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공주]][[분류:1754년 출생]][[분류:1821년 사망]] [include(틀:조선의 왕녀/중종 ~ 철종)] ||<-3><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94153e><tablebgcolor=#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4153e 0%, #94153e 20%, #94153e 80%, #94153e)" '''{{{#ffd400 조선 장조의 왕녀[br]{{{+1 청선공주 | 淸璿公主 }}}}}}'''}}}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CA5E59 0%, #CA5E59 20%, #CA5E59 80%, #CA5E59)" '''{{{#ffd400 조선 사도세자의 딸[br]{{{+1 청선군주 | 淸璿郡主 }}}}}}'''}}} || ||<bgcolor=#CA5E59> '''{{{#gold 출생}}}''' ||<-2>[[1756년]]^^([[영조]] 32년)^^ 윤9월 || ||<bgcolor=#CA5E59> '''{{{#gold 사망}}}''' ||<-2>[[1802년]]^^([[순조]] 2년)^^ [[7월 20일]][br]{{{-2 (향년 47세)}}} || ||<width=50><bgcolor=#CA5E59> '''{{{#gold 부왕}}}''' ||<-2>[[사도세자]] || ||<width=50><bgcolor=#CA5E59> '''{{{#gold 모후}}}''' ||<-2>[[혜경궁 홍씨]] || ||<width=50><bgcolor=#CA5E59> '''{{{#gold 부군}}}''' ||<-2>흥은위 정재화[* 본관은 [[연일 정씨|연일]]이다. ][* 본래 흥은부위였으나 청연군주가 청연공주로 추증되면서 흥은위로 추증되었다. ] || ||<width=50><bgcolor=#CA5E59> '''{{{#gold 자녀}}}''' ||<-2>1남 2녀 ^^(장남)^^ 정의 ^^(장녀)^^ 민치성의 처 ^^(차녀)^^ 홍혁의 처 || ||<width=50><bgcolor=#CA5E59> '''{{{#gold 묘소}}}''' ||<-2>[include(틀:지도, 장소=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비룡리 산 53-1, 너비=100%)] ----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비룡리 산 53-1 || [목차] == 개요 == [[조선]]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적차녀. [[정조(조선)|정조]]와 [[청연공주]]의 [[동복형제|동복동생]]이다. 본래 작위는 세자의 적녀에게 주어지는 정2품 군주(郡主)였으며, 1899년(고종 36) [[대한제국]] 시기에 [[고종(조선)|고종]]이 사도세자를 추존하면서 청선군주에서 청선공주로 추증되었다. == 생애 == === 탄생 === 1756년(영조 32) 윤9월 태어났다. 사실 청연은 세자 부부가 힘든 시기에 태어난 딸이었다. 지난해 혜경궁 홍씨의 어머니 한산부부인 이씨가 세상을 떠났는데, 《한중록》에 따르면 [[임신]] 상태에서 고기 반찬도 먹지 않고 채소로 연명하다가 몸이 상했다. 이에 [[영조]]의 명으로 [[홍봉한]]이 보약을 써서 무사히 [[출산]]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엄청난 사고도 있었다. 혜경궁 홍씨의 임신 5~6개월경, 사도세자의 실수로 [[창경궁 낙선당]]에 불이 난 것이다. 그런데 낙선당은 [[정조(조선)|원손]]이었던 정조가 있는 관의합과 '한 일(一)' 자로 매우 가까웠다. 이때문에 혜경궁 홍씨는 임신한 몸으로 바삐 뛰어서 잠든 자식을 구해야 했다. 게다가 영조는 일부러 불을 냈다고 생각하여 [[함인정]]에 여러 신하를 모아놓고 사도세자에게 화를 냈고, 세자는 설움이 북받쳐 [[저승전]] 앞뜰 우물에 뛰어들려고 했다. 하마터면 청선은 [[유복자]]로 태어날 뻔 한 셈이다. 그리고 사도세자의 태도도 2년 전 태어난 청선 때와 달랐다.[* 그동안 혜경궁 홍씨는 17세에 [[의소세손]]을 낳고 연이어 임신과 출산을 반복했는데, 이때부터 더이상 임신 소식이 없다. 인원왕후와 정성왕후의 삼년상 때문일 수도 있으나 [[은전군]]과 [[청근옹주]]를 생각한다면(...) ] >그해 윤9월에 내가 둘째 딸 청선을 낳으니, 경모궁께서 전 같으면 오죽 좋아하시리오마는 한번 들어와 보신 일이 없으니, 병환이 심하심을 가히 알지라. >---- >《한중록》[* 혜경궁 홍씨, 정병설 편역, 『한중록』, 문학동네, 2010. ] === 아버지의 죽음 === 1757년(영조 33) 사도세자를 아껴준 [[인원왕후]]와 [[정성왕후]]가 불과 한 달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나마 사도세자를 보호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어지고, 1762년(영조 38년) [[임오화변]]이 일어났다. 혜경궁 홍씨와 자녀들은 모두 가마를 타고 본방[* 혜경궁의 친정집이다. ]으로 나갔다. 이때 [[정조(조선)|세손]]은 남여를 타고, [[효의왕후|세손빈]]과 [[청연군주]]는 같이 가마를 탔다고 하였으므로 그녀도 가마를 타고 뒤를 따랐을 것으로 추측된다. === 혼인 생활 === 1766년(영조 42) 1월 25일 초간택, 1월 26일 재간택을 거쳐 2월 10일 삼간택에서 유학 정인환의 아들 정재화가 [[부마]]로 낙점받았다.[* 정재화는 [[정철|송강 정철]]의 6대손이다. ] 정재화는 부마가 된 뒤로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있었지만, 그 중에 정조의 세손 시절 일으킨 사건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766년 작은딸 청선의 남편 흥은부위(興恩副尉) 정재화가 부마가 되니, 용모와 행동이 아름다운지라. 세손이 매부를 예쁘게 보시더니, 1769년 사이 그 아이가 빗나가 별감들을 데리고 외입이 무궁하고, 세손 체면을 깎는 일도 많더라. >---- >《한중록》[* 혜경궁 홍씨, 정병설 편역, 『한중록』, 문학동네, 2010. ] 당시 정재화는 궁성의 경호를 맡은 오위도총부의 총관으로 숙직을 설 때마다 세손이었던 정조를 만나서 어울렸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혜경궁에게 알린 사람이 바로 [[화완옹주]]다. 화완옹주는 "이번 잔치에 지방에서 올라온 [[기녀]] 얘기도 세손께 전하고, 잔칫날 자기가 가까이한 계집도 보시게 하고, 자기가 사귄 별감들도 소개한다"고 했는데, 이걸 보면 청선이 남편 때문에 속 꽤나 썩었을 듯. === 죽음 === >"천붕지통(天崩之痛)을 만난 이후로부터 의지하고 앙모하는 정이 더욱 깊었는데 어찌 오늘날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될 줄을 생각이나 했겠는가? 소자(小子)의 비통한 마음은 진실로 말할 것이 없지만 [[혜경궁 홍씨|자궁]](慈宮)의 늠철(凛綴)한 가운데의 정리(情理)는 장차 무슨 말로써 위로를 드릴 수가 있을 것인가?" >---- >《조선왕조실록》 순조 2년 7월 20일 1790년(정조 14) 정재화가 먼저 사망하면서, 오랫동안 홀로 보냈다. 이에 혜경궁 홍씨는 "남편이 일찍 죽어 신세 그릇되니, 이는 어미 운명과 흡사하다"고 말했는데, 정조처럼 어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자식이 되고 말았다. == 매체에서 == * [[이세영(배우)|이세영]] - [[1998년]] [[MBC]] 《[[대왕의 길]]》 * [[제니(BLACKPINK)]] - [[2019년]] 파라다이스시티 CF[* 여기서 고증오류가 있다. 청선공주는 1662년 정재화와 혼인하였는데 1771년이 배경임에도 머리를 올리지 않았고 당시에는 공주라고 불리지 않았지만 공주라고 언급한다. ] [[분류: 조선의 공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