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bgcolor=#f04d22> '''[[조선일보]]''' '''주필''' || || [[유봉영(1897)|유봉영]](1961~1965) || → ||<bgcolor=#c0c0c0,#3f3f3f> '''최석채(1965~1971)''' || → || [[선우휘]](1971~1980) || 崔錫采 [[1917년]] [[11월 21일]] ~ [[1991년]] [[4월 11일]] [[대한민국]]의 전 언론인이다. 호는 몽향(夢鄕), 본관은 [[화순 최씨|화순]](和順). 최석채는 1917년 11월 21일 [[경상북도]] [[김천시|김천군]] [[조마면]] 신안리[* [[화순 최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최무길]]·[[최익길]]과 배우 [[최란]]도 이 마을 출신이다.][[http://news.imaeil.com/CultureAll/2015091320520423899|#]]에서 태어났다. 1936년 [[일본]]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한 뒤 일본에서 유학하여 주쿄법률학교, [[주오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1942년 3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일본 잡지 호세이의 편집기자를 지냈다. [[8.15 광복]] 후 건국공론 편집부장, 경북신문 편집국 차장, 부녀일보 편집국장 등을 지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경찰공무원]]으로 성주경찰서장, 문경경찰서장, 영주경찰서장 등을 역임하다가 1952년 [[발췌 개헌]] 소식을 듣고 사표를 냈다. 1954년부터 언론계로 돌아가 대구신문을 거쳐 대구[[매일신문]]에서 편집국장, 주필을 지냈다. 1955년 [[대구 매일신문 테러 사건]] 때 구속되기도 하였다. 1959년 [[조선일보]]로 이직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사회대중당]] 후보로 경상북도 대구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1955년)|민주당]] [[서동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내다가 다시 조선일보로 이직하여 편집국장, 주필 등을 지냈다. 1973년부터 1980년까지 및 1988년부터 1989년까지 [[문화방송]] [[회장]]을 지냈으며 1979년부터 1980년까지 [[정수장학회]] [[이사장]]도 지냈다. 2000년에는 1964년 언론윤리법 파동 때 언론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앞장선 공로로 국제언론인협회(IPI)가 선정하는 20세기 언론자유영웅(Press Freedom Hero) 50인에 뽑혔다.[[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000408/7523616/1|#]] [[분류:기자]][[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1917년 출생]][[분류:1991년 사망]][[분류:화순 최씨]][[분류:금관문화훈장]][[분류:주오대학 출신]][[분류:화순 최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