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루마니아 왕국 국왕)] [include(틀:TVR 선정 위대한 루마니아인)]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arol_I_King_of_Romania.jpg]] 생애 : [[1839년]] [[4월 20일]] ~ [[1914년]] [[10월 10일]] 재위기간 : [[1881년]] [[3월 26일]] ~ [[1914년]] [[10월 10일]] 카롤 1세는 [[루마니아 왕국]]의 국왕으로 본래 독일의 별볼일 없는 왕족이었다. [[호엔촐레른 왕조|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가문]] 출신으로 당시 [[프로이센]](현재 [[독일]])의 국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먼 친척이었다. 그러나 루마니아 공인 알렉산드루 이오안 쿠자가 [[1866년]] 퇴위하자 루마니아 공이 되었고, [[1881년]] 루마니아 왕이 되었다. 비트의 엘리사베타와 결혼해서 [[1870년]] [[9월 8일]] 딸 마리야가 태어났지만 [[1874년]] [[4월 9일]] 4살도 채 안되어 일찍 죽자 조카[* [[엠스 전보 사건]]의 핵심인물인 형 레오폴트의 둘째 아들]인 [[페르디난드 1세|페르디난트]]를 후계자로 낙점했다. [[1914년]] [[10월 10일]] 사망했다. 카롤 1세는 비록 외국 출신[* 전술했다시피 독일 출신이며, [[프랑스]]계 혈통도 있다.][* 왕위를 둘러싼 귀족들의 정치투쟁을 피하기 위해 루마니아 왕실전범에서는 루마니아인의 즉위를 금지했으며, 루마니아 왕족은 외국인과 결혼해야만 했다.]이었지만 루마니아의 근대화를 지휘한 인물이었다. 그의 치세에서 루마니아는 근대적 국가로 거듭났으며, [[석유]]와 곡물을 해외로 수출했다. 또한 [[발칸 전쟁]]에서 영토를 넓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가진 [[독빠|친독]]적 성향은 루마니아인들의 전반적인 친불적 성향과 어긋나는 것이었고, [[1차 대전]] 당시에는 협상국과 동맹국 중 어느 쪽에 가담해야 할 지에 대한 논쟁도 벌어졌다. 이 논쟁은 카롤 1세가 개전 후 3달도 지나지 않아 사망함으로써 해결되었다. 후에 즉위한 [[페르디난드 1세]]는 [[1916년]] 협상국에 가담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Queen_Elizabeth_of_Romania.jpg]] 왕비 엘리사베타([[1843년]] [[12월 29일]] ~ [[1916년]] [[3월 2일]])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arol_I%2C_Elisabeta_and_Maria.jpg]] 유일한 딸 마리야와 함께 찍은 사진 [[분류:루마니아 국왕]] [[분류: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가문]] [[분류:1839년 출생]] [[분류:1914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