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북한의 음악가)] [[파일:attachment/최기혁/ki.jpg]] [[바이올리니스트]], 공훈 배우,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악장. 1951년 태어나고 2020년 사망했다 북한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북한의 인민배우[* 사망 후 인민배우 칭호 수여 ]겸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콘서트마스터(악장)이며, 1970년대 [[박정희]]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과 대립으로 [[캐나다]]로 망명한 뒤 국제 [[태권도]] 연맹(ITF)을 세워 세계적인 [[태권도]] 보급에 나섰던 [[최홍희]][* 2002년 평양서 사망]씨의 부인쪽 조카이다. 최기혁은 예술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8살때부터 [[바이올린]] 소리를 워낙에 좋아한 나머지, 부모님의 권유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어릴때부터 여러 [[바이올린]] 전문가의 주목을 받으며 재능있는 연주가로 성장하였다.[* 북한에서 악기를 다루는 경우에는, 한국의 유일 소해금 연주자 박성진의 말을 인용하면 악기를 배우는 자의 체격이나 성품 등을 보고 교사가 지정해주는 방식이라고 한다. 하지만, 최기혁의 경우에는, [[바이올린]] 소리와 [[바이올린]] 자체를 워낙 좋아했고, 이러한 능력을 알고 있는 부모님의 권유와 자신이 하고 싶다는 열정과 의지가 있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실력을 쌓기 시작했다고 한다.] 1991년 중반에, 월북 음악인 이였던 당시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악장인 리계성의 은퇴 이후에, [[조선국립교향악단]] 악장 직책을 인계 받았으며,1992년부터 [[조선국립교향악단]] 일본 및 2000년 한국의 서울 공연을 비롯해 [[조선국립교향악단]]의 해외 공연에도 참가하여 높은 수준의 기량을 발휘하였다. 2005년에는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악장으로 악단 단원들을 노련하게 이끌고 북한 [[관현악]]의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한 공로가 인정되어 상임내각의 결정으로 공훈배우 직위를 수여받았다. 2008년에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평양 방문때도 [[바이올린]] 독주를 맡기도 했으며, 이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일부 단원이 로린 마젤과 평양을 재방문 했을때에도, 모란봉 극장에서 실내악 협연과 공개 연습에도 참가한 것이 확인되었다. 최근 행적으로는 여러 악단이 출연하는 1만명 대공연에 [[조선국립교향악단]]과 함께 출연한 것이 확인되었고, [[조선국립교향악단]] 창립 70주년 기념음악회에도 출연하였다. [[분류:북한의 인물]][[분류:조선국립교향악단]][[분류:북한의 음악가]][[분류:1951년 출생]][[분류:바이올리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