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리 뮤직]]의 하위장르. 대표적인 장르는 컨트리 록, 내슈빌 사운드, 어반 카우보이 등이 있다. [[로큰롤]]의 등장에 앞서 컨트리 음악은 폐쇄적이고 제한적인 청자 사이에서만 향유되었다. 그러다 [[로커빌리]]가 발생했을 때 컨트리 음악가들은 전통 컨트리와 새로운 스타일 사이에서 고민을 하게 되었고 그것은 최초로 [[크로스오버]]를 시도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주류음악에 접촉함으로서 컨트리 팝의 시초가 되었다. RCA 레코드의 [[프로듀서]]였던 쳇 에킨스는 컨트리 팝의 최초의 선구자로 대우받는데 도시적 감각과 시골적 느낌을 섞은 컨트리 폴리탄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컨트리 송의 [[멜로디]]와 노래 구조가 매우 간단했기 때문에 그들은 [[대중음악|팝]]에 근거하는 포맷과 결합했을 때 더욱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이런 접근은 엣킨스의 부드럽고 세련된 스타일에 적응할 수 있었던 가수들이 성공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주었다. 특히 짐 리브스가 있었던 데카 레코드 [[프로듀서]]였던 오웬 브래들리는 그의 가수들을 위해 좀 더 풍부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는데 파스티 클라인의 천사같은 목소리로 대표되는 환경을 제공했다. 컨트리 폴리탄 팝은 결국 내슈빌 사운드라는 이름이 붙어졌다. 왜냐하면 그 모든 [[레코드]]들이 내슈빌에서 발매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가수들이 많은 히트를 쳤음에도 60년대 내슈빌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했던 가수들에 의해 컨트리 팝에 대한 반발이 발생했다. 베이커스필드 사운드에서 최초로 발생했는데 그의 강력한 비트와 전기적 악기, 옛 [[홍키 통크]]에 대한 애정 등이 이유였다. 그럼에도 내슈빌 사운드는 주류 컨트리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 사실 그것은 [[70년대]]에 더 인기를 누렸는데 프로듀서 빌리 세릴 덕분이었다. 그는 [[오케스트라]]와 녹음을 거창하고 상세하게 만들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록 음악]] 프로듀서였던 필 스펙터의 소리의 벽 기법은 에킨스와 브래들리에게도 적용이 되었다. 조지 존스, 테미 배넷, 찰리 리치 그리고 콘웨시 트위티 등은 이 방법으로 많은 혜택을 받았다. 컨트리 태핑을 도입한 [[대중음악|팝]]과 꽤 비슷한 컨트리 팝 사운드는 또한 수년간 컨트리 방송을 하지 않는 곳에서도 울려퍼졌는데 [[밥 딜런]]과 [[버즈(미국 밴드)|버즈]] 그리고 플라잉 부리토 브라더스 등에 의한 컨트리 록 때문이었다. 이런 사운드는 [[글렌 캠벨]], [[존 덴버]], B.J. 토마스 등에 의해 더욱 이용되었다. [[80년대]] 말 컨트리 팝은 새로운 영역으로 접근했다. 그것은 [[로큰롤]]의 강력한 [[비트]]와 [[사운드]]에 영향을 받았다. 이런 사운드는 가스 브룩스를 [[90년대]] [[스타]]로 만들었고 빌리 레이 사이러스에 크로스오버적인 성공을 가져다 주었다. {{{#!HTML <iframe width="560" height="315" src="//www.youtube.com/embed/FY8SwIvxj8o"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 컨트리 팝은 정형화된 코드 진행과 비슷비슷한 내용의 가사로 다 거기서 거기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실제로 서로 다른 노래 6곡을 매쉬업 수준도 아니고 단순히 이어붙인 위 영상을 보면 노래가 마치 하나처럼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분류:컨트리 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