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강서구(부산) 출신 인물]][[분류:1893년 출생]][[분류:1919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 || 성명 ||최덕관(崔德瓘) || || 생몰 ||[[1893년]] [[8월 12일]] ~ [[1919년]] [[12월 8일]] || || [[출생지]] ||[[경상남도]] 김해군 가락면 대사리[br](현재 [[경상남도]] [[부산광역시]] [[강서구(부산)|강서구]] 가락동 대사마을) || || 사망지 ||[[경상남도]] 김해군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최덕관은 1893년 8월 12일 경상남도 김해군 가락면 대사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30일 [[배동석]]이 주도한 김해읍에서의 독립만세시위 소식을 접한 뒤 [[허병]] 등과 함께 2차 독립만세시위를 준비했다. 그는 4월 2일 김해 장날을 기해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고 당일 오후 4시 허병과 함께 시장 내의 십자로에서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쌀가게에서 식육점까지 내달렸다. 그러자 군중 60명이 호응하여 만세를 불렀다. 이 일로 헌병대에게 체포된 그는 1919년 5월 3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5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항소했지만 1919년 5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그 후 옥고를 치르던 그는 고문으로 걸린 병 때문에 10월 27일 형집행 정지로 출옥했지만 12월 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최덕관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