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동구(부산) 출신 인물]][[분류:1911년 출생]][[분류:몰년 미상]][[분류:대통령표창(독립유공자)]] ||||<table align=right><bgcolor=white><:>[[파일:최복순.jpg|width=300px]] || || 성명 || 최복순(崔福順) || || 생몰 || [[1911년]] [[1월 13일]] ~ ? || || [[출생지]] || [[경상남도]] 부산부 초계동[br](현재 [[경상남도]] [[부산광역시]] [[동구(부산)|동구]] 초계동) || || 사망지 || 미상 || || 추서 || 대통령표창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최복순은 1911년 1월 13일 [[경상남도]] [[부산광역시|부산부]] 초계동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930년 1월 당시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재학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광주학생항일운동]] 소식을 전해들 은 그녀는 1월 9일에 동급생 최윤숙(崔胤淑)ㆍ김진현(金鎭賢)과 함께 만세시위운동을 계획하고 준비하였다. 최복순은 당시 기독교청년회(基督敎靑年會)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근우회]](槿友會) 서무부장이었던 [[허정숙]]과 광주학생운동의 동조시위를 주도하였다. 최복순 등은 1월 12일 최윤숙의 집에 모여, "학교는 경찰의 침입을 반대하라, 식민지 교육정책을 전폐시켜라, 학생 희생자 모두를 석방시켜라, 조선 청년 학생이여, 아아, 일본의 야만정책에 반대하자, 각 학교의 퇴학생을 복교시켜라" 등 6개 항목을 결의하였다. 각 학년 간의 단결을 위해 학년별로 본부를 정하여 상호 연락을 취했는데, 최복순은 4학년 본부를 맡았다. 또한 [[정신여학교]](貞信女學校) 등 서울 시내 각 학교와 연락을 취하고 격문과 태극기를 준비했다. 1930년 1월 15일 이화여고보 교정에서 300여 명의 학생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서 학교 밖으로 나가 타교생들과 함께 격문을 뿌리며 시위를 계속 하려다가 저지당하고 학우 약 50명과 함께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이 일로 재판에 회부된 그녀는 1930년 3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최복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