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중국의 민족)] [include(틀:유대인의 주요 집단)] [목차] == 개요 == [[파일:Jews_of_Kai-Fung-Foo,_China.jpg]] 오늘날의 [[중국]] [[허난성]] [[카이펑]]에 수백년간 존재했다고 알려진 [[유대인]]이다. == 역사 == 여러 기록이나 정황으로 보아 [[북송]] 때부터 카이펑에 살기 시작해 적어도 [[청나라|청]] 말기까지는 존재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카이펑]]에 살던 [[유대교]]도들의 선조는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카이펑 유대 회당 비문에 [[기원전 108년]], [[전한]] [[한무제|무제]]때 국경을 넓히기 위해 [[간쑤성]]에서 파견된 페르가나 일대로 파견된 이광리 장군과 그의 군사들에게 발견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고고학적으로 밝혀진 바로는 이란 동부와 아프가니스탄 일대에 규모 있는 유대인 공동체가 정착한 시점은 서기 4세기 무렵이다.] 1054년 송나라에선 경제권을 움켜쥔 이방인을 대거 학살한 기록이 있는데, 이들이 돼지고기를 전혀 안 먹고 [[메노라|괴이한 촛대]]를 신성시한다는 기록으로 보면 누가 봐도 [[유대인]]들이다. 또한 1163년 우스타드 레위가 쉬나고그(유대교회당)를 건설했다는 기록도 있다.[* 참고로 우스타드는 페르시아어로 헤브루어의 랍비와 같은 의미.] [[명나라]] 황제로부터 [[애]], [[석(성씨)|석]], [[고(성씨)|고]], [[김(성씨)|김]], [[이(성씨)|이]], [[장(성씨)|장]], [[조(성씨)|조]]의 7개의 성을 하사받았다고 하는데 이는 유대인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성인 에즈라, 시몬, 코헨, 길버트, 레비, 조슈아, 조나단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중국에 유대인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서구세계에 알린 것은 17세기 [[예수회]]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로 알려져 있다. 1605년, [[마테오 리치]]는 카이펑 출신의 애전(艾田)이라는 60세 노인을 만났는데[* 몇몇 기록에는 청년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 해당 인물의 과거 급제 기록 등을 보면 노인이었던 게 맞다.] 애전은 자신이 [[유대교]]를 믿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카이펑에는 이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걸로 보이는 비석이 몇개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스스로를 이츠러예(一賜樂業:이스라엘)족이라 일컬었다 하며, 그중에는 유대인들이 [[악비]]의 휘하에 들어가 [[금나라|금]]군과 싸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이 유대인들은 카이펑이 금에게 함락될 때 조구(남송의 [[송고종]])를 수행해 임안(항저우)까지 내려가 임안에도 많은 유대인들이 살게 되었다고 한다. 카이펑의 유대인들은 명대까지 번성했으나 명말청초의 혼란기에 세력이 많이 약화되어 결국은 중국인[* 주로 같은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인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후이족|회족]].]에 흡수되었다고 한다. 다만, 그 이후에도 극히 일부가 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현대까지 내려왔는데, 이들은 현재 자기들이 [[후이족]]의 일부로 분류되는 것에 불만이 있으며, 자기들을 별도의 민족으로 분류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어 위키백과]]의 [[https://ko.wikipedia.org/wiki/%EC%B9%B4%EC%9D%B4%ED%8E%91%EC%9C%A0%EB%8C%80%EC%9D%B8|카이펑 유대인]] 문서를 참조하길 바란다.[* 링크된 문서에 따르면, 카이펑 유대교도들 중에서 [[석(성씨)|석씨]]([[시몬]])가 그나마 [[유대교]] 율법을 잘 준수하는 편으로, [[돼지고기]]를 아예 안 먹는 것은 아니지만 돼지 뒷다리나 둔부의 힘줄은 먹지 않으며, [[유월절]]에 [[양고기]]를 삶고 [[양(동물)|양]]의 피를 바른다고 한다. 나머지는 [[유대인]]이라는 자각만 간신히 있을 뿐이다.] 사실 오늘날까지 [[유대교]] 신앙을 유지한 사람들도 [[에도 막부]] 시기 [[일본]]의 [[가톨릭]] 신자들의 후예인 [[카쿠레키리시탄]]처럼 [[이스라엘]] 본토의 [[유대인]]들이 이질감을 느낄 만큼, 율법이나 생활상이 심하게 변형되어있다. 하지만 [[일본]]의 [[가톨릭]] 신자들보다 더 오랜 기간동안 존속해있으면서[* [[일본]]의 [[기독교]] 역사는 중세가 거의 끝나가던 [[센코쿠 시대]] 중반에나 시작됐는데 반해, 카이펑의 유대교도들은 최소 [[송나라]]에서 [[원나라]] 때부터 [[중국]]에 있었다.], 타국의 [[유대교]] 커뮤니티와 단절된 채로 살았던 까닭에 그나마 [[기독교]]인이었다는 흔적이라도 남은 [[카쿠레키리시탄]]과는 달리 [[유대인]]으로서의 특징이 거의 없어진 것이다.[* 현재 남아있는 [[카이펑]] [[유대인]]들의 모습을 보면, [[한족]]과 전혀 구분이 안 된다. 다만, 이건 타국의 유대인들도 마찬가지로, [[동유럽|동]][[서유럽]]의 [[유대인]]들인 [[아슈케나지]]나, [[이스라엘]]의 [[미즈라힘|토착 유대인]], [[에티오피아]] [[베타 이스라엘|유대인]]이나 [[인도]] [[케랄라]] 주의 유대인들도 각각 [[유럽|유럽인]], [[아랍인]], [[암하라인]] 및 [[케랄라인]]들과 외양상 전혀 차이가 없다.][* 사실 [[카이펑]] [[유대인]]들이 근대 이후에도 원래의 정체성을 회복하지 못한 이유로는 [[유대교]]가 일정한 종교지도자 직위도 없고, 종교적 구심점 역할을 하는 기구도 없다는 것이 매우 크게 작용했다. [[가톨릭]]은 옛날부터 [[교황]]이라는 구심점이 존재했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 각지에 엄청난 교세를 확보했으므로, [[일본]]의 [[카쿠레키리시탄]]들의 대다수는 수백 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무난히 [[가톨릭]]으로 원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의 [[유대인]]들이 개화기를 맞았을 당시는 [[이스라엘]]이 건국되지 않았을 때였다. 당연히 [[유대교]] 커뮤니티들이 종교적인 구심점도 없이 점조직화된 상태여서 교세도 별 볼 일없었고, 심지어는 타 종교의 박해를 받기도 해서, 모처럼 자신들의 존재를 세간에 드러내도 원래의 유대교로 원복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처지였던 회족이 [[칼리파]]라는 구심점 덕분에 각종 탄압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교 신앙을 계속 유지해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유럽의 사례이긴 하지만 [[폴란드]]의 [[정교회]] 신자들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폴란드 제2공화국]], [[폴란드 인민 공화국]]에 의해 박해를 당하는 와중에도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라는 구심점 덕분에 어렵게나마 정교회 신앙을 대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종교 단체에 대한 중국의 광범위한 단속 범위가 카이펑(開封)시의 소규모 유대인 공동체에까지 미쳐, 카이펑에는 극도의 두려움과 공포심이 짙게 깔렸다. [[https://ko.bitterwinter.org/ccp-is-silencing-tiny-community-of-kaifeng-jews/|중국 공산당, 카이펑 소규모 유대인 공동체를 침묵시켜]] Bitter Winter, 2019.01.20 타이 조플린(Ty Joplin) == 역사학계의 연구 == 일부에서는 카이펑의 유대교도들이 [[주작]]의 산물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정확히는 유대인이 유입된 적이 없었다는 주장이 아니라, 조상만 유대인이지 중세에 이미 혈통, 문화가 완전히 동화되어서 발견 당시 기준으로는 더 이상 유대인의 정체성을 찾을 수 없다는 주장. 그러나 중국에 사는 유대인들이 중국인들과 결혼해 외양은 중국인이지만 여러 풍습으로는 실제로 유대교적인 풍습을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작되었다는 설은 지나치다는 반론도 있다. 또한 근현대에 와서는 상기했듯 [[중화인민공화국]]이 유대인을 공식 소수민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소수자 집단에 대한 탄압이 강하다 보니,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유대계라는 사실을 숨기는 경우도 있고 해서 함부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참고로 혈통이 섞였는지의 여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동남아 각지에서도 유대인을 자부하는 이들이 있는데 6망성 및 촛대를 신성시하며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있다. 그 밖에도 [[에티오피아]] 등지의 흑인계 유대인도 상당히 큰 집단이다. 사실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는 유대인 후예들을 보면 현지의 타 민족과 혼혈하여 현지인들이랑 같은 외견을 하고 있는데, 당장 아슈케나짐도 중부 유럽인들과 그리 다르게 생기지 않았다. 실제 현대의 유대인의 기준은 '''[[유대교]]를 믿으면 유대인'''이라고 보면 된다.] 중국 사학계의 최신 학설에 따르면 이들은 [[송나라]]가 아닌 [[원나라]]가 서역에서 [[색목인]]들을 데려오면서 같이 중국에 들어온 [[페르시아계 유대인]]들이라고 한다. 이후 원나라를 멸망시키고 들어선 명나라가 색목인들을 원나라가 들여온 이방인 취급하면서 탄압하고 강제 동화정책을 펴자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원나라가 데려온 이방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 중국에 들어온 연대를 [[송나라]]에서 [[한나라]] 시대까지 앞당기는 기록들을 만들어놓았다는 것. 물론 중국의 역대 왕조들은 [[당나라]] 시기 이후로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 및 [[중동]] 지역과 활발한 교류를 해왔기 때문에, 원나라 이전에도 중국 땅에 유대계 이주민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된 바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는 일시적인 방문이나 극소수 인원의 정착만 있었을 것이며,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소수민족으로 분류될 만큼 대규모로 이주한 건 훨씬 이후의 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원나라]] 시기는 동북아시아에 [[중동]]계 이주민들이 대거 유입된 시대이기도 했다. [[카이펑시|카이펑]] [[유대인]]의 조상인 [[페르시아계 유대인]] 이외에 [[아랍인|아랍계]], [[이란인|페르시아계]], [[튀르크]]계 [[무슬림]]들이 대거 유입되었는데, 이들은 원명 교체 시기를 거쳐 [[한족]]에 동화된 뒤에 오늘날의 [[후이족]]의 조상이 되었다.] == 이스라엘의 반응 == [[이스라엘]]에서는 어느 정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조상이 중국에서 살았다던 에후드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총리도 이 점을 거론하며 오래전부터 중국과 [[이스라엘]]은 우방이라며 [[아랍]] 문제 및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6/03/31/2006033170958.html|중국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고자 많이 어필했다.]] 또한 이를 이용해 중국에 군사기술을 팔아먹는 것은 덤이다. --하지만 중국은 팔레스타인도 인정하고 있다.-- [각주] [[분류:유대인]][[분류:중국의 민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