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초 군주)] ||||||<table align=right><bgcolor=#008000> '''{{{#ece5b6 초(楚)나라 35대 국군[br]19대 왕[br]{{{+1 숙왕}}}[br] 肅王}}}''' |||||||||| ||||<bgcolor=#008000> '''[[성씨|{{{#ece5b6 성}}}]]''' |||| 미(羋) || ||||<bgcolor=#008000> '''[[본관|{{{#ece5b6 씨}}}]]''' |||| 웅(熊) || ||||<bgcolor=#008000> '''[[휘|{{{#ece5b6 휘}}}]]''' || 장(臧) || ||||<bgcolor=#008000> '''{{{#ece5b6 아버지}}}''' |||| [[초도왕]](楚悼王) 웅의(熊疑) || ||<bgcolor=#008000> '''{{{#ece5b6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370년 || ||<bgcolor=#008000> '''{{{#ece5b6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381년 ~ 기원전 370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전국시대(중국)|전국시대]] [[초(춘추전국시대)|초나라]]의 제35대 군주. 제19대 [[왕]]. 초 도왕이 죽고 그 뒤를 이었다. 아버지의 시신에 화살을 꽂은 자들을 죽이는 것으로 재위를 시작했고, 특기할 일은 그거 하나밖에 없던 왕이다. == 생애 == 초 도왕이 죽은 뒤 [[오기(전국시대)|오기]]를 미워한 초나라 귀족들이 그를 죽였는데, 오기는 자신의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알고 기지로 초 도왕 시신 곁에 있다가 거기서 화살에 맞아 죽었다. 그래서 화살이 초 도왕의 시신에 꽂혔는데, 초 숙왕이 그 뒤를 이어 즉위하고, 그것을 용서할 수 없었으므로 오기를 죽인 자[* 오기가 예뻐서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 왕의 시신에 함부로 화살을 쏘아 맞춘 죄를 지어 죽이는 것이다. 이는 [[초소왕]] 시절 오나라왕 [[합려]]와 그를 도운 [[오자서]]가 침공했을 때 오자서가 [[초평왕]]의 무덤을 파 [[굴묘편시]]한 이후에 왕의 몸에 쇠붙이로 상처입히게 하면 사형에 처하는 법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오기는 이를 이용해 동귀어진을 시도한 것]의 일족을 멸했는데, 그게 무려 70여 가구에 이르렀다고 한다. 흠좀무..... 초 숙왕 4년(기원전 377년), 초나라는 촉나라의 공격을 받아 자방[* [[진무(삼국지)|진무]]의 고향인 여강군 송자현에 속한다.] 땅을 잃었다. 초나라에서는 천관에서 촉군을 막아 물리쳤다. 초 숙왕 6년(기원전 375년), [[위(전국시대)|위나라]](魏)가 초나라와 유관에서 싸웠고 노양 땅을 빼앗았다. 이때 [[한(전국시대)|한나라]](韓)가 초나라의 속국인 [[정나라]]를 멸하고 신정(新鄭)에 도읍했다. 한나라에서는 [[한애후]] 2년의 일이었다. 초 숙왕 11년(기원전 370년), 초 숙왕이 죽었는데, 그는 아들을 남기지 못했으므로 그 동생인 웅량부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초선왕]]이다. 재위기간 동안 별다른 일은 없었으나 그의 치세 동안 오랫동안 잊혀져 있다가 2006년 발견되어 중국 고대사에 적잖은 수정을 필요하게 한 '청화간 계년' 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각주] [[분류:초나라의 군주]] [[분류:기원전 370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