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고려의 유학자]][[분류:경주 최씨]][[분류:고려의 배향공신]][[분류:1046년 사망]] [include(틀:고려의 배향공신)] ||<-3><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191970><#191970> '''{{{#white {{{+1 경주 최씨 가문 출신 배향공신}}}}}}''' || ||<-3><:><#191970> '''{{{#white 최승로 가문}}}''' || ||<:><white> '''문정공 [[최승로]]''' ||<:><white> '''충의공 [[최숙]]''' ||<:><#191970> '''{{{#white 순공공 최제안}}}''' || ||<-3><:><#191970> '''{{{#white 기타 가문}}}''' || ||<:><white> '''광빈공 [[최량(고려)|최량]]''' ||<:><white> '''절의공 [[최항(배향공신)|최항]]''' ||<:><white> || ||<-3><table align=center><tablebordercolor=#CCCC00><#CCCC00> '''{{{#white 고려국 4대 중서문하성 장관[br]{{{+1 최제안}}}}}}''' || ||<-2><#CCCC00> '''{{{#white 시호}}}''' ||<(><white> '''순공공(順恭公)''' || ||<-2><#CCCC00> '''{{{#white 삼사}}}''' ||<(><white> '''태사(太師)''' || ||<-2><#CCCC00> '''{{{#white 본관}}}''' ||<(><white> 경주 최씨(慶州 崔氏) || ||<-2><#CCCC00> '''{{{#white 이름}}}''' ||<(><white> 제안(濟安) || ||<-2><#CCCC00> '''{{{#white 아들}}}''' ||<(><white> 최계훈(崔繼勳) || ||<-2><#CCCC00> '''{{{#white 아버지}}}''' ||<(><white> [[최숙]] || ||<-2><#CCCC00> '''{{{#white 출생}}}''' ||<(><white> ? || ||<|2><#CCCC00> '''{{{#white 사망}}}''' ||<#CCCC00> {{{#ffffff 음력}}} ||<white>1046년 11월 12일 || ||<#CCCC00> {{{#ffffff 양력}}} ||<white>1046년 12월 12일 || [목차] == 개요 == 중기 [[고려]]왕조의 문관. [[경주 최씨]] 문벌귀족 출신으로 할아버지가 그 유명한 [[최승로]]다. 당대 최고의 명문가 중 하나로 할아버지, 아버지, 본인이 다 [[문하시중]]을 지내고 [[배향공신]]이 되었다.[* 삼대가 배향공신이라는 점은 이천 서씨 가문인 [[서필]], [[서희]], [[서눌]]과 정주 류씨 [[유소(고려)|유소]], [[유홍(고려)|유홍]], [[유인저]]도 같다.] == 생애 == 현종 11년(1020) 고려에서 [[거란]]과 [[송나라]]에 동시에 사신을 보내는데, 최제안은 거란에 가서 천령절(千齡節)을 하례한다. 현종 17년(1026) 태자궁의 관리인 태자우서사에 임명된다. 이 때 태자궁에 함께 임명된 관리가 [[황주량]](당시 태자소첨사)과 [[최충]](당시 태자중윤)인데, 이들도 최제안과 마찬가지로 훗날 배향공신에까지 이른다. 최제안은 현종 21년(1030) 중추사, 덕종 3년(1034)에 형부상서에서 [[정종(고려 10대)|정종]]이 즉위한 뒤 이부상서, 정종 3년(1037) 상서좌복야 참지정사 중추사를 거쳐 정종 9년(1043)에 문하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 판상서호부사에 오른다. 정종 12년(1046)부터 국가적 종교행사인 가구경행(街衢經行)을 시작하는데, 당시 문하시중이었던 최제안이 이를 주관한다. 같은 해 8월 [[문종(고려)|문종]]이 즉위한 뒤 평장사 최충과 함께 선정전에 불려가 정사를 논의했으며, 10월에는 6위의 각 군에 선봉군을 편성할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11월에 병을 앓았는데, 문종이 직접 병문안을 올 정도였다. 그러나 이틀 뒤 죽으니 문종은 사흘 동안 조회를 멈추고 애도했다. 사후 순공(順恭)의 시호를 받는다. 최제안의 어린 아들은 계훈(繼勳)[* 이름의 뜻은 '명예, 훈작을 잇다.']이란 이름을 받고, 아직 관직에 나아갈 나이가 아니었음에도 이듬해인 정종 13년(1047) 8품 관직을 받는다. [[선종(고려)|선종]] 3년(1086)에 문종의 묘정에 배향된다. == 일화 == 최제안의 열전에 따르면 건국군주 [[태조(고려)|태조 신성왕]]이 직접 작성한 [[훈요 10조]]가 [[여요전쟁]]으로 인해 사라졌는데, 이를 먼 친척인 [[최량]]의 집에서 다시 찾아낸 자가 바로 최제안이다. 최제안 덕분에 현대의 후손들이 태조의 유훈을 보고 분석할 수 있게 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