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인천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896년 출생]][[분류:1983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 ||||<table align=right><bgcolor=white><:>[[파일:최금봉.jpg|width=300px]] || || 성명 ||최금봉(崔錦鳳) || || 이명 ||최매지(崔梅枝) || || 생몰 ||[[1896년]] [[5월 6일]] ~ [[1983년]] [[11월 7일]] || || [[출생지]] ||[[경기도]] [[인천광역시|인천부]] || || 사망지 ||[[서울특별시]]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한국 최초의 여성 [[치과의사]]이다. == 생애 == 최금봉은 1896년 5월 6일 [[경기도]] [[인천]]부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인천 [[영화초등학교(인천)|영화여학교]][* 현 [[영화초등학교(인천)|영화초등학교]]]와 [[평안남도]] [[진남포시]] 삼숭여학교에서 공부한 뒤 1914년 [[이화학당]] 중등과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귀국한 그녀는 1918년 삼숭소학교 교사에 부임했다. 그녀는 삼숭소학교에서 황에스더와 김경희가 조직한 비밀결사단체 ‘송죽회’[* [[숭의여학교]] 교사들과 학생들이 만든 단체]에 가입해 항일독립의식 고취와 독립지사 가족 후원활동을 펼쳤으며, 송죽회가 지방조직을 결성할 때 남포지역 책임자로 선임되어 조직 확대에 힘썼다. 이후 1919년 비밀결사단체 대한애국부인회에 가입한 최금봉은 군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송금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1920년 진남포 신흥리교회에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1921년 2월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월형을 언도받고 평양형무소에서 복역하다 1922년에 가석방되었다. 최금봉은 출옥 후 [[일본]]으로 건너가 치의학을 공부했다. 1928년 동경여자치과의학전문대학 본과를 졸업한 그녀는 1929년 전공과 역시 졸업한 뒤 귀국하여 진남포로 돌아왔다. 이후 1931년 3월 2일 조선총독부로부터 [[치과의사]] 면허를 취득했다. 한국 여성이 치과의사 면허를 취득한 것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그녀는 진남포에서 남포치과의원을 개업한 뒤 1931년 9월 여성동우회(女性同友會) 진남포지회를 조직하고 회장에 선임되어 여성계를 규합,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진남포 엡웻청년회 회장(1932년), 진남포 삼숭학교 동창회장 및 삼숭유치원 원장(1935년) 등을 역임하였다. 1938년, 최금봉은 42세의 늦은 나이에 결혼했고, 남편을 따라 [[경상북도]] [[안동]]으로 이주해 읍내에 삼일[[치과]]병원을 개원해 활동했으며, 진료와 함께 지역사회 아동·여성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일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남편이 1945년 초에 사망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녀는 훗날 이에 대해 “내 일신과 내 가정을 생각하기보다 나라를 위해서만 몸을 바치라는 하늘의 명령이었다."고 밝혔다. [[8.15 광복]] 후, 최금봉은 대한애국부인회 안동군 지부장을 맡았으며, [[광복절]] 기념식 안동 대표로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기도 했다. 또한 1946년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창설 선거에서 안동의원에 당선되어 정치활동에 나섰으며, 대한부인회 총본부 부회장(1948년), 국민회 안동군지부 부녀회장, 대한부인회 총본부 이사를 역임했다. 이후 [[1.4 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을 가 [[치과]]를 개업한 뒤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무료 진료 봉사와 자원활동을 이어갔으며, 전재(戰災)부인회 상조회 부회장(1951년)을 역임했다. 전쟁이 끝난 후 서울로 돌아와 [[월계동(서울)|월계동]]에 삼일치과를 개원해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아동과 여성, 특히 윤락 여성을 구제하는 데 힘을 보탰다. 또한 1956년 서울시 치과의사회에서 총무를 맡았으며, 기독교여자절제회 서울시 회장(1956년), 종교교회 여선교회장(1965년), [[인덕공업고등학교|인덕실업학교]] 이사, [[YMCA]] 할머니회 초대회장(1972년) 등을 역임하였다. 1967년 [[치과의사]]를 은퇴한 최금봉은 [[서대문구]] [[갈현동(서울)|갈현동]]에서 여생을 보내다 1983년 8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최금봉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분류:치과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