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양민학살과 관련된 대한민국 제1공화국 군인들)]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3764><tablebgcolor=#003764> {{{#ffffff '''역임한 직위'''}}} || ||<bgcolor=#ffffff,#19191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include(틀:외교부장관)] [include(틀:육군사관학교장)]}}} || ||<-2><tablebordercolor=#003764><tablebgcolor=#fff><tablewidth=420><tablealign=right>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3764 0%, #003764 20%, #003764 80%, #003764)" '''[[외교부장관|{{{#ffffff 대한민국 제9대 외무부 장관}}}]][br]{{{#ffffff {{{+1 최덕신}}}[br]崔德新 | Choi Deok-shin}}}'''}}}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nsidetheworld.net/2009.07.29-korWar9.jpg|width=100%]]}}} || ||<|2><colbgcolor=#003764><colcolor=#ffffff><width=100> '''출생''' ||[[1914년]] [[9월 17일]]|| ||[[평안북도]] [[의주군]] 월화면 마룡리[br](現 [[평안북도]] [[피현군]] 용흥리)[[http://cybernk.net/infoText/InfoAdminstList.aspx?mc=AD0101|#]]|| ||<|2> '''사망''' ||[[1989년]] [[11월 16일]] (향년 75세)|| ||[[평양직할시]] [[중구역]]|| || '''묘소''' ||[[애국렬사릉]]|| || '''본관''' ||해주 최씨|| ||<|2> '''재임기간''' ||<bgcolor=#f5f5f5,#2d2f34>제9대 외무부 장관|| ||[[1961년]] [[10월 11일]] ~ [[1963년]] [[3월 15일]]|| ||<-2><bgcolor=#fff,#1f2023><color=#373a3c,#ddd>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width=100><colbgcolor=#003764><colcolor=#ffffff> '''부모''' ||아버지 [[최동오(독립운동가)|최동오]] || || '''배우자''' ||류미영 || || '''자녀''' ||아들 최건국, [[최인국]][br]딸 최근애, 최경애, 최순애 || || '''학력''' ||[[육군보병학교|조선경비보병학교]] {{{-2 (졸업)}}}[br]통위부 보병학교 {{{-2 (졸업)}}}[br]육군보병학교 {{{-2 (졸업)}}}[br][[국방대학교]] {{{-2 (행정학사 / 1기)}}} || || '''종교''' ||[[천도교]] || || '''경력''' ||제9대 외무부 장관[br]조국평화총일위원회 부위원장[br]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br]조선천도교회 중앙위원장[br]조선종교인협의회 위원장[br]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장[br]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 || ||<-2> '''군사 경력''' || || '''임관''' ||[[황포군관학교]] {{{-2 (기수 불명)}}}[br][[육군사관학교]] {{{-2 (특3기)}}} || ||<|6> '''복무''' ||<bgcolor=#f5f5f5,#2d2f34>[[국민혁명군]] || ||[[1936년]] ~ [[1946년]] || ||<bgcolor=#f5f5f5,#2d2f34>[[한국 광복군]] || ||?~? || ||<bgcolor=#f5f5f5,#2d2f34>[[대한민국 육군]] || ||[[1947년]] ~ 196?년 || || '''최종 계급''' ||[[중장]] {{{-2 (대한민국 육군)}}} || || '''주요 보직''' ||제8사단장[br]제11사단장[br]제1군단장 ||}}}}}}}}}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군인이자, [[북한]]의 정치인. == 생애 == [[평안북도]] [[의주군]] 월화면 마룡리[[http://w3devlabs.net/korea/archives/7857|#]]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독립운동가 [[최동오(독립운동가)|최동오]](崔東旿)이다. [[한국 광복군]] 출신으로 [[중화민국]] [[국민혁명군]]에 복무했고, 해방 이후에는 한국 [[육군]] [[장교]]가 되어 [[6.25 전쟁]]에는 제8사단과 제11사단의 사단장으로 참전하였으며 막바지에는 휴전회담 대표를 역임하였다. [[제1군단]]장을 지낸 뒤 육군 [[중장]]으로 전역하였으며, [[박정희]] 정권 하에서 [[외교부장관|외무부장관]]과 주 [[서독]] [[특명전권대사|대사]]를 역임했다. [[동백림 사건]] 당시 서독 대사로서 [[서독]] 정부의 반발을 무마하는 역할을 맡았으나, 결국 실패하여 외교 문제로 비화된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는 국제적인 항의에 직면하게 되었고, 사태 수습을 위해서 박정희는 최덕신을 해임해 버렸다. 정권에서 내쳐진 최덕신은 천도교 [[교주(종교)|교령]]으로 취임하는데, 박정희 정권에 대한 반감인지 서서히 친북노선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1976년 2월 [[미국]]으로 이주한 후 수시로 [[북한]]을 방문하고 공개적으로 6.25 전쟁 북침설을 주장하는 등 [[친북]] 활동을 벌이다가 1986년 북한으로 망명하였다.[* 천도교는 10년 뒤인 1997년에도 [[오익제]] 교령이 월북해서 큰 곤욕을 치뤘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6.25 전쟁 당시 훈공이 박탈되지는 않았고, 인민의 에어브러쉬질로 유명한 북한과 달리 6.25 전쟁 관련 기록도 그대로 남아있다. [[김일성]]은 10대 소년 시절에 최덕신의 부친인 독립운동가 [[최동오(독립운동가)|최동오]] 선생이 만주에 설립한 화성의숙을 다닌 과거가 있는데, 김일성은 이런 인연을 들면서 최덕신을 설득했다고 한다. 북에서는 극진한 대접을 받았으며,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장,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북한에 거주하던 3년 동안 여러 직책을 역임했는데, 북한의 조선[[골프]]협회 회장을 맡는 등 나름 이색적인 직책을 맡기도 했다. 사후 북한판 현충원인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이때 김일성이 직접 조문했다고 한다. == 논란 == * 6.25 전쟁 당시 '''[[거창 양민 학살사건]]'''으로 대변되는 영호남 지역 민간인 학살의 주동자로 지목된다. 최덕신은 게릴라전에서는 [[중국]] 국민당군([[국민혁명군]])이 자주 했던 견벽청야 즉 [[청야 전술]]이 해결책이라며 동일한 개념을 지리산 빨치산 토벌에 적용하라는 작전 지침을 하달했고, 그 결과 [[빨치산]]이 쓸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을 파괴하기 위해 지리산 곳곳에서 '''수천명의 양민들이 학살당했다.''' * [[독일]] 여비서와 [[네토라레|NTR]]하다가 [[복상사]]시켰다는 [[도시전설]]급 이야기도 있다. 다만 이 이야기는 남한 정부의 모략일 가능성도 있다. == 기타 == 남한 최고위직 [[월북|월북자]]이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상당히 높게 평가한다. 사회주의의 정신적[* 물질적으로는 어려운 걸 인정한다. 재미있는 점은 당시 사회주의권 영화를 비교해 보면 [[동독]]이나 [[소련]] 영화는 사회주의의 합리성을 강조하는데 반해, 북한 영화는 일관되게 [[민족주의]]적 순수성과 정신력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우월성을 선전하는 연작 프로파 영화 [[민족과 운명]]에서[* 90년대 후반부터는 독립운동가나 사회 현상 기타 다른 주제로 나갔지만, 초기는 월북자 전기 영화였다.] 그의 일대기도 방영했다. 독립운동가로 활약하면서 독립군을 이끌고 귀환했지만 [[미군]]에 의해 좌절되었고, [[6.25 전쟁]] 당시 [[카리스마]] 있는 [[장군]]으로 대한민국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박정희 정권에 대한 실망감과[* 북한 영화에서 이 부분에서 동백림 사건과 [[김대중 납치 사건]]이 재현된다. 물론 사실과 다르게도 영화에서 최덕신은 동백림 사건이 터지자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냐며 노발대발한다.] 북에 있는[* 최덕신의 아버지는 6.25 전쟁 때 납북되었다.] 아버지가 잘 살면서 김일성에 대한 충성과 아들을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과거를 상징하는 사진 세 장에 총질을 하고[* 군인으로서의 과거, 외교관으로서의 과거, 천도교 교령으로서의 과거.] 북한에 들어가서 편안한 일생을 보내는 장면이 그대로 방영되었다. 1980년대 후반 [[주체연호]]를 창시해서 이런저런 과정을 거친 뒤 약 10년 후인 [[1997년]] [[9월 9일]] [[김정일]]에 의해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2000년대 북한 [[이산가족]] 방문단이 왔을 때 최덕신과 함께 월북한 아내 [[류미영]][* 독립유공자 [[유동열]]의 딸. 대한민국을 버리고 월북한 사람이 갑자기 북측 이산가족 상봉단의 대표자로 나타났기 때문에 남한 일각에서는 북한이 우릴 우롱하는 것 아니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이 남한에 와서 남겨진 가족들과 상봉했다. 류미영은 2016년 11월 24일 [[폐암]]으로 사망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1&aid=0008846614|#]] [[2019년]] [[7월 6일]]에 최덕신의 차남 [[최인국]]도 대를 이어 [[월북]]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11&aid=0003581978|#]] [[분류:1914년 출생]][[분류:1989년 사망]][[분류:해주 최씨]][[분류:의주군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한국 광복군/군인]][[분류:국민혁명군/군인]][[분류:천도교 교령]][[분류:대한민국의 천도교 신자]][[분류:북한의 천도교 신자]][[분류: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분류:독립유공자 후손]][[분류:외무부 장관]][[분류:장면 내각/인사]][[분류:전쟁범죄자]][[분류:군인 출신 정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