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城雜記 [목차] == 개요 == 18세기 [[조선시대]]의 인물인 성대중의 저서. [[http://db.itkc.or.kr/search/group?q=query%E2%80%A0%EC%B2%AD%EC%84%B1%EC%9E%A1%EA%B8%B0|원문 읽기]](한국 고전 종합 DB) == 내용 == 잡기(잡다한 기록)라는 이름대로, 온갖 야사와 자질구레한 사실들을 기록한 책이다. 전 다섯권의 책으로, 그 내용에는 평범한 글들도 많지만 섞여있는 물건 중에 매우 흠좀무하고 비범한 이야기들이 좀 있다. 3권부터 진면목이 나타나는데, 전부 쓰는 것은 의미가 없고 그 중 몇 개 추리자면... === 김자점 === [[김자점]]의 최후에 관한 야사가 이 책에 있다. 김자점이 [[능지처참]]을 시행하는 법을 건의했지만, 결국 자신도 그렇게 죽었다는 것. >심기원이 김자점과 권력을 다투어 서로 원수가 되었는데, 심기원이 역적으로 몰려 주벌될 때에 김자점이 수상으로 있었다. 이에 김자점은 심기원에게 산 채로 능지처참하는 법을 시행할 것을 다음과 같이 청하였다. > >"이 역적은 상률로 단죄해서는 안 되니, 먼저 팔과 다리를 자른 뒤에 죽여 반역자들을 징계하소서." > >심기원이 형을 받을 때에 집행하는 자가 먼저 그 다리를 자르려 하자, 심기원이 형틀에 엎드려 있다가 놀라며 말했다. > >"이것이 무슨 형벌이냐?" > >그러자 집행하는 자가 "김 상공이 명한 것입니다." 하였다. 이에 심기원은 탄식하며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심기원이 흥안군을 처형할 때 흥안군도 심기원에게 비슷한 말을 했다는 전설이 있다.] "나를 대신해 김자점에게 말해 주시오. 당신도 반드시 이런 형벌을 당할 것이라고." > >그런데 김자점이 주벌될 때에 과연 산 채로 능지처참하는 형벌을 받았고, 그 후 이 법은 폐지되었다. === [[가학증]] === [[홍인한]]([[사도세자]]의 처삼촌, [[혜경궁 홍씨]]의 숙부)이라는 관리가 [[기생]]들을 학대하는 것을 즐긴다는 내용이 있다. >홍인한이 감사로 있을 때 언제나 음악을 연주하게 하고 끝날 즈음이 되면 기생의 잘못을 트집 잡아 곤장을 쳐서 피를 본 뒤에야 통쾌해하였다. 그래서 음악을 연주할 때면 뜰 한쪽에 반드시 형구를 마련해 놓고 기다렸으니, 이는 [[석수(후조)|석수]]가 미녀들을 치장하여 잔치를 즐기고는 결국 삶아 먹는 것을 낙으로 삼았던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 >대체로 여자에게 미색이 있는 것은 남자에게 재주가 있는 것과 같으니, 하늘이 부질없이 그들을 낸 것이 아닌데 포악하게 대한다면 어찌 천도를 어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재능 있는 사람을 업신여기면서 잘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유독 기생이라고 그렇지 않겠는가. 더구나 일부러 곤장을 쳐서 통쾌해하는 것은 시랑보다 더 포악한 짓이니, 그가 [[역적]]으로 패망한 것은 당연하다. === 일본 무협 소설 === 삼랑전이란 일본 소설이 18세기 조선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쓰여있다. 문제는 정작 일본에 가면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아마도 소설이 건너오기 훨씬 이전에 유행이 지나가버린 모양. >일본의 《삼랑전》 언해(諺解)[* [[한글]]로 번역된 것을 뜻한다.]가 우리나라에 유행하였는데, 삼랑(三郞)[* 일본어로는 '사부로(さぶろう)']의 뛰어난 무용과 원전(源𤩴)의 흉포하고 탐욕스러움과 월약(月藥)의 대단한 정절과 비곤(比琨)의 효성과 의로움이 사람들의 이목을 풍미했다. 그래서 예전에는 그 내용을 외지 못하는 사람이 없어 원전의 경우는 심지어 욕을 할 때 그의 이름을 들먹일 정도였는데 지금은 조금 시들해졌다. 삼랑은 금시(今市)[* 일본어로는 이마이치(いまいち)라고 읽는다. 닛코로 들어가는 초입의 지명으로, 현 닛코 시의 동남부이다.]에서 죽었는데 [[에도|강호(江戶)]]에서 30리 떨어진 곳이다. 우리나라 사신이 [[닛코|일광산(日光山)]]에 제사를 지내러 가는 길에 금시에 들르곤 했는데, 남호곡(南壺谷)도 그를 동정하는 시를 지었다고 한다. 내가 일본에 갔을 때 그곳 사람에게 물어보니 삼랑을 아는 자가 없었는데 하물며 금시를 알겠는가. [[https://m.blog.naver.com/mongenlee/220750146581|진자점(榛子店)에 쓰여 있다는 계문란(季文蘭)의 시]]를 우리나라 문인들은 모두 줄줄 외지만 정작 중국에는 아는 사람이 없으니, 삼랑의 일과 비슷한 경우이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할것도 없는 것이 [[홍길동전]], [[춘향전]]같은 한글 소설이 무수히 창작되었고, [[삼국지]], [[수호지]] 등 중국 소설들도 많이 유입되어서 인기를 끌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일본 소설도 비슷한 맥락에서 인기를 끌었던 것이라 할수있다. 즉, 당대에는 색다른 무협소설로 여겨졌던것. 유입 경로는 아마도 [[왜관]]을 통했을 가능성이 높다. == 작가 == 성대중은 영조, 정조 시대에 벼슬을 했던 인물로, 서얼 출신이지만 탕평책으로 벼슬을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 사람이 패관 소품 문체를 비난하는 글로 정조에게 '순정한 문장'을 썼다고 칭찬받은 것. '패관소품'이란 일상생활을 기록한 글들로, 왕에게 있어서는 '시시한 인생들을 묘사한 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것을 비난했던 인물이 뒤로는 이러한 저잣거리의 이야기를 모은 책을 쓴 것. 성대중에 대한 기록이 적기 때문에 평소에 성향을 숨겼는지, 아니면 처음에는 완고했던 인물이 자료 조사를 하다가 패관문학에 빠졌는지는 알 길이 없다. 물론 패관만 쓴 건 아니다. 성대중에겐 당대의 학문을 비판하고 실용적인 학문을 해야 한다는 학자로서 소명의식이 있었다. 성대중의 이러한 이중적인 부분을 2019년 4월 14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루었다. >학문의 도는 음식 중에 제일 좋은 고기와 같으니, 무당이나 의술, 갖가지 기예들이 무엇인들 학문이 아니겠는가마는 다만 유학이 그 으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대에 배웠던 것은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로 모두 실용적인 것들이었다.[* 모두 [[공자]]가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육예(六藝)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 >그런데 지금은 예는 통례원(通禮院)의 관리에게, 악은 장악원(掌樂院)의 악공에게, 활쏘기는 훈련원(訓鍊院)의 한량에게, 말몰이는 사복시(司僕寺)의 이마(理馬)에게, 글씨는 사자관(寫字官)에게, 산수는 호조의 계사(計士)에게 맡겨 학자들은 관계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공자]]께서 드물게 말씀하신 성(性), 명(命), 천도(天道)를 표방하며 이를 도학(道學)이라 부르면서 세상에 제창한다. > >그리하여 어린아이들도 모두 이를 잘 말하나 실용적인 것은 마치 쓸모없는 물건처럼 보니, 삼대의 풍속을 어떻게 다시 볼 수 있겠는가. [[분류:조선의 소설]][[분류:18세기 문학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