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USS_Kearsarge_in_great_white_fleet_1908.jpg]] ||<-2><table align=center><bgcolor=#155759> [[키어사지급 전함|{{{#white 키어사지급 전함}}}]] || ||[[키어사지]]||[[켄터키(전함)|켄터키]]|| [목차] == 제원 == ||전장||114.38m|| ||전폭||22.02m|| ||높이||7.14m|| ||기준배수량||11,540t|| ||최대출력||불명|| ||최대속력||16kt|| ||항속력||불명|| ||무장||33cm포 4문, 20.3cm포 4문, 15.2cm포 14문, 57mm포 20문, 37mm포 6문, 7.62mm 기총 4기, 45.7cm 어뢰발사관 4문|| ||탑재기 수||없음|| ||승원||553명|| ||동형함||켄터키|| == 개요 == 키어사지는 [[키어사지급 전함]]의 1번함 (네임쉽)으로, 1896년 6월 30일에 [[버지니아주]] 뉴포트 뉴스 조선소에서 기공해 1898년 3월 24일 진수 후 1900년 2월 20일에 초대함장인 윌리엄 M. 홀저 대령의 지휘하에 취역했다. == 활동 == 키어사지는 취역 후 북대서양 기지의 기함이 되어 대서양 연안과 카리브 연안을 순항했다. 1903년 6월 3일부터 7월 26일에 [[독일]]의 킬 군항을 방문하며 유럽을 순방한 키어사지는 6월 26일에 독일 황제이던 [[빌헬름 2세]], 7월 13일에 [[영국]]의 웨일즈 대공(훗날 조지 5세)이 방문했다. 7월 26일에 메인 주로 돌아간 키어사지는 북대서양 함대의 기함임무로 복귀했다. 1903년 12월 1일에 [[쿠바]]의 관타나모 만을 향하여 뉴욕을 출항한 키어사지는 12월 10일에 관타나모에서의 미국의 법적권리를취득한 후 카리브 해에서 훈련 후 다시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방문하여 1904년 6월 11일에 카를로스 1세 국왕의 시찰을 맞이했다. 그 후 그리스를 방문해 7월 4일에 그리스 국왕인 게오르기우스 1세 일가의 방문을 받았다. 이후 키어사지는 코르프, 트리에스테를 친선방문 후 1904년 8월 29일에 뉴 포트로 돌아왔다. 키어사지는 이후에도 기함임무를 계속하여 1906년 3월 31일에 전함 <메인>과 기함임무를 교대한 후 훈련에 종사했는데 1906년 4월 13일에 쿠바의 크루즈 만에서 사격훈련 도중 13인치 주포의 장약이 폭발하면서 장교 2명과 수병 8명이 사망하고 4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를 냈다. 그 후 키어사지는 제 2전대 제 4부대에 배속되어 1907년 12월 16일에 세계순방에 나섰다. 순방에 나선 함대는 햄튼 로즈를 출항해 남미를 돌아 [[하와이]],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일본]]을 방문했다. 이어서 실론을 방문한 후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 지중해의 각 항구를 거친 다음 미국 동해안으로 귀환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1909년 2월 22일에 햄턴로즈를 방문하여 함대를 관람한 뒤 미국의 국위를 선양했다고 선전했다. 키어사지는 1909년 9월 4일에 필라델피아 해군조선소에서 예비역이 되어 근대화 개장공사를 받았다. 함교는 새장식 마스트로 바꾼 후 1915년 6월 23일에 재취역했다. 재취역한 키어사지는 대서양 연안에서 9월 17일까지 훈련에 종사한 후 멕시코로 이동해 베라크루즈의 해병대를 싣고 귀국했다. 키어사지는 1915년 9월 28일부터 1916년 1월 5일까지 베라크루즈와 버지니아 주 뉴올리언즈를 오가며 해병대를 실어날랐다. 그 후 필라델피아에서 1916년 2월 4일에 태평양 예비함대로 편입된 후 키어사지는 미국이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전까지 메사추세츠 주와 메인 주의 해군 주립병 훈련함이 되었다. 그 후 1918년 8월 18일 밤에 키어사지는 독일의 UE2형 잠수함인 U-117에 공격당해 침몰한 노르웨이 범선의 생존자 26명을 구조한 후 이들을 [[보스턴]]까지 송환했다. 키어사지는 기관원들의 연습함으로 이용되어 1919년 5월 29일까지 임무를 마친 후 해군사관학교의 사관후보생들을 태우고 서인도 제도로 연습항해에 나섰다. 그 후 필라델피아로 향한 키어사지는 1920년 5월 10일에 퇴역하여 크레인 선으로 개조되었다. 1920년 8월 5일에 키어사지는 새로이 <AB-1>이라는 선명이 주어졌다. 키어사지는 무장을 철거한 후 250톤의 대형 선회식 크레인을 장비했다. 선체엔 벌지가 장착되어 안정성이 향상되었다. 키어사지는 그 후 20여년간에 걸쳐 다양한 작업에 종사했는데 가장 유명했던 작업은 1939년에 뉴 햄프셔 주에서 침몰한 잠수함 <스퀼러스>의 인양이었다. 1941년 11월 6일에 키어사지는 <기중기선 1호>로 개명되어 제 2차 세계대전시 미군전함 <인디애나>, <앨라바마>, <서배너>, <시카고> 및 각종 항공모함과 순양함 등의 수리와 보급을 담당했다. 1945년에 샌프란시스코 해군조선소로 이동해 항모 <호넷>, <복서>의 건조와 <사라토가>의 수리에도 공헌한 키어사지는 전후인 1955년 6월 22일에 제적된 후 그해 [[8월 9일]]에 매각되어 해체된다. [[분류:전함]][[분류:선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