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73년 출생]][[분류:2008년 사망]][[분류:정읍시 출신 인물]][[분류:개명한 인물]] [[파일:최요삼.jpg]] [목차] == 개요 == 최요삼(본명: 崔堯三, 개명: 崔堯森, [[1973년]] [[10월 16일]] ~ [[2008년]] [[1월 3일]])은 대한민국의 [[권투]] 선수다. == 일생 == 1973년 10월 16일 [[전라북도]] [[정읍시|정읍군]] 정주읍(현 [[정읍시]])에서 태어났으며, 권투는 영등포중학교 2학년이었던 [[1987년]]에 시작하였다. 이후 [[용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3년]] 프로 권투 선수로 데뷔하였다. [[1994년]] 라이트 플라이급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1995년]] [[11월 24일]] 한국챔피온에 도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하지만 [[1996년]] 라이트 플라이급 동양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였고, [[1999년]]에는 [[세계 권투 평의회|WBC]] 라이트 플라이급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2004년]] WBA 플라이급 타이틀 도전에 실패한 후 은퇴를 선언하였다가 [[2007년]]에 재기하였다. 2007년 9월에 WBO 플라이급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에 등극하였고 같은 해 [[12월 25일]] 1차 방어에 성공하였다. == 사망 == 2007년 12월 25일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 광진구민 체육센터에서 열린 WBO 플라이급 인터콘티넨탈 타이틀 1차 방어전 최종 12라운드에서 도전자 헤리 아몰(Heri Amol, 인도네시아)에게 오른손 스트레이트에 턱을 맞고 쓰러진 뒤 일어섰으나, 판정승이 선언된 뒤 다시 정신을 잃었다. 곧바로 용산구에 있는 [[순천향대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안타깝게도 [[뇌사]] 판정을 받고 2008년 1월 3일에 사망 후 가족의 동의를 얻은뒤에 [[각막]] 2개, [[콩팥|신장]] 2개, 심장 등을 6명에게 [[장기기증]]했다. [[향년]] 35세. 2008년 2월 20일 유골이 안치돼있는 경기도 안성시 유토피아추모관에서 [[49재]]가 치러졌다. 이 일로 격투기 선수들을 비롯한 응급시설과 메디컬 테스트의 부실함이 큰 주목을 받았으며, 특히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의 허술함이 문제가 되어 법 개정으로 이어지는 등 사회 전반의 응급 의료시설이 재조명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에 [[리쌍]]이 최요삼 선수를 주제로 한 [[챔피언(리쌍)|추모곡]]을 만들었다.[[https://www.youtube.com/watch?v=K0j7FISQABI|#]][* 무한도전 복싱특집에서 길이 최요삼을 떠올리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왔고, 방송에서는 딱히 싸움 잘 하는 티는 안 내지만 개리도 용인대학교 경호학과 출신에 복싱도 오래 해 온 실력자여서 복서들과도 친분이 많다. 리쌍은 5집의 타이틀을 '[[백아절현]]'이라 이름지을 정도로 생전의 최요삼과는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분류:권투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