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1839년]]부터 [[1876년]]까지 실시된 [[오스만 제국]]의 개혁 정책으로, '''은혜 개혁'''으로도 불린다. == 과정 == [[술탄]] [[압뒬메지트 1세]]가 [[1839년]] [[11월 3일]]에 '장미의 방 칙령'을 선포함으로써 탄지마트 개혁을 선포했다. 탄지마트 후반기에 엘리트 관료 출신인 미트하트 파샤가 주도했으므로, '미트하트 헌법'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기본적으로는 과거 [[셀림 3세]]가 추진했다 실패했던 [[니자므 제디드]] 개혁과, [[마흐무트 2세]]가 추진하여 어느 정도 성과를 보았던 서구화 개혁을 계승한다. 이 두 개혁의 대상이었던 행정, 사법, 군제, 토지부문 전반에서 '''과거보다 더 급진적인''' 개혁이 추진되었으며, 개혁의 방향은 당연히 당시 잘나가던 서유럽 문화권의 모방이었다. 주된 내용으로는 [[입헌군주제|의회 권한의 신장, 백성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헌법의 제정]], [[징병제|군대의 징집 방식과 복무 기간의 설정]] 등이 있었다. 하지만 헌법으로 인해 술탄의 권한이 축소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압뒬하미트 2세]]가 [[1877년]] [[러시아-튀르크 전쟁#s-13|12차 러시아-튀르크 전쟁]]을 구실로 헌법을 정지하고 [[의회]]를 해산하는 등 전제정치를 부활시키며 개혁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이후 [[청년 튀르크당]]이 헌법의 부활을 요구하며 봉기해 압뒬하미트 2세를 퇴위시키고 헌법과 의회를 부활시킨 뒤 개혁을 재추진하기는 했지만 극단적인 튀르크 [[민족주의]]로 인해 내외적인 반발을 샀고,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독일 제국|독일]] [[동맹국|편에 붙었다 패배하는 바람에]] 개혁은 결정적으로 실패, 결국 오스만 제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 관련 문서 == * [[오스만 제국]] * [[니자므 제디드]] * [[변법자강운동]] [[분류:오스만 제국의 역사]][[분류:19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