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파일:external/dd6d5c214c53d9587dd569a4f683d5012200077544c7ebd2809bcbb593c87c99.jpg|width=300]] || || '''이름''' || 최삼환 (崔三桓) || || '''생년월일''' || [[1955년]] [[8월 15일]] || || '''사망''' || [[2015년]] [[10월 3일]] (향년 60세) || || '''출신지''' || [[경상남도]] [[통영시]] || || '''신체''' || 183cm, 90kg || || '''출신학교''' || [[인창고등학교(서울)|인창고]] - [[경기대학교|경기대]] || || '''소속팀''' || 한국종합화학 (1980~1983) || || '''지도자''' || [[상무 배구단]] 코치 (1984~1989) [br] [[상무 배구단]] 감독 (1989~2012) || [목차] == 소개 == [[대한민국]]의 전 배구선수 및 감독이자, '''30여년간 군인 배구에 헌신한 배구인'''. == 선수 시절 == 1955년 8월 15일, [[경상남도]] [[통영시|통영]]에서 태어나 통영동중학교 3학년 때 [[배구]]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인창고등학교(서울)|인창고등학교]] - [[경기대학교|경기대]]를 거쳐 [[국군기무사령부|보안사령부]]에 입대하여 당 부대 배구단에서 뛰다가 [[1980년]]부터 한국종합화학 배구단에 입단했으나, 별 활약 없이 3년만에 [[은퇴]]했다. == 지도자 시절 == 은퇴 1년 뒤 [[국군체육부대]] [[상무 배구단|배구팀]]이 출범하면서 코치로 들어와 심재호 감독을 보좌하다가, 1989년에 심 감독이 중앙여고 총감독이 되면서 곧바로 상무의 지휘봉을 잡았다. 이후 특유의 엄격한 훈련과 인화력을 바탕으로 한 조직력으로 대통령배에서 고춧가루 역할을 톡톡히 해 오다가, [[1990년]]부터 입대한 컴퓨터 세터 [[신영철(배구)|신영철]]과 노진수(前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LG화재]] 감독), 이재필, 김동천, 유병종, 오욱환[* 183cm의 단신 왼손 공격수로, 원래 서울시청(서울시립대) 소속이었으나, 팀원들과의 마찰로 팀을 이탈해 웨이터를 전전하다가 상무 입단 뒤 기량이 만개한 선수다. 상무 제대 후 LG화재에 입단해서 선수생활을 몇 년 더 이어 갔다.] 등을 앞세워 1991-1992 시즌에 [[고려증권 배구단|고려증권]],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현대자동차써비스]] 등의 쟁쟁한 실업 강호들을 제치고 대통령배 우승을 차지했고, 그 해 아시아 클럽 남자배구 선수권대회 우승컵도 따 내며 [[리즈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이후 실업 팀들이 선수 [[혹사]]를 우려해 주력 선수들을 상무로 보내는 것을 기피하였음에도 불구, 배구선수들이 꾸준히 상무에 입대하여 조직력 하나로 실업대회와 슈퍼리그에서 괜찮은 성적을 거둬오다 [[2005년]], [[V-리그]]가 출범하면서 초청팀으로 참가해 --여느 군인팀들이 다 그렇듯이-- 약체팀으로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정년을 앞둔 시점인 [[2012년]]에 터진 [[프로배구 승부조작 사건]]의 여파로 인해 2012년 [[2월 11일]]에 '직무정지' 형태로 해임당하며 불명예스럽게 퇴진하고 [[박삼용]]에게 상무의 감독직을 넘겼다. 이후 2013년 [[KOVO컵]] 대회부터 경기감독관으로 활약하다가, 2014-2015 V-리그 대회기간 중 [[백혈병]]으로 하차하였으며, 투병 생활 끝에 2015년 10월 3일 [[별세]]했다. [[향년]] 60세. [[분류:대한민국의 배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배구감독]][[분류:1955년 출생]][[분류:2015년 사망]][[분류:통영시 출신 인물]][[분류:경기대학교 출신]][[분류:백혈병으로 죽은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