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대한민국의 배우, rd1=최제우(배우))] [include(틀:역대 동학·천도교 교주)] ||<-2> [[파일:bandicam 2017-06-24 12-35-26-196.jpg|width=300]] [[파일:수운최제우_이당김은호.jpg|width=268]] [* 왼쪽의 초상화는 한국 최초 서양화가로 알려진, 춘곡 [[고희동]] 화백이 1893년 [[아사히 신문|아사히신문(朝日新聞)]] 기사 그림을 바탕으로 그린 것을 수정한 수정본이다. 당시 천도교 교단에서 요청했던 그림으로 원본은 전해지지 않는다. 해당 초상화는 현재 [[천도교]]에서 공식 존영(사진이나 초상화를 높여서 부르는 말)로 쓰이고 있다. 오른쪽의 초상화는 [[순종(대한제국)|순종]]의 어진을 그린 구한말 최후의 [[어진]] 화사였던 이당 [[김은호]] 화백이 1909년에 그린 작품이다. 동학의 교파 중 하나인 [[시천교]]에서 요청한 작품이고, 최제우의 수양딸인 주씨(朱氏)의 증언을 토대로 그려내 작품이다. 사상적으로 한국사의 근세와 근현대를 가르는 한 인물의 얼굴을 전근대미술의 마지막 화가와 근대미술의 시발점인 화가가 동시에 그려냈다는 점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 || '''[[이름]]''' ||||<(> 최제우(崔濟愚) || || '''초명''' ||||<(> 제선(濟宣) || ||<tablealign=center> '''[[호]]''' ||||<(> 수운(水雲) || || '''생몰 기간''' ||<(> [[1824년]] [[12월 18일]] ~ [[1864년]] [[4월 15일]](총 14364일) || || '''출생지''' ||||<(>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 [[경주 최씨]] 집성촌이다. 이 마을에는 [[https://terms.naver.com/entry.nhn?cid=46652&docId=569210&categoryId=46652|용담성지]]라는 [[천도교]]성지가 있는데, 바로 최제우의 출생지이다.] || || '''본관''' ||||<(> [[경주 최씨]] || || '''비고''' ||<(> [[동학]]의 '''[[교조]](敎祖)''' || [목차] == 소개 == [[조선]]의 [[종교]] 사상가이자 [[동학]]([[천도교]])의 창시자 겸 제1대 교주[* 종교를 창시했기 때문에 교조(敎祖)라는 표현이 더 많이 쓰인다.]. 호는 수운(水雲)이며 현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 출생이다. '경주 최부잣집'의 비조인 [[최진립]]의 7대손이다.[* [[족보]]상으로는 최진립의 형 최진흥(崔震興)의 7대손인데 6대조 최동길(崔東吉)이 최진립의 넷째 아들로서 후사가 없는 최진흥의 [[양자]]로 입적되었기 때문이다.[[https://terms.naver.com/entry.nhn?cid=46652&docId=529383&categoryId=46652|#]]] == 생애 == 아명은 복술(福述)이었으며 30대 시절 제선(濟宣)이라는 이름을 제우[* '우매한 백성을 구제한다.'는 의미가 있다.]로 [[개명]]하고 13살에 [[울산광역시|울산]] 출신의 부인 박씨과 [[결혼]]하여 꼬마 신랑 역할을 하였다는 기록도 있으나 실제로는 19세에 결혼하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10세 때 어머니를 여의었고 17세 때 아버지를 여의면서 일찍이 [[고아]]가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재가녀였으므로 최제우는 재가녀의 자손이 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문과를 볼 수 없었으나 부친인 근암공[* 근암공은 [[퇴계 이황]] 학파의 정통 계승자로 당대 [[영남]] 선비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은 "모름지기 8살 때까지 [[공부]]를 시켜보면 싹수를 알 수 있다." 하며 최제우에게 유학 [[교육]]을 시켰다. 대학자에게 수학을 받았으나 가세가 기울고 양친이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 결혼을 하며 먹여살릴 식구가 생긴 최제우는 생계 방편이 없는 몰락한 [[양반]]의 처지가 된다. [[농사]]도 배우지 않았으므로 무과를 준비한 흔적이 보이나 [[무인]]의 길을 접고 10년 동안 전국 각지를 유랑하며 [[장사꾼]]으로 일한 듯하다.[* 오지영의 <동학사>에는 최제우가 "시정에서 장사도 해보았고 한량들 틈에 끼어 활도 쏘아 보았고 호협자와 함께 말도 달려 보았고 일찍부터 유도, 불도, 선도와 <야소실>에 이르기까지 제자백가서를 낱낱이 섭렵해보았다"라고 기록한다.] 이때 최제우는 조선이 망해간다는 암담한 현실을 선각한 듯하다. [[청나라]]와 [[대영제국]]과의 [[아편 전쟁]]을 전해듣고서 청나라가 대영제국에게 패배당했으니 우리나라는 [[순망치한]]의 상태라고 생각했으며 [[서학]]을 표방한 [[서양]] 세력들은 무슨 일이든 다 할 만큼 능통하기는 하지만 침략하려는 마음가짐을 지녔으니 서학도 올바른 [[정신]] 세계는 아니라고 판단한다. 이 문제에 대해 높으신 분들에게 협의를 해보려 하였으나 양반들은 장사꾼 행색인 최제우에게 판에 박힌 말들(공자 왈 맹자 왈)을 하며 현실조차 파악하지 못하였다.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최제우는 "요순지치도 공맹지덕도 부족언"[* 요순의 통치,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도 이 난국을 타파하기에는 부족하다.]이라며 말 그대로 새로운 가르침, 새로운 [[문화]]가 필요한 "다시 개벽"의 시대가 왔다는 깨달음을 확고히 한다. 장삿일을 끝내고 1854년 가지고 있던 전답을 팔아 울산[* 현재의 울산광역시 중구 유곡동]에서 지내며 철물점을 하다가 [[사업]]을 그르치고 빚쟁이들에게 쫓겨 다시 [[고향]]인 경주 용담으로 들어가 천도를 얻으려는 수행을 계속 하던 어느날 신내림과 흡사한 현상을 경험하면서 스스로를 '상제'라고 부르는 존재와 대면하여 주문의 말과 병을 고치는 [[부적]] 문양을 받는다. [[동경대전]]에서 전하는 최제우의 체험은 다음과 같다. > [ruby(不意四月, ruby=불의사월)] [ruby(心寒身戰, ruby=심산신전)] [ruby(疾不得執症, ruby=질부득집중)] [ruby(言不得難狀之際, ruby=언부득난상지제)] > 뜻밖에도 4월에 마음이 선뜩해지고 몸이 떨려서 무슨 병인지 집중할 수도 없고 말로 형상하기도 어려울 즈음에 > > [ruby(有何仙語, ruby=유하선어)] [ruby(忽入耳中, ruby=홀입이중)] [ruby(驚起探問則, ruby=경기탐문즉)] > 어떤 신선의 말씀이 있어 문득 귀에 들리므로 놀라 캐어 물은즉 > > [ruby(曰勿懼勿恐, ruby=왈물구물공)] > 말씀하시기를 {{{#B22222 "두려워 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말라.}}} > > [ruby(世人, ruby=세인)] [ruby(謂我上帝, ruby=위아상제)] [ruby(汝不知上帝耶, ruby=여부지상제야)] > {{{#B22222 '''세상 사람이 나를 [[상제]](하느님)라 이르거늘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 > > [ruby(問其所然, ruby=문기소연)] >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시기를 > > [ruby(曰余亦無功故, ruby=왈여역무공고)] [ruby(生汝世間, ruby=생여세간)] [ruby(敎人此法, ruby=교인차법)] [ruby(勿疑勿疑, ruby=물의물의)] > {{{#B22222 나 또한 공이 없으므로[* 서학의 신 관념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 또 다른 문헌에는 노이무공(노력을 하나 이룬 것이 없는)이라고도 전해진다.]너를 세상에 내어 사람에게 이 법을 가르치게 하니 의심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라.}}} > > [ruby(曰然則, ruby=왈연즉)] [ruby(西道以敎人乎, ruby=서도이교인호)] > {{{#00008B 그러면 서도(서양의 도(道)=기독교의 성경)로써 사람을 가르치리이까?}}} > > [ruby(曰不然, ruby=왈불연)] [ruby(吾有靈符, ruby=오유영부)] [ruby(其名仙藥, ruby=기명선약)] [ruby(其形太極, ruby=기형태극)] [ruby(又形弓弓, ruby=우형궁궁)] > 대답하시기를 {{{#B22222 "그렇지 않노라. 나에게 영부가 있으니 그 이름은 선약이요 그 형상은 태극이요 또 형상은 궁궁이니}}} > > [ruby(受我此符, ruby=수아차부)] [ruby(濟人疾病, ruby=제인질별)] [ruby(受我呪文, ruby=수아주문)] [ruby(敎人爲我則, ruby=교인위아즉)] > {{{#B22222 나의 영부를 받아 사람을 질병에서 건지고 나의 주문을 받아 사람을 가르쳐서 나를 위하게 하면}}} > > [ruby(汝亦長生, ruby=여역장생)] [ruby(布德天下矣, ruby=포덕천하의)] > {{{#B22222 너도 또한 장생하여 덕을 천하에 펴리라."}}} >---- > 동경대전東經大全 - 포덕문布德文 최제우는 자신의 신내림이 [[꿈]]은 아닌가 하면서 1년을 다시 수행하고서 그때 얻은 가르침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고 동학을 창시한다. == 최후 == 동학의 규모가 커지고 동학의 위협론 등이 폐쇄적인 영남 [[서원]] 사이를 오가면서 동학을 배척하는 움직임이 생긴다. 이로 인해 1862년 9월 경주 [[관아]]에서 최제우를 처음 [[체포]]하였으나 [[제자]]들의 탄원으로 인해 [[석방]]되었다. 이후 동학 활동을 지속하였다가 1864년 이름만 바꾼 서학이라는 혐의와 '혹세무민'한다는 혐의를 받아 조정에 체포된다. 조정에서 파견된 선전관 [[정운귀]](鄭雲龜)가 올린 장계에 따르면 '경주에 가까워올수록 주문[*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소리가 마을마다 채우고 있었다'고 하므로 당시 동학의 파급력이 강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최제우는 체포되어 [[과천시|과천]]까지 왔다가 [[철종(조선)|철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따른 조정의 혼란 때문에 다시 [[대구광역시|대구]]에 있는 [[경상]] 감영으로 이감되었는데 경상 감영에서 [[사형]]이 집행되어서 41세 나이로 [[순교]](殉敎)하였다. 오히려 타 학문에 대한 배척도가 심한 영남 지방에서 [[재판(법률)|재판]]을 받은 것이 더 안 좋게 작용했을 수 있다. 이후 [[최시형]]이 제2대 교주가 되어 동학을 이끌었다.[* 같은 [[경주 최씨]]지만 최시형은 완전히 몰락하여 머슴살이로 생계를 꾸리던 사람이었다. 최제우가 철저하게 능력만으로 [[후계자]]를 정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 뒤를 이은 최시형도 최제우의 정신을 철저하게 이어나갔다.] == 여담 == * 최제우의 사상은 [[증산계통 종교]]와 [[원불교]]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특히 증산교에서는 중요한 인물이 최제우다. * 최제우의 동상이 [[달성공원]]([[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 내 관풍루 앞에 있다. [각주] [[분류:1824년 출생]][[분류:1864년 사망]][[분류:조선의 사형수]][[분류:참수된 인물]][[분류:종교 창시자]][[분류:경주시 출신 인물]][[분류:경주 최씨]][[분류:동학·천도교 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