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일본 시코쿠 지방의 도시, rd1=고치시)] [[파일:Kochi_Skyline.jpg]] [목차] == 개요 == [[영어]] Kochi / Cochin [[말라얄람어]] കൊച്ചി [[인도]] 서남부 [[케랄라]] 주의 항구 도시. [[마두라이]]에서 서쪽으로 170여km 떨어져 있고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100km 가량 거묜 [[코지코드]] (캘리컷)이 나온다. [[향신료]] 무역의 중심지로서 아랍 상인들이 드나들다가 16세기부터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서구 세력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유럽식 건축물이 여럿 남아있고, 현재 인구는 62만명이다. == 역사 == '''[[캘리컷]][* 현재 이름은 코지코드]와 함께 [[대항해시대]] 서유럽 상인들의 목적지''' 코친은 1102에 [[체라 왕국]]에서 독립한 코친 왕국의 수도가 되었는데, 14세기 후반부터 [[말라바르]] 해안의 주요 항구로 각광받기 시즉하였으며 15세기 초에는 [[정화]]가 이끄는 [[명나라]] 함대가 방문하기도 하였다. 1500년 12월, [[바스코 다 가마]]에 이어 두번째로 인도로 파견된 [[페드로 알바레스 카브랄]]은 캘리컷 대신 코친에 도착하였다. 그는 캘리컷에서 이미 힌두-무슬림 군대에게 쫓겨난 상태였지만 캘리컷의 간섭을 싫어하던 코친의 군주와 동맹을 맺을 수 있었다. 코친은 1503년부터 총독 (초대는 바스코 다 가마였다)이 파견되어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토착 지도자인 라자는 꼭두각시에 불과하였다. 1503년에 코친에는 성당과 요새가 지어졌는데, 전자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은 남아시아 최초의 그리스도교 예배당이고 바스코 다 가마가 묻힌 곳이기도 하다. [[베트남]] 남부 [[사이공]] 일대의 19세기 지명인 [[코친차이나]]는 인도의 코친과 어원이 다른데, [[코친차이나]]는 포르투갈 상인들이 베트남 지역을 가리키던 말레이어 Kuzhi에서 따온 이름이다.[*2 한편 Kuzhi는 베트남 북부에 설치되었던 중국의 [[삼국지/지명#s-2.7.5|교지군]]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한다.] 다만 두 지명이 아예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포르투갈인들이 인도의 코친과 구분하기 위해 베트남 지역에는 차이나라는 말을 덧붙인 것이기 때문. [[분류:인도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