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align=right><bgcolor=white><:>[[파일:최익형.jpg|width=300px]] || || 성명 ||최익형(崔益馨) || || 생몰 ||[[1890년]] [[1월 25일]] ~ [[1950년]] [[10월 15일]] || || [[출생지]] ||[[황해도]] [[안악군]] 문산면 원성리 || || 사망지 ||[[황해도]] [[안악군]] || || 추서 ||건국훈장 독립장 || [목차] [clearfix]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최익형은 1890년 1월 25일 황해도 안악군 문산면 원성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7년 4월 [[양기탁]], [[안창호]], [[전덕기]] 등이 [[신민회]]를 창립하자 이에 가입하여 황해도 지회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1911년 1월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된 뒤 징역 7년을 선고받고 5년간 복역했다. 이후 출옥한 그는 1921년 처남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적십자사장인 [[안정근]]으로부터 임시정부 자금 모집을 의뢰받고 [[나태섭]] 등 동지들과 함께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해 일부 자금을 임시정부로 보냈다. 그러나 1921년 8월에 또다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34년 비밀리에 상하이로 건너간 그는 임시정부로부터 [[김구]]의 가족을 상하이로 보내라는 의뢰를 받고 귀국하여 안악군에 거주하던 김구의 모친 [[곽낙원]]과 아들들을 김선량(金善亮)으로 하여금 호송하도록 자금을 제공했다. 이후 안악군에서 여생을 보내다 1950년 10월 1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최익형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안악군 출신 인물]][[분류:1890년 출생]][[분류:1950년 사망]][[분류:건국훈장 독립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