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옹주]][[분류:1758년 출생]][[분류:1835년 사망]] [include(틀:조선의 왕녀/중종 ~ 철종)] ||<-3><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94153e><tablebgcolor=#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4153e 0%, #94153e 20%, #94153e 80%, #94153e)" '''{{{#ffd400 조선 장조의 왕녀[br]{{{+1 청근옹주 | 淸瑾翁主}}}}}}'''}}}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CA5E59 0%, #CA5E59 20%, #CA5E59 80%, #CA5E59)" '''{{{#ffd400 조선 사도세자의 딸[br]{{{+1 청근현주 | 淸瑾縣主}}}}}}'''}}} || ||<bgcolor=#CA5E59> '''{{{#gold 출생}}}''' ||<-2>[[1758년]]^^([[영조]] 34년)^^ || ||<|2><bgcolor=#CA5E59> '''{{{#gold 사망}}}''' ||<-2>[[1835년]]^^([[헌종(조선)|헌종]] 원년)^^ [[9월 1일]][br]{{{-2 (향년 78세)}}} || ||<-2>[[조선]] [[한성부]] 남부 낙선방 묵사동 사저[* 영조는 묵사동에 있는 유학 민경속의 집을 사서 주었다. 승정원일기, 영조 48년 2월 18일. [[http://sjw.history.go.kr/id/SJW-F48020180-01300|#]] ] || ||<width=50><bgcolor=#CA5E59> '''{{{#gold 부왕}}}''' ||<-2>[[사도세자]] || ||<width=50><bgcolor=#CA5E59> '''{{{#gold 생모}}}''' ||<-2>[[경빈 박씨]] || ||<width=50><bgcolor=#CA5E59> '''{{{#gold 부군}}}''' ||<-2>당은위 홍익돈[* 본래 당은첨위였으나 청근현주가 옹주로 추증되면서 같이 당은위로 추증되었다. ] || ||<width=50><bgcolor=#CA5E59> '''{{{#gold 자녀}}}''' ||<-2>친자 없음 ^^(양자)^^ 홍병기 || [clearfix] [목차] == 개요 == [[조선]] [[사도세자]]의 서장녀. 어머니 [[경빈 박씨]]의 장녀로, [[은전군]]의 [[동복형제|동복누나]]이다. == 생애 == 1768년(영조 44) 12월 12일에 [[영조]]는 [[경희궁 회상전#s-4|경희궁 집경당]]에서 직접 8명의 후보자들을 불러 보았다. ||송익무의 아들 송인재, 홍양유의 아들 홍익돈, 조덕해의 아들 조인갑 ---- 재간택 명단 || 영조는 후보 중 3명을 추렸다. 이들 외에 이날 [[부마]] 간택에는 이미 왕실과 인연이 있는 자들도 있었다. 조덕해의 아들 조인갑은 [[인원왕후]]의 외가 친척이었고[* 조인갑은 인원왕후의 어머니 가림부부인 임천 조씨의 오빠 조정하의 증손자다. 계보는 조정하-조명욱-조덕해-조인갑으로 이어진다. ], 조재선의 아들 조양진은 [[효장세자]]의 [[세자빈]] [[효순왕후|현빈 조씨]]의 7촌이었고, 구윤빈의 아들 구수몽은 [[인조]]의 외사촌 능천부원군 구인후의 봉사손 집안이었다.[* 인조의 어머니 [[인헌왕후]]의 아버지이자 능안부원군으로 추증된 구사맹이 능천부원군 구인후의 할아버지다. ] 특히 구수몽에게는 어찌 간택하겠느냐 하면서 다른 좋은 집으로 장가 들라고 말하였다.[* 승정원일기, 영조 44년 12월 12일. [[http://sjw.history.go.kr/id/SJW-F44120120-02900|#]] ] 이틀 후인 12월 14일 영조는 홍양유의 아들 홍익돈을 [[부마]]로 최종 낙점하였다. 그리고 1772년(영조 48) 청근현주는 15세의 나이로 혼인하였다.[* 승정원일기, 영조 48년 1월 27일. [[http://sjw.history.go.kr/id/SJW-F48010270-01400|#]] ] 여기서 부마 간택이 이미 끝났는데 실제 혼인이 늦어진 이유는 왕실의 재정 상황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1764년(영조 40)부터 [[화길옹주]], [[청연군주]], [[청선군주]], [[은언군]], [[은신군]] 등 계속해서 가례가 치러졌기 때문이다. --영조가 사도세자의 서출들을 안 좋아했지만 다들 제때 시집장가는 보내줬다-- 1778년(정조 2) [[은전군]]이 정유역변[* 정유역변에는 세 가지 사건이 묶여 있는데, 그 중 홍계능과 홍상길 등이 주도하여 은전군 이찬을 왕으로 추대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다. ]에 연루되어 사사되었으나, 청근현주는 사도세자의 혈육이었으므로 1795년(정조 19)의 원행에도 참여하였다. 또한, 순조도 청근현주가 아프다는 소식에 의원을 보내줄 정도로 왕실의 종친으로 대우하였다.[* 승정원일기, 순조 31년 2월 25일. [[http://sjw.history.go.kr/id/SJW-H31020290-01300|#]] ] 1835년(헌종 원년)에 사망하였는데, 사도세자의 자식들 중 가장 오래 살았다.[* 승정원일기, 헌종 1년 9월 1일. [[http://sjw.history.go.kr/id/SJW-I01090010-003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