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tablealign=center><tablewidth=400><tablebordercolor=#DC143C><tablebgcolor=#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DC143C 0%, #DC143C 20%, #DC143C 80%, #DC143C)" '''{{{#fff 북위 추존 황제}}}[br]{{{#fff {{{+1 文皇帝 | 문황제}}}}}}'''}}} || ||<:><width=20%><colbgcolor=#DC143C>'''[[묘호|{{{#fff 묘호}}}]]'''||<:>없음|| ||<:>'''[[시호|{{{#fff 시호}}}]]'''||<:>문황제(文皇帝)|| ||<:>'''[[성씨|{{{#fff 성}}}]]'''||<:>탁발(拓跋)|| ||<:>'''[[휘|{{{#fff 휘}}}]]'''||<:>사막한(沙漠汗)|| ||<:>'''{{{#fff 생몰 기간}}}'''||<:>? ~ 277년|| ||<|2><:>{{{#fff '''재위 기간'''}}}||<bgcolor=#DC143C><:>'''{{{#fff 탁발부의 수령}}}'''|| ||<:>? ~ 277년|| [[탁발부]] [[선비족]]의 인물. [[탁발역미]]의 아들. 261년에 [[위(삼국시대)|위나라]]의 낙양으로 가서 조공을 바치고 낙양에 머물렀으며, 위나라가 멸망하고 새로 건국된 [[서진]]에서는 이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산서 북부의 땅을 주어 살게 했다. 진나라 조정에 입조해 공물을 바쳤고 275년 6월에 아버지 탁발역미가 늙었다는 이유로 탁발사막한이 돌아가려고 했는데, [[위관#s-3]]이 상표해서 탁발사막한은 낙양에 억류되었다. 그러면서 위관이 선비 부락의 대인들을 매수해서 이간했다. 277년에 탁발사막한은 자신의 부락을 돌아가고 위관은 그를 대신해 다른 인질을 억류했으며, 탁발역미의 아들들은 모두 총애를 받았고 각 대인들이 탁발사막한을 참언해서 살해당했다. 훗날 북위가 건국되자 문제로 추존되었다. 위관의 계략으로 탁발사막한이 죽은 이 사건으로 인해 내분이 일어나면서 탁발록관 이전까지는 세력이 크게 약화된다. [[분류:탁발선비]][[분류:남북조시대의 추존 황제]][[분류:277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