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000000><bgcolor=#ffffff> '''{{{#000000 켄 그리피 시니어의 수상 경력}}}''' || ||<bgcolor=#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3>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 ||<bgcolor=#c6011f> '''[[1975년 월드 시리즈|{{{#ffffff 1975}}}]]''' ||<bgcolor=#c6011f> '''[[1976년 월드 시리즈|{{{#ffffff 1976}}}]]''' || ---- ||<-5> '''1980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MVP]]''' || || 데이브 파커[br]([[피츠버그 파이리츠]]) || → || '''켄 그리피 시니어[br]([[신시내티 레즈]])''' || → || [[게리 카터]][br]([[몬트리올 엑스포스]]) || ---- }}} || ---- ||<-2><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000000>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cut_111.jpg|width=100%]]}}} || ||<-2><bgcolor=#ffffff> '''{{{#000000 조지 케네스 "켄" 그리피 시니어}}} [br] {{{#000000 (George Kenneth "Ken" Griffey Sr.) }}}''' || ||<bgcolor=#ffffff> '''{{{#000000 생년월일}}}''' || 1950년 4월 10일 || ||<bgcolor=#ffffff> '''{{{#000000 국적}}}''' || [[파일:미국 국기.svg|width=25]] [[미국]] || || 신체 || 182.9cm 90.7kg || ||<bgcolor=#ffffff> '''{{{#000000 출신지}}}''' || [[펜실베이니아]]주 도노라 || ||<bgcolor=#ffffff> '''{{{#000000 가족}}}''' || 아들 [[켄 그리피 주니어]] || ||<bgcolor=#ffffff> '''{{{#000000 포지션}}}''' || [[외야수]], [[1루수]] || ||<bgcolor=#ffffff> '''{{{#000000 투타}}}''' || [[좌투좌타]] || ||<bgcolor=#ffffff> '''{{{#000000 프로입단}}}''' || 1969년 드래프트 29라운드 [[신시내티 레즈]] 지명 || ||<bgcolor=#ffffff> '''{{{#000000 소속팀}}}''' || [[신시내티 레즈]](1973~1981) [br] [[뉴욕 양키스]](1982~1986) [br] [[애틀랜타 브레이브스]](1986~1988) [br] [[신시내티 레즈]](1988~1990) [br] [[시애틀 매리너스]](1990~1991) || == 소개 == ||<table align=center><width=52.5%> [[파일:external/bapple2286.files.wordpress.com/vintage-griffey.jpg|width=400]] || [[파일:external/mlblogsmartelli.files.wordpress.com/griffey-jr-and-sr.jpg|width=400]] || || 빅 레드머신의 일원이었던 시절 || [[켄 그리피 주니어|아들]]과 함께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동했던 외야수로, [[켄 그리피 주니어]]의 아버지이다. 어린 시절 미식축구, 농구, 육상 등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특히 고등학생 때 지역 내 최고의 [[와이드 리시버]]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1969년 드래프트를 앞두고 여자친구가 임신을 하면서 흥미를 덜 가졌던 야구로 진로를 정하게 됐다. 그리하여 1969년 6월 드래프트 29라운드로 [[신시내티 레즈]]에 지명되어 프로야구선수로서 첫발을 내딛였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여자친구가 아들을 출산했으니, 그가 바로 [[켄 그리피 주니어]]다.([[켄 그리피 주니어|아들]]과의 나이차이가 겨우 19살에 불과하다.)[* 공교롭게도 아들인 주니어마저 사고쳐서 19살에 딸을 출산했다...쉽게 말해 은퇴도 하기 전에 할아버지가 됐다. 현재는 무려 '''[[증조할아버지]]'''다. 그나마도 주니어의 딸과 아들은 어느정도 나이가 들어서(라고 썼지만 주니어의 아들 트레이도 26세에 결혼했다.) 결혼을 했기 때문.] 1976년 내셔널리그 타격 순위 2위에 오르고 통산 3차례나 올스타에 선정되는 등 MLB에서 충분히 두각을 나타낸 선수였다. 특히나 [[신시내티 레즈]] 시절에는 '''빅 레드머신'''의 주축으로 활약했고[* 1990 시즌을 레즈에서 시작하다 시즌 중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했다. 만약 매리너스로 이적하지 않았다면 빅 레드머신 시절을 경험한 유일한 우승멤버였을 뻔 했다. 어쨌든 포스트시즌 경력은 아들보다 더 화려한 셈.] 그 덕에 [[뉴욕 양키스]]로 이적하게 된다. ~~하지만 시니어가 양키스로 간 때는 양키스의 암흑기 시절~~ 통산 2143안타와 .296의 타율을 기록하였다. 1980년 올스타게임 MVP이기도 하다. ||[youtube(/vCk1UY5Afus)]|| 말년에는 레즈에서 방출된 후 아들이 있던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뛰었는데, '''아들과 함께 연속타자 홈런'''을 기록하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만 40세에도 메이저에서 뛸 정도의 좋은 타자였고, 아들은 시대를 풍미한 재능으로 19세부터 메이저 풀타임 주전으로 뛰었기에 가능했던 초유의 진기록. 물론 상술했듯 시니어가 주니어를 너무도 일찍 낳은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 심지어 주니어도 딸을 너무도 일찍 낳아서 이 때는 무려 손녀가 있었다!!] 현역 통산 기록은 타-출-장 .296-.359-.431, 152홈런, 200도루를 기록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콜로라도 로키스]], 친정팀인 [[신시내티 레즈]]에서 타격코치를 지냈다. 그리고 [[LG 트윈스]]의 타격 인스트럭터를 맡기도 했으며 [[정의윤]]을 [[호세 칸세코]]와 비교하면서 좋은 타자감이라 칭찬한 일화가 있다. 현재는 신시내티의 싱글A팀 감독을 맡고 있다. == 가족관계 == 현역시절 한 시대를 풍미한 강타자로 이름이 나 있지만, 한편으로 [[켄 그리피 주니어]]라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을 낳은 아버지로도 유명하다. 아들과 함께 현역 선수로 뛰었던 것 역시 보기 드문 케이스. 시니어가 워낙 일찍 주니어를 얻은 것[* 주니어와 시니어의 나이 차이는 19살(...)에 불과하다.]도 중요한 요인이지만, 시니어가 빅 리그에서 오랫동안 활약할 정도의 기량을 갖추고 동시에 주니어가 시니어의 은퇴 이전에 일찌감치 빅 리그에 콜업될 만큼 뛰어난 실력과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어야 했는데, 이게 기가막히게도 전부 맞물리면서 부자가 동시에 현역으로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주니어의 큰아들 '트레이' 켄 그리피 3세가 2016년 드래프트에서 24라운드로 [[시애틀 매리너스]]에 지명되어 3대가 메이저리그에 지명되기도 했다. 다만 트레이는 시애틀로 가지 않고 프리에이전트로 NFL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에 입단했다. 한편 켄 그리피 시니어의 아버지 조셉 그리피는 [[스탠 뮤지얼]]의 고등학교 친구라고 한다. 그러나 정작 조셉 그리피는 켄 그리피 시니어가 2살일 때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고 한다. == 관련 문서 == * [[야구 관련 인물(MLB)]] [[분류:미국의 야구 선수]][[분류:1950년 출생]][[분류:펜실베이니아 주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