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목록]], [[불교/인물]] [[파일:external/rokps.or.kr/757.jpg|width=150]] 崔泳謹 [[1922년]] [[4월 24일]] - [[2004년]] [[8월 13일]] [[대한민국]]의 전 [[관료]], [[기업인]], [[정치인]]이다. [[종교]]는 [[불교]]다. 호는 우송(友松)이다. 1922년, [[경상남도]] 울산군(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삼정리에서 태어났다. 같은 [[울산광역시|울산군]] 출생의 [[이후락]]과는 어릴 적부터 친한 사이였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민주당(1955년)|민주당]] 신파 계열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그러면서 [[김대중]]과는 사석에서 말을 놓는 사이로 친해졌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상남도 울산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안덕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같은 선거구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61년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정무차관을 지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남도 울산시-울산군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1967년)|신민당]] 후보로 출마하였다가 [[민주공화당]] 설두하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정계를 잠시 떠나 [[ABL생명|제일생명보험]] 사장, [[한국기원]] [[이사장]], 한국권투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80년 [[서울의 봄]] 때는 친구였던 [[민주공화당]] [[이후락]] 의원으로부터 "1973년 [[박정희]]가 김대중을 죽이라고 지시했으나 자신은 곤혹스러워 계속 미뤘었고 [[김종필]]과도 이야기가 다 되었다며 박정희가 재촉하자 실행했다"라는 [[김대중 납치 사건]] 관련 전말을 들었다. 1980년대 중반에는 민주헌정연구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김대중을 외곽에서 지원하였다. 1987년 김대중이 [[평화민주당]]을 창당하자 입당하였다. 이듬해인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전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울주군 출신 인물]][[분류:1922년 출생]][[분류:2004년 사망]][[분류:제5대 민의원의원]][[분류:제6대 국회의원]][[분류:제13대 국회의원]][[분류:민주당(1955년) 국회의원]][[분류:민주당(1963년) 국회의원]][[분류:민중당(1965년) 국회의원]][[분류:신민당(1967년) 국회의원]][[분류:평화민주당 국회의원]][[분류:신민주연합당 국회의원]][[분류:민주당(1991년)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