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tv03.search.naver.net/201509111118525981.jpg|width=150]] 蔡映錫 1934년 12월 07일 ~ 2006년 03월 03일 [[대한민국]]의 전 [[기자]], [[정치인]]이다. 호는 지송(知松), 본관은 [[채(성씨)|평강]](平康).[* 25세손 口석(錫) 항렬] 1934년 [[전라북도]] [[군산시|옥구군]] 임피면 영창리[* [[채(성씨)|평강 채씨]] 집성촌이다.][[https://news.joins.com/article/1375844|#]]에서 태어났다. 군산술산초등학교, 군산중학교, [[군산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일보]], [[한국일보]]에서 정치부 기자로 일하였다. 1967년부터 1973년까지 [[민주공화당]]에 몸담았으며 중간에 전라북도 농지개량조합장도 역임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 [[전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 39번으로 입후보하였으나 당선되지는 못하였다.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전문위원을 역임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전라북도 [[익산시|이리시-익산군]]-군산시-옥구군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권당]] 후보로 전라북도 군산시-옥구군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이후 민권당 대변인으로 활동하다가 1983년 민권당을 탈당하였다. 1984년에는 민주화추진협의회에 가입하였고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1985년에 치러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았다. 1987년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다가 다시 통일민주당을 탈당하여 [[평화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전라북도 군산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고건]]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되었다.--그리고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10년 뒤]] 같은 정당에서 한솥밥을 먹는데...-- 이후 평화민주당 부총무를 역임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1991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전라북도 군산시 갑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7년부터 1998년까지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로 별세한 [[신기하]]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0년부터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전신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분류:제13대 국회의원]][[분류:제14대 국회의원]][[분류:제15대 국회의원]][[분류:평화민주당 국회의원]][[분류:민주당(1991년) 국회의원]][[분류:새정치국민회의 국회의원]][[분류:1934년 출생]][[분류:군산시 출신 인물]][[분류:2006년 사망]][[분류:평강 채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