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스코틀랜드 국왕)] [[스코틀랜드 게일어]]: Causantín mac Ailpin (카우산틴 막 알핀) [[영어]]: Constantine I (콘스탄틴 1세) (?~877, 재위:862~877) [목차] == 개요 == [[스코틀랜드 왕국]]의 전신인 픽트 왕국의 국왕이다. [[키나드 1세]]의 아들이자 [[돔날 1세]]의 조카로, [[돔날 1세]]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 재위 기간 동안 [[이교도 대군세]]를 맞아 분투하여 능력을 빛냈으나 결국 [[바이킹]]에게 사망했다. == 스코틀랜드와 [[이교도 대군세]] == 그의 재위기간을 대표하는 사건은 [[이교도 대군세]]이다. 전설에 의하면 [[라그나르 로드브로크]]라는 위대한 바이킹이 잉글랜드 [[노섬브리아]]에서 붙잡혀 국왕 엘라 2세에게 처형당하자 그 아들들이 복수를 위해 대규모의 [[바이킹]]들을 이끌고 잉글랜드를 침략했다는 사건인데, 이는 단순히 [[잉글랜드]] 지역에서 그치는 문제가 아니었다. 약골 [[이바르]], 흰 옷 [[할프단]] 등이 이끄는 바이킹들은 잉글랜드 동남부의 동앵글리아 왕국을 쳐서 굴복시킨 뒤 노섬브리아 남부를 점령하고 노섬브리아에 맹공을 퍼부어 국왕 [[엘라 2세]]를 붙잡아 산 채로 등을 가르고 등가죽을 펼쳐 전시하는 피의 독수리 형벌로 처형했다고 한다. 이후 바이킹들은 [[브리튼]] 곳곳에 정착지를 마련해서 주변을 마구 공격하기 시작했다. 잉글랜드 중서부와 [[아일랜드]] 동부에 바이킹 왕국이 세워졌는데, [[스코틀랜드]] 지역에도 그야말로 공습과도 같은 공격이 전개된다. 바이킹들 역시 [[스코틀랜드]]처럼 이 시기의 기록이 들쑥날쑥하고 신화 영역에 의존하는 관계로 바이킹 지도자들의 신원을 정확히 밝히는 것은 어려운데, 공식적으로 이 시기 [[카우산틴 1세]]를 곤경에 처하게 만든 바이킹들은 북구의 왕 고드프레드의 아들들인 이마르, 아믈리브, 외슬, 알반이라고 한다. 이들은 아일랜드에 상륙해 아일랜드 동부를 점령하고 아일랜드 전역에 위명을 떨쳤다. 그런데 각종 기록을 검토한 결과 고드프레드의 아들 이마르가 유명한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아들 약골 [[이바르]]와 동일인물이라는 설이 유력한 가설로 떠오름에 따라 고드프레드가 곧 라그나르, 알반은 흰 옷 [[할프단]]과 동일인물로 비정되었다. 아믈리브와 외슬은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다른 유명한 아들과 연결되지 않는다. 다만 [[라그나르 로드브로크]] 자체가 실존여부가 불분명한데다가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많아 진실은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게일어]]로 이마르, 아믈리브, 외슬, 알반 네 바이킹 지도자들이 [[스코틀랜드]]를 마구 공략했다는 것이다. == 생애 == 그의 초기 생애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며. 출생연도마저 알 수 없다. 한 가지 알려진 것은 [[키나드 1세]]의 사망 당시 그가 너무 어려 삼촌 돔날이 대신 즉위했다는 것이다. 그의 통치 기록은 거의 [[바이킹]]들과의 싸움으로 채워져 있다. 866년, 고드프레드의 아들 아믈리브와 외슬이 [[하이랜드]] 포트리우에 상륙해 많은 조공과 포로를 획득하고 돌아갔다. 하지만 카우산틴에겐 천만다행히도, 이듬해에 악재가 터져 아믈리브는 [[아일랜드]]로 물러갔다. 우선 [[아일랜드]]의 [[아르드리]] [[아드 핀들리어흐]][* [[아드 핀들리어흐]]는 [[키나드 1세]]의 딸 말 뮈러와 결혼했기 때문에, [[카우산틴 1세]]와는 처남-매부 관계였다.]가 군사를 내어 바이킹 점령지를 습격해 여러 마을과 항구를 파괴했고, 또 외슬이 자신의 아내[* 여기 얽힌 아믈리브의 아내는 키나드의 딸이라고 하는데, 이 여자가 픽트 왕국의 [[키나드 1세]]의 딸, 즉 [[카우산틴 1세]]의 남매인지 아일랜드 브레가 왕국의 키나드 막 코난의 딸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를 탐하려 드는 분쟁이 터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믈리브는 870년까지 브리튼으로 넘어오지 못하고 [[아일랜드]]의 상황에 집중해야 했다. 870년에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마침내 아일랜드를 진정시킨 아믈리브는 다시 바다를 건너 이번엔 어스트라드클라이드 왕국[* 현 [[스코틀랜드]] 서남부 지역으로, 이 시기엔 픽트 왕국과 민족적으로도 별개로 [[웨일스]]와 같은 [[브리튼인]]이 지배했다.]를 공격해 어스트라드클라이드의 군사 요충지 덤바튼을 4개월 동안 포위한 끝에 점령했다. 여기서 [[카우산틴 1세|카우산틴]]은 어부지리를 시도한 것으로 보이는데, 기록에 의하면 이 패배로 권위를 상실한 어스트라드클라이드 국왕 아르트갈은 [[키나드 1세|키나드]]의 아들 [[카우산틴 1세|카우산틴]]의 사주로 살해당했다고 한다. 아르트갈에 사후에 왕위에 오른 이는 카우산틴의 매부 룬이었다. 이를 통해 픽트 왕국은 어스트라드클라이드 왕국까지 영향권에 넣는데 성공하고, 결국 200여년 이후 어스트라드클라이드는 [[스코틀랜드]]에 완전 합병된다. 이 후 871년 혹은 872년에 아믈리브가 다시 한 번 픽트 왕국을 침공하자 카우산틴은 맞서싸워 874년에 아믈리브를 죽이는데 성공했다. 거기다 아믈리브의 원정을 돕곤 하던 아믈리브의 형제 이마르도 873년에 죽으면서 일단 대규모의 바이킹 침공은 진정되는 듯 했다.[* 물론 소규모 [[바이킹]]들의 경제적 목적을 위한 약탈은 종종 있었다. [[바이킹]] 침공이란 정치적 목적을 함께 띈 대규모 원정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쪽에서, 875년에 알반-즉 흰 옷 [[할프단]]의 침략이 시작됐다. 흰 옷 [[할프단]]은 상술한 이마르-혹은 약골 [[이바르]], 아믈리브, 외슬의 형제로써, 근래 그의 형제들이 차례대로 죽자 형제들이 남긴 [[더블린]] 왕국을 점령하기 위해 그의 군대를 반으로 나누어 한 군은 [[잉글랜드]] 침략을 계속하게 하고 다른 군은 [[아일랜드]] 쪽으로 북상시켰다고 한다. 이 할프단의 군대의 진격로에 픽트 왕국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는 카우산틴 치세 최대의 위기였는데, [[수도]] 스콘 근교의 달러에서 픽트 왕국군은 할프단의 군대에게 거대한 [[학살]]로 기록될 정도로 처참한 패배를 당하기까지 한다. 이는 픽트 왕국을 흔들리게 만들었고, 결국 877년 [[카우산틴 1세]]는 이 군대와 맞서 싸우던 중 잡혀 처형당했다. 그의 사후 왕위는 카우산틴과 그의 동생 [[아드| 아드 막 키나다]]의 후손 사이를 오가게 된다. [[분류:스코틀랜드 국왕]][[분류:가톨릭교도 군주]][[분류:877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