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초 군주)] ||||||<table align=right><bgcolor=#008000> '''{{{#ece5b6 초(楚)나라 22대 국군[br]6대 왕[br]{{{+1 목왕}}}[br] 穆王}}}''' |||||||||| ||||<bgcolor=#008000> '''[[성씨|{{{#ece5b6 성}}}]]''' |||| 미(羋) || ||||<bgcolor=#008000> '''[[본관|{{{#ece5b6 씨}}}]]''' |||| 웅(熊) || ||||<bgcolor=#008000> '''[[휘|{{{#ece5b6 휘}}}]]''' || 상신(商臣) || ||||<bgcolor=#008000> '''{{{#ece5b6 아버지}}}''' |||| [[초성왕]](楚成王) 웅군(熊頵), 웅운(熊惲) || ||<bgcolor=#008000> '''{{{#ece5b6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614년 || ||<bgcolor=#008000> '''{{{#ece5b6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625년 ~ 기원전 614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초(춘추전국시대)|초나라]]의 제22대 군주이자 제6대 [[왕]]. [[초성왕]]의 [[아들]]. 이 [[양반]]이 바로 [[춘추오패]]인 [[초장왕]]의 [[아버지]]되는 분이시다. 초 성왕의 적장자로 [[패륜|아버지에게 자살을 종용하고]]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정책을 이어받아 정복 전쟁을 펼쳤다. 전쟁에 엄청난 재능이 있었는지, 이 사람 손에 멸망하거나 속국이 된 나라만 10개 가까이 된다. == 생애 == === 즉위 이전 === 그는 위에 언급한 대로 초 성왕의 적장자였기 때문에 왕위 계승에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하지만 초 성왕이 젊고 예쁜 후궁에게 빠져서 아들인 웅직(熊職)을 낳은 후 상신을 폐하고 후처의 아들을 태자로 세우려 하자 거기에 반발하였다. 초 성왕 46년(기원전 626년), 웅상신은 부하 반숭의 계책을 듣고 궁으로 쳐들어가 초 성왕을 협박해 [[자결]]하게 한 뒤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투월초]]를 시켜 웅직을 죽였다.[* 근데 이 투월초라는 양반이 초장왕 때 반란을 일으켰다가 [[양유기]]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 그 공로로 반숭은 태사가 되었다.[* 바로 [[동탁]]이 자칭한 바로 그 벼슬이다.] === 치세 === 초 성왕 46년(기원전 626년), 아무튼 이런 유혈 사태를 거치면서 왕위에 오른 초 목왕은 성왕의 장례를 치르고, 영(靈)이라는 시호를 바치려했으나, 영은 어둡다는 뜻이 있다하여, 어둡지 않다는 뜻이 있는 성(成)을 바쳤다고 한다.[* 그런데, 일설에는 초 성왕의 시신이 영이라는 시호를 바치자 눈을 감지 않으니 성이라는 시호를 바치자 눈을 감았다는 말도 있다.] 그는 중원 진출의 야욕이 강했기 때문에, 국력을 키워 중원 진출을 엿보았다. 초 목왕 3년([[기원전]] 623년), [[진(통일왕조)|진(秦)나라]]와 함께 [[진(춘추오패)|진(晉)나라]]에 맞서 싸웠으며, 즉위 초부터 공격한 [[강(동음이의어)#s-3|강(江)나라]]를 멸망시켰다. 초 목왕 4년(기원전 622년), 육(六)나라[* 훗날 [[초한지]]에 등장하는 [[영포]]의 고향인 육현의 이름이 바로 육나라에서 나온 것이다.]와 요(蓼)나라를 멸했다.[* 당연히 이때는 거란족이 없었으니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와는 엄연히 다르다. 한자도 여기에 언급된 요나라는 蓼(여뀌 료(요)),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는 遼(멀 료(요))다.] 초 목왕 5년(기원전 621년), 진(晉)나라 [[군주]]. [[진양공]]이 죽자 [[조돈]]이 그 아들을 군주로 세우니 그가 바로 [[진영공]]이다. 초 목왕 6년(기원전 620년), 진(晉)의 대부 조돈은 강대해지는 초나라에 대응하기 위해 [[제(춘추전국시대)|제나라]], [[송(춘추전국시대)|송나라]], [[위(춘추전국시대)|위나라]], [[진(춘추전국시대)|진(陳)나라]], [[정나라]], [[허나라]], [[조나라]] 등과 동맹을 맺었다. 초 목왕 8년(기원전 618년) 여름에 [[진(춘추전국시대)|진(陳)나라]]가 [[진(춘추오패)|진(晉)나라]]를 따르자 열받은 초 목왕은 진(陳)나라를 쳤다. 호구 땅에서 크게 싸워 공자 주를 이기고, 공자 벌을 포로로 잡았다. 초 목왕 9년(기원전 617년), 송나라, 정나라, 진(陳)나라 등을 굴복시켰다. 초 목왕 10년(기원전 616년), 장군 성대심을 보내 균나라를 쳤다. 그리고 균나라를 굴복시킴으로써 중원의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초 목왕 11년(기원전 615년), 영윤 성호가 죽자, 성가를 그 후임 영윤으로 임명했다. 같은 해에 서(舒)나라가 초나라를 배신하자 초 목왕은 그것을 응징하기 위해 서나라를 치니 서나라 군주는 포로로 잡히고, 덤으로 종(宗)나라 군주도 포로로 잡혔다. 그리고 이왕 공격한 김에 [[소나라#s-4|소(巢)나라]]도 쳤다. 그렇게 하여 초나라는 강회 지역에 세력이 두루 미치게 되었다. 초 목왕 12년(기원전 614년), 초 목왕이 죽으니 그 아들 웅려가 왕이 되었다. 그가 바로 [[춘추오패]]인 [[초장왕]]이다. [각주] [[분류:초나라의 군주]][[분류:존속살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