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 [[중국어]]: [[정체자|總統府]]([[간체자|总统府]]) * [[영어]]: the Office of the President(정부기관)/Presidential Office Building(건물) [[중화민국]]([[대만]]) [[중화민국 총통|총통]]을 보좌하는 정부기관, 혹은 총통의 집무처 건물을 말한다. 본래 총통부라는 말은 [[대통령]] [[관저]]를 일컫는 [[중국어]]로[* 가령 [[중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청와대]]를 青瓦臺是大韓民國的總統府(청와대는 대한민국의 총통부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건물 이름과 총통 보좌기구의 이름이 같다. == 조직 == [[http://m.blog.daum.net/caesare21/34|설명 출처]] 총통을 보좌하는 기구로서의 총통부는 비서장 1명(한국의 [[대통령비서실장]] 격)과 부비서장(대통령 비서실 차장 격) 2명, [[대변인]]과 부대변인 각각 1명을 둔다. 또한 다음과 같은 3국 3실 체제를 갖추고 있다. * 제1국:총통의 법률 공포, 국가 기관, 군 등과 관련된 업무 * 제2국:훈장이나 국새의 관리, 공보의 발행 * 제3국:행사 의전 및 건물, 차량 등 총무 업무 * 기요실(機要室):총통부의 기록 업무를 담당 * 시위실(侍衛室):총통부 경비 담당. 시위장은 한국의 [[대통령경호처장]]과 유사한데 현직 군인으로 임명된다. 주로 [[중화민국 국군]] 중장급 인사들이 맡는다. * 공공 사무실(公共事務室):홍보 업무를 담당 * 인사처(人事處):인사 업무 담당 * 주계처(主計處) * 정풍처(政風處) * 법규위원회(法規委員會) * 총통부 직속 위원회 * 인권자문위원회(人權諮詢委員會) * 재경자문위원회(財經諮詢小組) * 원주민족 역사정의 및 이행기 정의위원회(原住民族歷史正義與轉型正義委員會) * 국가연금개혁위원회(國家年金改革委員會) * 총통부 고문 * 자정(資政) 무급 30인 이내 인원으로 임명하며, 총통의 최고 고문 역할을 하는 직위로 전직 장관급의 퇴직한 고위 관리를 임명하는 것이 관례이다. 현재는 무급만 16명. * 국책고문(國策顧問) 무급 90인 이내 인원으로 임명하며, 임명한 총통의 임기까지 임기가 보장되는 것이 원칙으로, 국가 정책 결정 제반에 대해 총통의 자문 기구 역할을 한다. 현재는 60명. [[공자]] 후손인 [[공덕성]]이 대성지성선사봉사관으로 문화고문직을 겸임했다. 대성지성선사봉사관은 세습직이기 때문에, 공덕성 사후 공수장이 세습지위를 이었다. 원래 [[맹자]], [[순자]], [[주자(철학자)|주자]] 후손도 대만에 살고 있으면서 봉사관직을 세습하고는 있지만, [[리덩후이]] 총통 때 공자 후손 외의 다른 후손들은 국책고문직에서 해임했다. * 전략고문(戰略顧問) 15명까지 임명할 수 있으며(현재는 5명), 전원이 유급직이다. [[중화민국 국군]] 장성들이 임명된다. 전략 및 국방 관련 업무에 대해 총통의 자문 기구 역할을 한다. * 총통부 직속기관 * 중앙연구원(中央研究院, Academia Sinica) * 국사관(國史館) * 국사관 타이완 문헌관(國史館臺灣文獻館) * 국가안전회의(國家安全會議) * --국부능원관리위원회(國父陵園管理委員會)-- 법제상으로는 존재하지만 설치되지 않은 기관이다. [[쑨원]]의 묘는 [[중국 대륙]]에 있기 때문. == 청사 == 대통령의 집무공간인 대통령부(大統領府)와 대통령의 거주공간인 관저가 합쳐진 [[청와대]]와 달리, 중화민국 총통부는 총통의 집무실로서만 기능한다. 총통 관저는 따로 있다. === 대만 === ==== 타이베이 총통부 ==== [include(틀:역대 대만 최고층 마천루)] 臺北總統府(대북총통부) [[파일:1515111.jpg]] [[타이베이]]에 있다. [[일본]]의 옛 [[대만총독부]] 청사였다. 1919년 완공되었다.[* 1919년 이전에는 청나라의 [[대만성]] 최고 관청이었던 대만순무아문(臺灣巡撫衙門) 청사를 임시 청사로 사용했다. [[시먼역]] 근처에 있었으며, 1932년에 헐리고 그 대신 중산당(中山堂, 당시에는 臺北公會堂)이라는 컨퍼런스 홀이 세워져 있다.] 양식적으로 큰 틀은 [[바로크#s-6|네오 바로크]]에 가깝지만 세부적인 양식은 일본의 독자적인 어휘가 사용되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을 모방해 1914년에 개장한 [[도쿄역]]과 비슷한 느낌의 색상이 인상적. 2차 대전 말기 미 공군의 폭격을 받아 일부 파괴되기도 했었다. [[대만 섬]]이 [[중화민국]]으로 반환된 이후로는 [[타이완 성]] 정부 청사로 쓰려고 했으나 2차 대전 당시 폭격으로 너무 심한 피해를 받아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1948년에 수리가 완료된 이후에는 [[장제스]]의 [[장수]]를 바란다는 의미인 개수관(介壽館, 제서우관)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딸랑딸랑-- [[국부천대]] 이후에는 총통부와 [[중화민국 행정원|행정원]]이 이 건물을 썼다가 1957년에 행정원이 일제시대 타이베이 시청 건물로 이사가고 나서는 중화민국(대만) 총통의 집무처로만 사용되고 있다. 원래는 총통부의 모습이 위에서 봤을 때 日本[일본]의 日자 모양으로 되어있었지만 중화민국이 이것이 신경쓰였는지 옆쪽을 늘린 후 위에서 봤을 때 中國[중국]의 中자가 되었다. 2006년에는 건물 이름이 현재 이름인 총통부로 바뀌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ROC_Presidential_Office_%280753%29.jpg]] [[파일:총통부_중산청.jpg]] 2층의 중산청(中山廳). [[쑨원]]의 반신상이 있는 홀이어서 [[마잉주]] 총통에 의해 중산청이라 명명되었다. 중요 행사가 거행되는 3층의 대례당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Presidential_Building_Taiwan_1651.jpg]] 접견실. 200[[신 대만 달러]] 뒷면에 그려진 건물이 이거다. 평일 오전 9시에서 12시까지 가이드 참관 하에 관람 가능하며, 외국인도 신분증을 제시하면 가능하다. 매달 1번씩 자유관람일이 있어 이 때는 가이드 참관 없이 자유관람이 가능하다. [[마잉주]] 집권 이전에는 안보상의 이유로 [[대륙]] [[중국인]]들의 관람이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가능하다. 총통부 사진에서 보이는 큰 도로는 '케타갈란 대로(凱達格蘭大道, 카이다거란 대로)'라는 이름의 도로로, 본래 이름은 '[[장제스]]의 [[장수]]를 바란다'는 의미의 '제서우로(介壽路)'였는데, [[천수이볜]]이 [[타이베이]] 시장이 된 이후 이 지역에 살았던 [[대만 원주민|원주민]](케타갈란족)을 존중하고 장제스 독재의 잔재를 없앤다는 의미에서 개칭했다. 총통부 앞에 있는 큰 도로이기 때문에 대만에서 큰 정치적 이슈가 터졌다 하면 이 도로는 [[한국]]의 [[광화문]] 앞처럼 하루가 멀다하고 시위가 벌어진다. [[타이베이 첩운 단수이신이선]] [[타이완대학병원역]]에서 제일 가깝고 [[타이베이역]]에서도 멀지는 않다. [[2019년]] [[6월]]부터 외국 일반인 관광객한테 총통부를 개방하고, [[https://www.yna.co.kr/view/AKR20190529089400009|1박 숙박이 가능하도록 조치하겠다]]고 한다.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철거된 한국의 [[조선총독부 청사]]와는 대조적으로 대만총독부 청사는 지금까지도 철거되지 않고 있다. 대만총독부 건물은 지금도 잘 쓰이고 있으며 타이베이의 유명 관광지 중 하나로 일본인 관광객이 항상 들르는 코스 중 하나이다. 대만에서도 [[대만일치시기|일제시대]]의 총독부를 총통 집무실로 써서는 안된다는 여론은 존재하는데, 타이베이 시장 [[커원저]]는 이와 같은 이유로 자신이 총통이 되면 총통부를 타이베이 동북쪽 다즈(大直)로 옮길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https://udn.com/news/story/10930/4233685|기사]] ==== 총통관저 ==== [[파일:600_phpo5Z0zY.jpg]] [[https://zh.wikipedia.org/wiki/%E4%B8%AD%E8%8F%AF%E6%B0%91%E5%9C%8B%E7%B8%BD%E7%B5%B1%E5%AE%98%E9%82%B8|총통관저 위키백과(중국어)]] [[총통]] [[관저]]. 총통부에서 일을 끝낸 [[총통]]이 실제로 거주하는 관저는 바로 이 총통 관저라고 해서 따로 있다. 총통부에서 1km 남짓 떨어져 있으며, 관용차로 출퇴근한다. [[타이베이시립대학]]의 맞은편에 있다. 총통관저 바로 뒤에는 [[중화민국중앙은행]]이 있다. [[샤오난먼역]]에서 걸어서 6분 정도 걸려서 [[역세권]] 위치이다. 명목상 정확한 위치는 기밀이라고 하는데 언론기사로 위치를 유추해볼 수 있고, [[구글 지도]]에도 드러나있다. 대만의 총통관저는 총통 임기가 시작할 때마다 이름이 바뀐다. [[차이잉원]] 총통이 붙인 이름은 '''永和寓所(영화우소)'''. 총통이 되기 이전 거주지였던 [[신베이]]시 융허(永和)구에서 따온 것이다. 해당 관저는 [[리덩후이]] 총통부터 사용하였다. 그 리덩후이도 초기 관저는 현재의 관저가 아닌 다른 곳(타이베이 시 다안 구)에 있었다. 2018년 현재 구 리덩후이 관저는 [[재개발]]로 철거되었고 현 총통관저는 1997년 입주했다. [[리덩후이]] 이후 [[천수이볜]]이 총통관저 신축 계획을 접으면서 후임 총통인 [[마잉주]], [[차이잉원]]도 이 관저에 거주하게 되었다. 리덩후이 이전 총통들은 제각기 다른 관저를 사용했다. 이전 총통의 관저 중 유명한 것이 관광지로도 개방되어 있는 [[장제스]]의 스린 관저이다. [[옌자간]]은 부총통 자격으로 대행했으므로 총통관저를 따로 쓰지 않고 사택[* 이 사택도 총통부 부근에 있었으며, 지금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남아 있다.]에서 출퇴근했다. [[장징궈]]의 관저는 2018년 현재 아직 관광지로 개방되지 못하고 있다. 하필이면 장징궈 관저 옆이 군부대라서... 지금 총통관저가 좀 많이 낡아서 [[재건축]] 또는 신축이전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아무래도 이전 여론이 좀 더 높다. 총통관저를 신축하게 되면, 현재 총통관저는 관광지로 개조될 가능성이 높다. [[차이잉원]]은 총통관저에 입주했지만 주소지는 [[신베이]] 시에 위치한 자택에 그대로 두고 있다. 그러니까 법적으로는 [[위장전입]] 상황이다. [[2018년 중화민국 지방공직인원 선거]] 때 [[타이베이]] 투표소가 아닌 [[신베이]] 투표소에서 투표하면서 이 사실이 알려졌다. 부총통은 관저를 따로 쓰는데, [[천청]] 전 부총통의 자택을 개조했으며 [[뤼슈롄]] 부총통부터 이 관저를 쓰고 있다. 전임 부총통 [[우둔이]]는 특이하게 관저에 입주하지 않고 자택에서 출퇴근했다. 총통이 서거하고 부총통이 총통 권한대행이 되면, 부총통 관저에서 퇴거를 해야한다. 그러면 부총통은 총통관저에 입주해야 할 거 같지만, 권한대행이라는 명목 하에 총통관저에 입주할 수는 없다. [[옌자간]]이 대표적으로 부총통관저를 쓰다가 [[장제스]] 사후 임시 권한대행이 되었을 때 총통관저에 입주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권한대행용 총통관저(...)를 신축하지도 않아서 부총통 관저에서는 나왔으나 사택에서 출퇴근을 했다. [[리덩후이]]도 권한대행 시절에는 사택에서 출퇴근했다. === 중국 === ==== 난징 총통부 ==== 南京總統府(남경총통부) 본래 총통부는 [[난징]]에 있었으며, 1927년부터 1949년 [[국부천대]] 때까지 사용되었다. 이 자리는 명나라 초기의 황궁 자리이기도 했으며, 명청대를 거치며 양강(兩江)[* [[장쑤성]] + [[안후이성]] + [[장시성]]의 3개 성을 일괄적으로 가리키는 명칭. 3개 성인데 왜 2를 뜻하는 양(兩)을 썼냐면 이 당시 장쑤성과 안후이성은 남직예(南直隸: 명)/강남성(江南省: 청)이라는 이름의 하나의 성이었기 때문이다. 장쑤성과 안후이성으로 나뉘게 된 것은 1666년이다.][[총독]]의 집무실로 이용되었다. [[태평천국의 난]] 때는 [[홍수전]](洪秀全)의 궁전이 있었으나 1864년에 [[증국번]]의 명령으로 대부분 철거되고 1870년에 새 [[총독]] 집무실을 지었다. 태평천국의 옥좌가 지금도 내부에 있다. [[파일:20090505175129905.jpg]] 총통부 정문 [[파일:Nanjing_Presidential_Building_0.jpg]] 하늘에서 내려다본 남경 총통부. 우측에는 [[행정원]] 건물까지 같이 있었다. [[파일:Nanjing_Presidential_Building_1.jpg]] 총통부 건물 [[신해혁명]] 당시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인 [[쑨원]](孫文)의 집무실(임시대총통부, 臨時大總統府)로 사용되었으나, 이후 [[북양정부|중화민국 북양정부]]가 들어서면서 수도는 북경에 있게 되었다. 1927년 [[장제스]](蔣介石)가 북벌을 시작하면서 이 곳을 [[중화민국/국민정부|국민정부]]의 본부로 삼았다. [[중일전쟁]] 발발로 국민정부는 [[충칭]](重慶)으로 피난하면서 이 곳을 [[왕징웨이]](汪精衛)의 [[왕징웨이 정권|괴뢰정부]]가 차지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료와 함께 국민정부가 이 곳으로 돌아왔고, 1947년에 건물 이름도 (중화민국) 총통부로 바꿔 "國民政府"라는 현판을 지금 보듯이 "總統府"로 바꾸었으나, 불과 2년 만인 1949년 4월에 [[중공군]]에 함락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이후 이 건물을 [[장쑤성]] 정부청사로 쓰다가, 지금은 중국 근현대사 박물관으로 공개하고 있다. [[파일:d175632.jpg]] [[2012년]] [[10월]]에는 [[대만]]의 [[대학생]]들이 난징 총통부에서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들고 인증샷을 찍어 [[대만]] [[방송]]사 메인[[뉴스]]를 장식하기도 했다(...). ~~장총통이 이루지 못한 난징총통부에 중화민국 깃발 꽂기를 대만의 청년이 해냅니다.~~ 타이베이 총통부와 마찬가지로 난징 시기 역시 집무실과 관저는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특히 장제스의 관저 미령궁(美齡宮)은 현재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 베이징 대총통부 ==== 현재 중국 권력의 중심인 [[중난하이]]는 [[중화민국 북양정부]] 대총통(大總統)의 집무공간이자 관저였다. 구체적인 내용은 [[중난하이]] 문서를 참조. [[분류:관저]][[분류:대만의 국가행정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