경총관 [[홍복원]]의 도움을 받아 용강, 함종 등 10여성을 함락하면서 경상도를 침입하였다. 1236년에 전라도, 1237년과 1238년에 걸쳐 경상도의 경주로 침입하여 [[황룡사]]를 불태웠다. 고려의 군민들이 온수군, 죽주 등에서 항전하면서 1238년 12월에 장군 [[김보정]], 어사 [[송언기]] 등을 사신으로 보내서 강화를 요청하자 1239년 4월에 국왕의 출륙을 요구하면서 철수하였다. 이 때 고려 조정에서 국왕 대신에 신안공 [[왕전]]을 보냈으며, 1241년 4월에는 [[이시]](伊恃), [[합라]](合剌), [[아질]](阿叱) 등 4명, 8월에는 이시, 합라, 아질 등 8명의 사신을 고려에 파견하였다. [[분류:몽골 제국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