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고려의 개국공신)] [include(틀:고려의 배향공신)] ||<-2><bgcolor=#191970><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191970> '''{{{#white 고려국 태사[br]고려국 집정 겸 내사령[br]{{{+1 최지몽}}}}}}''' || ||<bgcolor=#191970> '''{{{#white 시호}}}''' ||<bgcolor=white>'''개국민휴공(開國敏休公)''' || ||<bgcolor=#191970> '''{{{#white 삼사}}}''' ||<bgcolor=white>'''태사(太師)''' || ||<bgcolor=#191970> '''{{{#white 성씨}}}''' ||<bgcolor=white>최(崔) || ||<bgcolor=#191970> '''{{{#white 이름}}}''' ||<bgcolor=white>총진(聰進) → 지몽(知夢) || ||<bgcolor=#191970> '''{{{#white 본관}}}''' ||<bgcolor=white>[[낭주 최씨]][* [[전라남도]] [[영암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 ||<bgcolor=#191970> '''{{{#white 아들}}}''' ||<bgcolor=white>최현동(崔玄同), 최회원(崔懷遠) || ||<bgcolor=#191970> '''{{{#white 아버지}}}''' ||<bgcolor=white>최흔(崔昕) || ||<|2><bgcolor=#191970> '''{{{#white 출생}}}''' ||<bgcolor=white>[[907년]] || ||<bgcolor=white>[[고려]] [[영암군|낭주군]][br](현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성기동)[* 현재도 동구림리와 서구림리에 걸쳐 [[낭주 최씨]]의 집성촌이 남아 있다. 독립유공자 [[최규창]]은 동구림 출신이며, 독립유공자 [[최기준#s-2|최기준]]은 서구림 출신이다.] || ||<|2><bgcolor=#191970> '''{{{#white 사망}}}''' ||<bgcolor=white>[[987년]] [[4월 2일]] || ||<bgcolor=white>[[고려]] [[개경]] || [목차] == 개요 == [[후삼국]]~[[고려]] 초기의 [[문신]]. 초명은 최총진(崔聰進)이지만 [[태조(고려)|왕건]]에게 지몽(知夢)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 생애 == 아버지는 지방의 [[호족]] 원보 최흔(崔昕)이며 907년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성기동에서 태어났는데 최지몽은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온화하였으며 학문을 좋아하였다. 대광 현일(玄一)에게서 유학과 [[역사]]를 배웠으며 [[천문]]과 점복(占卜)에도 능하였다. 태조 7년(924) 18세의 나이로 태조에게 불려가 태조의 [[꿈]]에 대해 장차 삼한(三韓)을 통일하게 될 징조라고 [[해몽]]하여 칭찬을 받고 지몽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후 태조의 측근에서 보좌하며 정치적 자문에 응하였다. [[혜종(고려)|혜종]] 대에는 사천대 공봉(供奉)의 직으로서 혜종의 시해 음모를 예측하여 혜종으로 하여금 여러 차례 [[암살]]의 위기를 모면케 하였다. [[정종(고려 3대)|정종]], [[광종(고려)|광종]]으로부터도 후대를 받았으나 [[왕권]] 강화를 적극 추구하던 광종 말년에는 미움을 받아 한동안 관직이 박탈되기도 하였다. [[경종(고려)|경종]] 5년(980) 내의령(內議令) 직으로 복귀하고 [[성종(고려)|성종]] 원년 좌집정(左執政) 수내사령(守內史令)의 직위와 홍문숭화치리공신(弘文崇化致理功臣)의 호와 함께 왕의 신임을 받았다. 성종 6년 당시로서 장수한 나이인 81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태자태부(太子太傅)를 증직하고 [[시호]]를 민휴(敏休)라 하면서 경종의 묘정에 배향하였다. 무려 6명의 왕을 섬긴 고려 초기 지방 출신의 문신 [[관료]]이며 주로 국왕의 측근에서 정치적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 역임 관작 == ||<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191970><bgcolor=#191970> '''{{{#white 태자삼사}}}''' ||<bgcolor=white>태자태부(太子太傅) ||<bgcolor=white>태자(太子)의 스승. 명예직이다. || ||<bgcolor=#191970> '''{{{#white 향직 품계}}}''' ||<bgcolor=white>대광(大匡) ||<bgcolor=white>2품 1등위 품계. || ||<bgcolor=#191970> '''{{{#white 작위}}}''' ||<bgcolor=white>동래군후(東萊郡侯) ||<bgcolor=white>군후(郡侯)이다. 문종의 오등봉작제 이전의 작위. || ||<bgcolor=#191970> '''{{{#white 훈위}}}''' ||<bgcolor=white>주국(柱國)[br]상주국(上柱國) ||<bgcolor=white>작위와 함께 신하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한 명예직. || ||<bgcolor=#191970> '''{{{#white 공신호}}}''' ||<bgcolor=white>홍문숭화치리공신(弘文崇化致理功臣) ||<bgcolor=white> || ||<bgcolor=#191970> '''{{{#white 수직}}}''' ||<bgcolor=white>수내사령(守內史令) ||<bgcolor=white>수(守)는 행수법을 따른 것으로 자신의 품계보다 높은 품계의 직위를 받을 때 붙힌다. || ||<bgcolor=#191970> '''{{{#white 직위}}}''' ||<bgcolor=white>공봉(供奉)[br]사천관(司天官) / 사천공봉(司天供奉)[br]내의령(內議令)[br]좌집정(左執政) ||<bgcolor=white> || == 대중매체에서 == 고려 초기를 다룬 [[사극]]들에서 비중있는 역으로 출연했는데 장수하면서 여러 시대에 걸쳐 활약했기 때문에 등장하는 시대의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다. 태조 치세에는 젊은이, 광종 치세 쯤부터는 장년~노년으로 등장한다. === 태조 왕건 === 2000년작 [[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배우 [[박지영]][* 현재는 '지아니 박'이라는 예명을 쓰며 음악가 겸 스타일리스트로 활동 중.]이 연기했다. 제141화에서 최초로 등장하는데 [[최응]]이 왕건에게 "최총진이라고 하는 학문이 뛰어나고 천문과 복술에 밝은 신동이 있다"며 천거한다. 이때 그의 나이 17살로 최응보다는 3살 늦게 조정에 출사했다. [[왕건(태조 왕건)|왕건]]과의 첫 만남에서 과거 왕건이 30살에 꾼 꿈을 아직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해몽을 요청하는데 정확하고 명쾌한 꿈풀이를 선보여 천문과 복술에 밝다는 점을 스스로 증명했다. 조정에 출사한 이후에도 실제 [[사료]]처럼 뛰어난 해몽과 예언에 가까운 예측을 선보여 왕건의 신뢰를 얻는다. 최응을 존경하여 최응 밑에서 활약하였으며 마치 최응의 [[후계자]]같은 묘사가 많이 나오는데[* 최응 사후 최응이 맡고 있던 직책인 병부의 수장인 [[병부령]]은 최지몽이 아니라 [[배현경]]이 맡게 된다. 이는 마치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사망한 이후 [[승상]] 직책은 [[장완]], [[비의]] 등이 이었지만 후계자로서 [[강유]]가 부각되는 [[삼국지연의]]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최응이 [[최승우]]와 대담할 때도 직접 최지몽을 데려와 같이 대담하기도 한다. 조물성으로 친정하는 것에 대해서 안좋은 점괘가 나왔다고 하거나 제146화에서 죽는 [[태평]]이 죽기 며칠 전 꿈 이야기를 할 때 등 최지몽이 불길하다거나 안좋은 점괘가 나왔다고 말만 하면 그대로 들어맞는다. 전투에서는 왕건과 함께 전장에 종군하는데 주로 복술을 이용하여 전투의 향배를 예측하는 모습을 보인다.[* [[공산 전투]] 이후 수세에 몰리는 왕건의 친정에서 최응과 함께 참전하며 보조 [[참모]] 비슷한 역할을 하는데 아무리 불길하다고 조언을 해도 왕건이 듣지를 않아서 고생이 말이 아니게 나온다. [[고창 전투]]를 앞두고는 "기근재(어린 시절), 역려재(조물성), 도병재(공산) 삼재(三災)가 모두 지나갔으니 이번에는 이긴다"는 희망찬 예언을 해준다.] === 제국의 아침 === 2002년작 KBS 드라마 [[제국의 아침]]에서는 배우 [[정동환]]이 연기했다.[* 이후 같은 [[작가]]의 작품인 [[야인시대]]에서는 [[최동열]] 기자 역할로 등장한다.] 극 중 [[신라]]계와 패서계 등으로 나뉘어 있는 상황에서 신라계[* 고려 초기의 신라계 집단은 신라의 집권층인 [[진골]] 출신의 정통 [[권력]] 집단이 아닌 [[6두품]]의 유학을 공부한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신라 치세에는 능력과 상관없이 출세 자체에 제한이 있는 계층으로 6두품의 경우 고려의 [[건국]]은 새로운 기회였기 때문이다.] 수장으로 등장하여 여러 상황에서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나 공세적이기 보다는 수세적인 입장.[* 드라마상으로 혜종에서 광종 어간은 패서계 호족 집단과 왕건의 고명대신 집단은 계속해서 충돌을 거듭했고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신라계 집단은 두 세력 사이에서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해야 했던 상황이다. 최지몽은 주로 이 상황에서 [[신하]]들을 돌보고 [[황제]]의 편에 서서 힘을 실어주는 식으로 활약한다.] 그러다보니 태조 왕건에서 보여주던 신동의 [[이미지]]보다는 노회한 정객의 이미지가 강하다. [[광종(고려)|광종]]([[김상중]])이 조정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협조하지만 자신 또한 [[숙청]]될 것을 알고 극의 최후반에서 술김에 광종에게 주정을 부리다 끝내 그를 대노하게 만든다. 그러나 공이 큰 신하였기에 죽이지는 않고 [[유배]]를 보내는데 이는 최지몽이 의도적으로 벌인 일. 결국 살얼음판인 조정을 떠나 눈 내리는 유배길에 오르면서 기분좋게 껄껄 웃는 모습으로 퇴장한다. === 천추태후 === 2009년작 KBS 드라마 [[천추태후(드라마)|천추태후]]에서는 원로 연극배우 [[전성환]][* [[KTF]]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CF]]의 [[만학도]] 역, [[뿌리깊은 나무(드라마)]]에서 [[황희]] 역을 맡았다.]이 연기했다. 고려 정치계 내부의 북방계와 신라계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중립파로 등장하며 [[불치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된 [[경종(고려)|경종]]이 [[목종(고려)|태자]]의 후견인 역을 맡길 정도로 신뢰한다. 그러나 실상은 광종에 대한 원한 때문에 [[성종(고려)|왕치]]와 손을 잡고 그를 왕으로 옹립하려고 시도한다. 계획대로 경종의 사후에 왕치를 [[왕위]]에 올리는데는 성공했지만 목종과 그 생모 [[헌애왕후]]를 숙청해야 한다는 진언을 성종이 단호하게 거부하자 성종의 곁을 떠나게 된다. === 빛나거나 미치거나 === 2015년작 [[MBC]] 드라마 [[빛나거나 미치거나]]에서는 배우 [[김병옥]]이 연기했다. 중립파로 등장하지만 이면에서는 훗날 광종이 되는 [[광종(고려)|왕소]]를 후원한다. [[하늘]]의 뜻을 읽어 내리는 특별한 능력이 있지만 겹쳐진 [[운명]]에서 하나만 보아 주인공 둘의 앞날을 꼬이게 만들뻔 했다. 이후 주인공 신율([[오연서]])이 또다른 자미성의 운명을 가진 여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갑자기 존칭을 사용하면서 왕소는 황제가 될 운명이니 잘 보필해달라고 부탁한다. ===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 === 2016년작 [[SBS]] 드라마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에서는 배우 [[김성균]]이 연기했다. 고려 [[첨성대]]에서 머물며 천기를 읽는데 주인공 하진([[아이유]])의 [[타임슬립]]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각주] [[분류:907년 출생]][[분류:987년 사망]][[분류:고려의 개국공신]][[분류:고려의 배향공신]][[분류:고려의 후작]][[분류:낭주 최씨]][[분류:영암군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