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조선 영의정(광해군-경종))] ||<-2><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94153e><tablebgcolor=#fff,#191919><bgcolor=#94153e> '''{{{#ffc700 {{{+1 최석정}}}[br]崔錫鼎}}}''' || ||<-2><bgcolor=#ffffff>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최석정 초상.jpg|width=100%]]}}} || ||<colbgcolor=#94153e><width=100> '''{{{#ffc700 본관}}}''' ||[[전주 최씨]](全州 崔氏) || || '''{{{#ffc700 성명}}}''' ||최석정(崔錫鼎) || || '''{{{#ffc700 자}}}''' ||여시(汝時), 여화(汝和) || || '''{{{#ffc700 호}}}''' ||존와(存窩), 명곡(明谷) || || '''{{{#ffc700 생몰년}}}''' ||1646년 7월 2일 ~ 1715년 12월 6일 || [clearfix] [[조선]]시대의 [[영의정]]이자 [[수학자]]. [[병자호란]] 때 [[주화파]]의 대표였던 [[최명길(조선)|최명길]]의 손자이다. 현종 13년, 즉 1672년에 검열에 제수된 것을 시작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했으며 [[숙종(조선)|숙종]]때 무려 9번이나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붕당정치가 망연하던 시대였기에 소론이었던 그는 사직을 반복했다. [[수학자]]로서 [[산학원본]]이라는 책의 서문을 써주었고, [[구수략]]이라는 수학 서적을 편찬했다. 구수략에는 각종의 [[마방진]]이 실려 있다. 첫째로 9x9정사각형에 3x3 마방진[* 애석하게도 아기방진은 양 대각선의 합이 모두 같지는 않다.] 9개가 있는 마방진이 있다. 둘째로 1부터 n까지 한줄에 한개씩 쓴 라틴 방진을 가로 세로로 겹친 [[그레코 라틴 방진]]을 '''세계 최초'''로 연구하였다. 9x9는 찾고 10x10을 찾는데는 실패하였다. 그리고 [[육각형]] [[거북이]]등껍질처럼 숫자를 배열하여 한 육각형에 오는 숫자의 합이 같도록 한 [[지수귀문도]]를 창시하였다. 그의 죽음을 전해들은 숙종은 “지극한 슬픔으로 눈물이 흘러 옷깃을 적시었다.”란 반응을 보였다. 졸기는 노론이 주도하여 쓴 숙종실록에는 인격 모독 등이 포함되어 상당히 박하게 쓰여있고, 소론이 주도하여 쓴 숙종실록보궐정오에는 아주 좋게 쓰여있다. 어느쪽이나 총명하다고 쓰여있으니 진짜 똑똑했다고 보면 되겠다.[* 참고로 할아버지였던 최명길 역시도 똑똑했다. 생원시, 진사시,대과를 같은 해에 합격했다. 보통은 생원시나 진사시중 하나만 통과해도 그래도 괜찮은 축에 속해보일 정도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편.] [[분류:수학자]] [[분류:영의정]] [[분류:소론]] [[분류:1646년 출생]] [[분류:전주 최씨]] [[분류:1715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