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align=center><#008000> '''[[사공|{{{#ffffff 후한의 사공}}}]]''' || ||<width=30%> 66대 [[순상]] || {{{+1 ←}}} ||<width=30%> '''67대 충불''' || {{{+1 →}}} ||<width=30%> 68대 [[순우가]] || 种拂 ? ~ 192년 [목차] == 개요 == [[후한]] 말의 인물. 자는 영백(穎伯). [[충소]]의 아버지, 충고의 아들. 사례종사, 완의 현령 등을 역임했고 남양군의 관리가 휴가를 좋아해 마을에 놀러다니자 백성들이 근심했으며, 충불은 나와서 그 관리를 만나면 수레에서 내려 그 마음을 고치게 했다.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하남태수를 지내 [[유익(후한)|유익]]을 불러들여 기용하기도 했다. 유능한 정치를 한다는 평판을 받았고 여러 차례 옮기다가 190년에 광록대부가 되었으며, 6월에 사공이 되었다가 191년 7월에 면직되어 태상이 되었다. 192년 6월에 [[이각#s-1|이각]], 곽사 등이 장안을 공격하면서 백관 대부분은 이를 피해 달아났지만 충불은 장안에 남아서 [[노욱]], [[주환#s-2|주환]], [[최열]], 왕기 등과 함께 싸우다가 전사했으며, 이 때 [[후한서]] 효헌제기에서는 관직이 태상, 후한서 동탁전에서는 위위로 기록되어 있다. == 창작물에서 == [[삼국지를 품다]]에서는 소개에는 [[동탁]]의 복수를 위해 이각이 장안을 공격하자 왕윤을 도와 싸운다고 나와있으며, 신하된 도리로 황궁을 버릴 수 없다면서 노규, 주환, 최열, 왕기 등이 남은 것을 언급하고 왕윤을 도와 이각의 군사와 싸우지만 왕윤이 안되는 것이냐고 한탄하면서 충불을 비롯한 다른 대신들도 전사했다고 언급한다. [[분류:한나라의 관료]] [[분류:192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