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초대 참의원의원]][[분류:제4대 국회의원]][[분류:제6대 국회의원]][[분류:제7대 국회의원]][[분류:민주당(1955년) 국회의원]][[분류:민중당(1965년) 국회의원]][[분류:민주공화당(1963년) 국회의원]][[분류:안주시 출신 인물]][[분류:1894년 출생]][[분류:1982년 사망]][[분류:실향민]][[분류:매사추세츠 대학교 출신]] * [[정치인/목록]]. [[실향민/대한민국]] [[파일:external/tv03.search.naver.net/yonhapnews_28442308.jpg|width=150]] 崔熙松 1894년 05월 10일 ~ 1982년 03월 18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894년 [[평안도]] [[안주시|안주목]](현 [[평안남도]] 안주시)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 [[매사추세츠 대학교]]를 졸업하고, 명예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8.15 광복]] 후인 1946년 [[경상북도지사]]를 역임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1955년)|민주당]] 후보로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시]]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처음에는 [[자유당]] 이순희 후보가 당선되었다고 발표되었으나 [[대법원]]에 선거 무효 소송을 제기한 결과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아 대법원에서 당선 판결을 받았다. 같은 해 10월 민주당중앙상무위원회 부의장에 선출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상북도 [[대한민국 참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5.16 군사정변]] 후인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전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1965년 [[민중당(1965년)|민중당]] 국회의원일 때 [[한일기본조약]] 체결에 찬성하였다가 [[강문봉]]과 함께 민중당에서 제명되었다. 이후 [[무소속]]으로 있다가 1967년 초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였다. 그 해 치러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듬해인 1968년 민주공화당 [[총재]] 상의역, 중앙행정협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민주공화당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여담으로 제4대 국회, 제7대 국회에서 모두 최고령 국회의원으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