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상위 문서, top1=칠레)] [include(틀:남아메리카의 외교)] [include(틀:칠레의 대외관계)] [목차] == 개요 == [[칠레]]의 외교에 관한 문서. 칠레는 서방 국가들과 우호적이다. 이 점이 볼리비아, 에콰도르,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등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칠레는 주변국들과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 하지만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91&aid=0002966705|2011년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5365815|2013년에]] 반미 시위도 있었고 칠레 국민들이 무조건 미국과 서방세계를 좋아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아니 반미감정이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 애초 그 피노체트는 미국이 만든 사람이다. 남아메리카 바깥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세계 최초로 [[미국]]과 [[러시아]]를 모두 무비자로 갈 수 있는 자격을 최초로 얻기도 했다. 이는 현재 지구상에서 단 3개국만 허락된 특권으로, [[대한민국]]과 [[브루나이]]가 각각 2, 3번째가 되었다. 러시아와 미국 둘 다 무비자로 가기 힘든데 러시아는 특히 적성국가인 일본, 영국, 미국, 우크라이나, 폴란드, 스웨덴 등의 국적자들에게는 아주 까탈을 부리며 이 나라들은 당연히 러시아에 갈려면 '''초청장'''과 함께 비자가 필요하다. 베트남 역시 한국은 무비자 입국이 되지만 일본, 영국, 미국 여권은 비자를 받아야 한다. 또한 제3세계 중립국들이 모여 만든 기구인 비동맹노선(Non-Alignment Movement)의 정회원국이기도 하다. == [[아시아]] == === [[대한민국]]과의 관계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한국-칠레 관계)] === [[북한]]과의 관계 === [[북한]]과는 [[1972년]]에 수교하였는데 바로 이듬해인 1973년에 극우이자 박정희 지지자인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벌여 집권하자 공산국가 따위와는 단교한다며 국교를 단절하였다가 피노체트가 퇴장한 후인 [[1992년]]에 재수교하였다. === [[중국]]과의 관계 === 칠레는 오래전부터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피노체트 때는 [[중화민국]]을 승인하고 수교했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을 인정하지 않다가 민주화 이후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했다. 앞서 말했듯 중국인인 19세기 [[아편전쟁]] 후 건너온 [[청나라]] 사람들인 [[쿨리]]에서 비롯되어 이민 역사가 길다. 피노체트 시절에는 반공기조 때문에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하지 않고 [[대만]]의 [[중화민국]]을 승인하고 수교하다가 나중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해 외교관계를 갖는다. 특별행정구인 [[홍콩]], [[마카오]]에는 칠레 출신 이주자들이 있으며 홍콩에서 이국적 관광지로는 칠레를 뽑는다. 칠레는 홍콩과 그리 멀지 않은 [[호주]]를 거쳐도 돼서 생각보다 접근성도 뛰어난 편에 속한다. 경제적으로 상당히 연관이 깊다. 정치적으로 영향력 확대 문제인 패권주의가 아닌 경제적 교류로는 중국과 관계가 깊은 나라가 많으니 이상할 건 없다. [[S&P]] 분석에 따르면 중국 성장률이 반토막날 시 피해 보는국가 첫번째로 칠레를 꼽았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5/17/0200000000AKR20160517177100009.HTML?input=1195m|연합뉴스]] === [[일본]]과의 관계 === [[일본]]도 칠레와 외교관계를 맺었다. [[쿨리]]가 들어가던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메이지 유신]] 후 신대륙으로 보낸 농업이민 중 일부가 칠레로 오기도 했다. 일본 농업이민은 대게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와 [[하와이]], [[캐나다]] [[밴쿠버]], [[멕시코]] [[캘리포니아 반도]], [[페루]], [[브라질]] 등이 주 목적지였는데 이 중 페루로 갔던 사람 일부가 칠레로 간 것이었다. 1937년 6월경 칠레가 [[일본 제국]]에게 살라스 이 고메즈 섬을 포함해 [[이스터 섬]]을 매각하려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영미와의 외교가 극심하게 악화될 것을 우려해 실제 진행되지는 않았다.[* 일본 외무성 외교 사료 Q&A 쇼와 전전사] 다른 아시아 국가와의 관계처럼 칠레와 일본은 매우 우호적인 편인데 양국은 둘 다 [[TPP]]에 가입되어 있고 경제분야에서는 일본 기업들이 대거 진출했다. ===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 === 19세기에 칠레에는 아랍인들이 이주했다.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출신자들인데 시간이 지나며 이들은 칠레에 대부분 동화했다. 칠레는 경제적으로 아랍 국가들과 밀접한 면이 있다. 특히 신흥국인 [[아랍에미리트]]와 관계가 깊으며 [[팔레스타인]] 이민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는 편이기도 하다. 더구나 요즘에는 [[소말리아]], [[예멘]], [[차드]], [[모리타니]] 등 정정이 불안정한 타 아랍국가 출신 난민들도 칠레에 정착하기도 한다. 이러한 아랍인 이주민들 덕에 칠레에는 [[이슬람교]] [[모스크]]가 곳곳에 들어서 있다. == [[유럽]] == === [[스페인]]과의 관계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스페인-칠레 관계)] === [[독일]]과의 관계 === 칠레 육군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국방군]] 삘이 나는 정복과 군장을 사용한다. 아무래도 [[독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던 국가라 그 영향이 극심하게 남아 있다. 심지어 제식도 그 유명한 구스 스탭을 하는데, 과거 [[구소련]] 영향권의 국가들의 그것이 아니라 빠르고 절도있는 [[나치 독일]]의 그 스타일 그대로 똑같이 한다. 거기다 칠레군은 매년 독립기념일 행사로 군 수뇌부는 물론 무려 대통령이 참석하는 대규모 열병식을 개최하는데, [[슈탈헬름]]과 [[피켈하우베]]를 쓰고 독일식 정복을 차려입은 1개 군단수준의 인원이 프로이센식 구스 스탭을 하는 모습을 보면, 여기가 대체 어디인가 싶을 정도다. 이것은 [[칠레]]에 19세기에 이주한 [[독일인]] 이민자들 덕이다. 마푸체를 갈아엎는 과정에서 남부 파타고니아에 [[독일]]과 구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이민자를 대규모로 받아들인 게 칠레 정부로 특히 추운 날씨의 [[알프스 산맥]] 언저리에 살던 [[바이에른]]인과 [[오스트리아]]인들이 대거 기후와 지형이 비슷한 파타고니아로 건너왔다. 그래서 남부 칠레의 스페인어 방언은 독일어와 남슬라브어 억양이 섞여 있으며 아직까지 독일어를 집에서 쓰는 가정도 흔하다. 과거 주 대한민국 칠레 대사를 역임한 페드로 슈미트(Pedro Schmit)대사가 독일계 칠레인이며 미셀 바첼레트 전 대통령도 독일계 칠레인이다. 이러한 역사 덕에 독일-칠레 간 관계는 아주 좋으며 독일은 남미 대륙으로의 확장성에 있어 칠레를 꼭 있어야 할 중요한 파트너로 본다. === [[프랑스]]와의 관계 === [[프랑스]]와는 대체로 우호적인 편이다. [[프랑스인]] 이민자들도 북중부 지역에 [[스페인인]], [[이탈리아인]]들과 함께 같이 들어와 프랑스계 칠레인들도 있으며 아직까지 가정에서 [[프랑스어]]를 쓰기도 한다. 비록 [[마푸체]] 왕으로 옹립된 프랑스 청년 오를리 앙투안 건 같은 일도 있었지만 프랑스가 딱히 칠레에서 행패를 부린 나라는 아닌지라 19세기 칠레 독립 후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현재도 교류가 많다. 축구에서도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과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 간 친선경기가 자주 열리는데 [[2002년]] 칠레가 프랑스를 1-0으로 잡은 적이 있다. === [[영국]]과의 관계 === [[영국]]과는 대체로 우호적인 편이다. [[영국]]은 19세기에 칠레와 외교관계를 맺은 이후 칠레에 있어 중요한 파트너로 유독 영국인들이 칠레에 자주 드나들었고 영국 영향이 강했다. 그러면서 영어 단어가 칠레 스페인어에 섞이기도 했다. 이러한 칠레를 들락거리던 영국인 중 아예 칠레로 이주해 알박기를 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에두아르드(Edward) 가문이 대표적인 예다. 물론 이 사람들은 영어를 안 쓰다보니 잊어버리고 그냥 스페인어를 쓰지만 성씨가 [[앵글로색슨]] 성씨라 금방 티가 난다. 그리고 영국인을 따라온 [[아일랜드인]]들도 알박기를 시전하기도 했는데 칠레 독립영웅 베르나르도 오히긴스가 원래 아일랜드계 칠레인이었다. [* O'는 [[아일랜드인]] 성씨에서 흔하다. [[코난 오브라이언]]도 아일랜드인이라 O'brian이라고 쓴다.]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 제도]] 영유권 다툼과 [[7년 전쟁]] 당시 [[영국 해군]]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침공 등의 문제가 더해져 영국과 사이가 아주 안 좋은데 비해 칠레는 영국과 쭉 관계가 깊고 긴밀했으며 이것이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 공군]]에 영공을 개방하는 실수로 이어졌다. 아르헨의 라이벌이라는 브라질조차 깠던 이 사건 때문에 한동안 칠레는 타 남미 대륙 국가들과 사이가 서먹했다가 최근 화해했다. === [[이탈리아]]와의 관계 === [[이탈리아]]와는 19세기에 외교관계를 맺은 이후부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칠레 북중부에는 스페인계와 함께 이탈리아계 칠레인들도 대거 살고 있으며 이들은 초기 식민개척 때 스페인 왕실이 불러온 사람들이었다. 이웃 아르헨티나가 유독 이탈리아계 존재감이 높은 것과 달리 칠레에선 중북부 백인 주류였던 [[바스크]], [[갈리시아]]인들에 좀 눌려있긴 했으나 이들도 상당한 숫자를 자랑한다. [[이탈리아인]] 이민자들은 칠레에 [[피자]], [[파스타]] 등 [[이탈리아 요리]]를 보급하기도 했다. == [[아메리카]] == === [[볼리비아]]와의 관계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칠레-볼리비아 관계)] 칠레와 볼리비아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다가 독립했지만, 영토문제로 인해 갈등을 빚고 있다. === [[페루]]와의 관계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페루-칠레 관계)] [[페루]]와도 태평양 전쟁 당시 페루가 차지하고 있던 아리카, 타라파카, 타크나 등 남부 해안가 땅 일부를 뜯어가 페루하고도 사이는 원만하지 못하다.[* 타크나는 1929년에 칠레가 페루에게 반환했다.] 최근에는 해상 영토 분쟁이 해결되어 사이가 원만해졌다. 칠레와 페루는 [[APEC]]과 [[TPP]]에 둘 다 회원국으로 가입해 있고 외교적으로도 일단 둘 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우호적인 편에 속한다. === [[아르헨티나]]와의 관계 === [[아르헨티나]]하고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후 파타고니아와 아타카마 사막 지대, 티에라델 푸에고 섬의 소유권을 놓고 국경/영토 분쟁을 벌였으며[* 사실 칠레는 티에라 델 푸에고 섬 전 지역와 파타고니아의 대서양 연안 지역을 합병하려다가 아르헨티나와의 세력 다툼에서 밀려 파타고니아의 대서양 연안 지역을 합병하지 못하고,티에라 델 푸에고도 아르헨티나와 영토를 동, 서로 분할하여 섬 동부 지역을 아르헨티나에게 내주고 서부 지역만을 차지했다.] 게다가 현재에도 국경을 접한 안데스 산맥 남부 지역에 위치한 세로 무라욘과 피츠로이 산의 영유권을 두고 국경 분쟁이 존재하고 있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당시 포클랜드 제도의 영유권을 놓고 아르헨티나와 싸우고 있었던 [[영국]]을 지지하여 아르헨티나하고도 사이는 좋지 않았다. 무려 영공까지 개방해줘서 남미국가들 대다수가 칠레를 극딜한 적 있었다. ~~이건 피노체트 때문이다.~~[* 헌데, 특이한 건 아르헨티나의 전 [[대통령]]인 카를로스 메넴의 [[아내]]인 세실리아 볼로코(Cecilia Bolocco)는 칠레 사람이란 거다. 메넴 전 대통령이 블로코와 [[결혼]]하려고 했을 때도 아르헨티나 국내에서도 악질 칠레 여자와 왜 결혼하냐며 메넴 전 대통령을 [[매국노]]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도 아르헨티나에서의 행보도 좋지 않았는데 2001년도에 아르헨티나 국기를 모독하고 칠레 국기를 찬양하는 언행을 보이는 등 아르헨티나 내에서도 욕을 먹기도 했었다.] 하지만 피노체트 군사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 [[영어]] [[위키백과]]의 [[포클랜드 제도]] 영유권 분쟁 [[http://en.wikipedia.org/wiki/Sovereignty_Dispute_of_the_Falklands#Supporters_of_the_Argentine_claim|관련 항목]]에 있는 설명에 의하면, 피노체트 정권이 무너진 후 칠레의 민주주의 정부에서는 포클랜드 문제에 있어서 아르헨티나를 지지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 지금은 그 당시에 비해 다소 사이가 좋아진 편이다. 이 두 나라의 관계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영어판 위키의 [[http://en.wikipedia.org/wiki/Chile_Argentina_relations|칠레-아르헨티나 관계 항목]]에서 볼 수 있다. === [[브라질]]과의 관계 === 남미에서는 [[브라질]]과 국경을 맞대지 않은 두 나라 중에 한 나라라서 그런지[* 나머지 한 나라는 [[에콰도르]]] [[브라질]]과는 사이가 좋은 편이다. 아예 브라질의 [[UN]]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해 브라질의 이사국 진출에 반대하는 남미 국가들의 사이에서 브라질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적극 지지할 정도이다. 양국 모두 [[개신교]] 교세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칠레 개신교는 독일계 칠레인들의 [[루터교]] 전파에서 시작되었으며 브라질은 오순절교회 신자가 많다. 축구로 들어가면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을 월드컵에서 늘 따라다니던 팀으로 아직 브라질을 이겨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2002년 한일월드컵 남미 지역예선에선 [[2000년]] 8월 룩셈부르고 감독[* 독일계 브라질인으로 공교롭게 성씨가 [[룩셈부르크]]라는 국명과 비슷하게 들린다.]이 이끌던 브라질을 [[마르셀로 살라스]]의 골로 1-0으로 격파하는 이변을 일으킨 바 있었다. 이 사건 이후 안 그래도 한수 아래라 생각한 콜롬비아에게 남미예선 첫 경기부터 0-0으로 비기며 불안하게 출발한[* 물론 그 땐 [[보고타]] 원정이라 [[고산병]] 여파도 좀 있었다만 어쨌든 브라질은 경기내용이 그렇게 쉴드를 쳐 주기에는 너무나 형편없었다.] 브라질은 이후 약체로 비웃던 [[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에게도 깨지는 등 계속 깨지면서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으며 룩셈부르고 감독도 모가지가 날아갔다. 이후 칸디뇨 코치가 임시로 감독을 하면서 [[베네수엘라 축구 국가대표팀]]을 마라카이보 원정에서 7-0으로 대파해 겨우 체면을 살렸다. 그리고 레앙 감독이 취임했으나 여기는 더 꼬여서(...) 숙적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에 [[몬테비데오]] 센테나리오 원정에서 1-0으로 깨지고 심지어 최약체 [[볼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라파스]] 원정에서 지는 등 망신살 뻗치다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의 취임 후 겨우 이래저래 만회해가며 본선에 진출했다. 월드컵 본선에선 늘 브라질이 칠레를 이겼으며 가장 최근엔 자국에서 열린 2014년 브라질 월드컵 16강전에서 또 칠레를 이겼으나 이번엔 경기내용이 신통찮았고 결국 [[미네이랑의 비극]]이라는 개망신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 지역별 관계 == * [[한국-칠레 관계]] * [[스페인-칠레 관계]] * [[페루-칠레 관계]] * [[칠레-볼리비아 관계]] == 관련 문서 == *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 * [[대국관계일람/아메리카 국가/남아메리카 국가]]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칠레, version=898, paragraph=12)] [[분류:칠레의 외교]][[분류:나무위키 외교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