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목차] ||<-2><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000034><table width=400><bgcolor=#000> {{{+1 '''{{{#white Knut Pedersen Hamsun }}}'''}}} || ||<-2><bgcolor=white>[[파일:크누트 함순.jpg|width=100%]]|| ||<-2><bgcolor=#000>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width=30]]''' [[노벨문학상|{{{#white '''192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 ||<bgcolor=#000> '''{{{#white 본명}}}''' ||<bgcolor=white> Knut Pedersen Hamsun (크누트 페데르센 함순) || ||<bgcolor=#000> '''{{{#white 국적}}}''' ||<bgcolor=white>[[노르웨이]] [[파일:노르웨이 국기.svg|width=28]]|| ||<bgcolor=#000> '''{{{#white 출생}}}''' ||<bgcolor=white>[[1859년]] [[8월 4일]] [[스웨덴-노르웨이 연합 왕국]] 구드브란스달 || ||<bgcolor=#000> '''{{{#white 사망}}}''' ||<bgcolor=white>[[1952년]] [[2월 19일]] (향년 92세), [[노르웨이]] 그림스타드 || ||<bgcolor=#000000> '''{{{#white 직업}}}''' ||<bgcolor=white>[[소설가]]|| == 소개 == 노르웨이의 작가이다. [[토마스 만]],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 당대의 대문호들에게 칭송을 받았지만, 말년에 히틀러를 예찬한 끝에 모든 명예를 잃고 가난 속에 생을 마감했다. == 생애 == 1859년 [[노르웨이]]의 구드브란스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크누드 페테르센. 1862년에 가족 모두 노르웨이 북부 하마뢰위에 있는 함순으로 이사했는데, 훗날 이 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한다. 가난 때문에 9살의 나이로 삼촌 집으로 가서 일을 도왔는데, 삼촌이 [[파킨슨병]]을 앓고 있어 어린아이의 몸으로 음식뿐 아니라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했고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웠다가는 삼촌에게 매질을 당하기 일쑤였다. 이렇게 5년을 보낸 후 청소년기에는 상점 점원, 제화공, 잡상인 등의 직업을 전전했다. 1876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26세 되던 해 형편이 나아질까 싶어 미국으로 건너가 체류했으나. 임시직 노동자만 전전한 끝에 1885년 미국생활을 접고 노르웨이로 귀국했고 이때부터 그는 크누트 함순이란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1년 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으나 이번에도 정착에 실패하고 덴마크의 [[코펜하겐]]으로 거처를 옮겼다. 1890년 『굶주림』이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노르웨이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신비』 『목신 판』 등을 발표했고 . 1898년 연애소설 『빅토리아』를 출간해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1911년 농장을 구입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시대의 아이들』 『세겔포스 마을』 『땅의 혜택』 등 목가적인 작품을 주로 썼다. 그중 대표작으로 꼽히는 『땅의 혜택』은 문명의 공허함 안에서 인간성을 되찾고 위대한 자연과 하나가 되어 순수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작가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함순이 1920년 [[노벨문학상]]을 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함순은 친 [[나치]] 인사가 되었다. 1940년 4월 9일 히틀러가 [[노르웨이 침공|노르웨이를 침략]]하자 함순은 전단지에 '''영국의 노골적인 침략 위협에서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 독일이 왔다'''고 썼다. 그 뿐만 아니라 동년 9월 28일에는 노르웨이 동포들을 위해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무기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라! 독일인들은 우리 모두를 위해 싸우고 있고, 이제 영국의 폭정을 완전히 박살낼 것이다! 당연히 노르웨이 국민들과 문학계는 함순의 이 망언에 분개했으나 함순은 아랑곳하지 않고 히틀러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고, 심지어 히틀러가 자살한 직후 그는 아직 독일군 통제 아래 있던 라디오 방송에 나와 히틀러를 추도했다. 전쟁이 끝난 후 반역 혐의로 체포되어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되었다. 1947년 벌금형을 받아 재산의 대부분을 벌금으로 낸 후 집으로 돌아왔고, 1949년 『풀이 무성한 오솔길에서』를 출간했다. 1952년 92세로 사망했다. [[분류:노르웨이의 소설가]][[분류:파시스트]][[분류:1858년 출생]][[분류:1952년 사망]][[분류:모더니스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