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1280px-Kars_kalesi.jpg]] [[나디르 샤]]가 정복했던 카르스 지역의 요새 [목차] == 개요 == '''쇠락하던 [[나디르 샤]]가 보여준 마지막 불꽃.''' '''단 한 번의 결단력으로 승부를 뒤집은 전투.''' 카르스 전투(Battle of Kars)는 1745년 8월 9일부터 약 3일동안 벌어진 전투이며, 몸도 정신도 파괴되어가던 [[나디르 샤]]가 마지막으로 쟁취한 대승이었다. 숫적 우세와 전술의 개선을 거듭한 오스만 제국군이 나디르 샤의 페르시아군에게는 아직 미치지 못했던 전투이기도 하지만, 페르시아군 측에서는 공세가 아닌 '공세적' 수비였다는 한계도 존재한다 == 배경 == [[오스만 제국]]은 [[나디르 샤]]와의 정면승부가 결코 쉽지않은 과제임을 알고 있었기에, 나디르 샤가 반란을 제압하러 가거나 [[다게스탄 원정|다게스탄을 공격할때]] 반 나디르 세력을 몰래 도와주는 방향으로 선회했다가 들켜버렸고(...), 이는 [[오스만-페르시아 전쟁(1743-1746)]]으로 번지게 되었었다. 모술 공성전의 실패 이후, 나디르 샤는 1744년 8월부터 카르스(Kars) 지역을 포위했다가 겨울이 되어서 물러났다. 그리고 3달동안 다르반드(Darband) 지역에서 머물렀으며, 이후 1745년 6월에 군대를 [[예레반]](Yerevan) 지역으로 이동시켰다가 오스만 제국군이 오고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군은 둘로 나뉘어서 오고 있었는데, 하나는 카르스 지역으로, 또 하나는 [[모술]] 지역으로 오고 있었다. 이에 [[나디르 샤]]는 전력을 둘로 나누었으며, 본인은 8만대군을 이끌고 카르스 지역의 오스만 제국군을 요격하러 갔으며, 나머지 상당수의 대군은 나쉬롤라에게 주어 모술 지역으로 가게 하였다. == 전투 경과 == [[파일:Kars_1745.jpg]] 카르스 전투의 배치도. 파란색이 페르시아군, 붉은색이 오스만 제국군이다. 1745년 8월 9일에 오스만 제국군과 나디르 샤의 페르시아군이 마주하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군은 서쪽에 지어놓은 임시 요새화 캠프에서 나와 전열을 이루었다. === 강력해진 오스만 제국군 === 불과 10년전과는 달리, 오스만 제국군은 프랑스인 본느발(훔바라즈 아흐메트 파샤)이라는 자에 의해 전반적으로 개선된 상태였다. 엘리트 보병대인 [[예니체리]]는 전술단위가 더 작아지고 세분화되어 정밀한 공격이 가능해졌으며, 사격 훈련과 대포의 개선으로 화력 집중의 효율도 상승한 상태였다. 오스만 제국군의 배치는 전열보병 2열 이상, 보병 사이사이에 포병을 배치하였으며, 양익에 [[시파히]] 기병대를 배치하였다. 나디르 샤는 중앙에 보병대와 포병대를, 후위에는 다수의 예비 기병대를 두고 있었다.[* 정황상 숨겨놨다가 요긴하게 써먹을 생각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나디르 샤는 우선 페르시아군에게 한차례 일제사격을 퍼부은 뒤, 사브르(검)를 뽑아들고 백병전을 벌이라 지시하였다. 페르시아군은 명령대로 총격과 포격을 퍼붓다가 일제히 돌격하였는데, 이때 오스만 제국군의 양익 기병대가 페르시아군의 양 측면을 공격하였고 교착 상태가 되기 시작하였다. === 노장의 일격 === 당시 ~~~초심을 잃은~~~ [[나디르 샤]]는 전선에서 직접 뛰지않고 멀리 떨어진 페르시아군 캠프에서 신하들의 보고를 바탕으로 간접 지휘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태초마을|호라산]]으로 돌아가야 할듯~~~. 그렇게 여러 신하들의 보고가 오가다 어느 한 신하가 말하기를 교착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자, 나디르 샤는 잠시 생각하더니 결심했다는 듯 갑옷을 입고 막사에서 나와 숨겨놓았던 예비 기병대 4만을 직접 이끌었다.[* 다만, 나디르 샤가 일부러 교착상태를 유도한 뒤 오스만 제국군의 신경이 중앙으로 쏠렸을때 기병대로 몰아치려 계획했었는지, 아니면 의도치 않게 교착상태가 지속되자 즉흥적으로 기병을 이끌고 후위를 치는 "도박"을 감행한 것인지는 나디르 샤 본인만이 알 것이다.] 나디르 샤는 예비 기병대 4만명과 함께 전광석화처럼 기동하여 오스만 제국군의 후위를 공격하였다. 당시 오스만 제국군의 중앙과 양익 [[시파히]] 기병대 모두가 페르시아군 중앙을 공격하느라 후방이 무방비가 되었으니 공격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결국 페르시아군 [[망치와 모루|중앙을 맹렬히 공격하던 오스만 제국군은 거하게 뒤통수를 얻어맞았으며]], 혼란에 빠진 오스만 제국군은 제각기 서쪽에 있던 요새화 캠프로 후퇴하였다. [[나디르 샤]]는 적당히 추격하다가 저녁이 다가오자 추격을 멈춘 것으로 보인다. === 포위전과 마무리 === 다음날 아침, 나디르 샤는 오스만 제국군의 요새화 캠프를 완전히 포위하였으며, 한차례 벌어진 포병 싸움에서 페르시아군 포병이 오스만 포병을 이기며 사기도 상승하였다. [[나디르 샤]]는 굳이 오스만 제국군의 캠프를 공격하지 않고 포위전으로만 제한하였다. 어차피 임시 캠프라 내부에 물자도 부족했으며, 3일뒤 모술 지역에서의 승전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모술 지역의 승전소식은 곧 캠프내 오스만 제국군에게 재앙이었다. 이제 오스만 제국군은 완전히 고립되어 지원군을 기대할 수 없었다. 덕분에 그날밤 오스만 제국군 병사들은 폭동을 일으켜 수장이 도륙당했고 나머지 병사들은 도망치다가 잡히거나 죽었다. == 결과 == 카르스 전투는 [[나디르 샤]] 역사상 최후의 대승이었다. 오스만 제국군의 사상자는 28000~35000명에 달했으며, 페르시아군의 사상자는 최대 8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페르시아군의 피해는 초반의 교착 상태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나디르 샤의 대승이었으나, 나디르 샤는 이러한 우위를 적극 활용하지 않았으며, 그저 [[오스만 제국]]과의 적당한 협상으로 끝내고자 하였다. 게다가 카르스 전투 자체가 공세적 수비로서 오스만 제국군을 공격하여 캅카스 지역을 지켜낸 특성상 나디르 샤의 정복 야망이 많이 꺾였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분류:아프샤르 왕조]][[분류:지상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