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조선의 후궁(중종 ~ 고종))] ||<-3><tablealign=right><tablewidth=400><tablebordercolor=#C23352><tablebgcolor=#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C23352 0%, #C23352 20%, #C23352 80%, #C23352)" '''{{{#ffd400 조선 중종의 후궁[br]{{{+1 창빈 안씨 | 昌嬪 安氏}}}}}}'''}}} || ||<bgcolor=#C23352> '''{{{#gold 빈호}}}''' ||<-2>창빈(昌嬪) || ||<bgcolor=#C23352> '''{{{#gold 출생}}}''' ||<-2>[[1499년]]^^([[연산군]] 5년)^^ [[7월 27일]] || ||<bgcolor=#C23352> '''{{{#gold 사망}}}''' ||<-2>[[1549년]]^^([[명종(조선)|명종]] 4년)^^ [[10월 18일]] [br]{{{-2 (향년 51세)}}} || ||<bgcolor=#C23352> '''[[본관|{{{#gold 본관}}}]]''' ||<-2>안산(安山) || ||<width=50><bgcolor=#C23352> '''{{{#gold 부모}}}''' ||<-2>부친 안탄대 모친 황씨 || ||<bgcolor=#C23352> '''{{{#gold 부군}}}''' ||<-2>[[중종(조선)|조선 중종]] || ||<bgcolor=#C23352> '''{{{#gold 자녀}}}''' ||<-2>2남 1녀 ^^(장남)^^ [[영양군(1521)]] ^^(장녀)^^ 정신옹주 ^^(차남)^^ [[덕흥대원군|덕흥군]] || ||<width=50><bgcolor=#C23352> '''{{{#gold 묘소}}}''' ||<-2>[include(틀:지도, 장소=서울시 동작구 창빈안씨신도비부묘소, 너비=100%)]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299-10 ||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 [[중종(조선)|중종]]의 [[후궁]]. [[덕흥대원군]]의 생모이자 [[하성군|선조]]의 친할머니다. 참고로 '''선조 이후의 조선 국왕들이 이분의 후손이다.''' == 생애 == [[경기도]] [[시흥시|시흥]][* 당시 [[경기도]] 금천현. 시흥은 조선 후기의 명칭이다.]에서 안탄대라는 사람의 딸로 태어나 1507년 [[궁녀]]로 입궁했다. 뛰어난 미인은 아니었지만 성품이 차분하고 행동거지가 정숙하여, [[정현왕후]]의 신임을 받았다. 정현왕후는 안씨를 아들 [[중종(조선)|진성대군]]의 후궁으로 추천했고, 20살의 안씨는 정3품 품계인 숙용에 봉해졌다. [[영양군(1521)|영양군]]과 정신옹주를 생산한 데 이어, 후대 조선 왕통을 이끌어갈 중요한 자식인 [[덕흥대원군]]을 낳았다. 후계자 문제로 정치가 불안정하던 중종 시절, 안씨는 궁궐 생활에 눈에 띄지 않았고 품행이 다정해서, 중종의 정실(계비)인 [[문정왕후]]와 잘 지냈다. 중종 사후에도 문정왕후의 만류 덕분에 안씨는 [[비구니|여승]]이 되지 않고 궁궐에 머물 수 있었다. 또한 안씨가 죽은 이후에도 [[문정왕후]]는 안씨의 세 자녀를 잘 돌봐주었다. 그런 인연 덕분인지 문정왕후의 외아들 [[명종(조선)|명종]]이 후사없이 세상을 떠나자, 명종의 정실 [[인순왕후]]는 안씨의 자손인 [[선조(조선)|하성군]]을 즉위시켰다. 선조와 이후의 모든 조선 국왕은 안씨의 후손들이다. 안씨의 생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지만, [[선조(조선)|그녀의 손자인 하성군]]이 왕위에 오른 덕분에 안씨는 내명부 정1품 빈(嬪)으로 추존되어 창빈의 칭호를 받고 묘를 이장하게 된다. == 사극 == [[파일:attachment/cbascjw.jpg]] 드라마 [[여인천하]]에서는 최정원이 연기하였다. [[경빈 박씨]]나 [[희빈 홍씨]] 등 독기와 개성 넘치는 다른 [[후궁]]들과 달리, 이쪽은 역사에 기록된 대로 분쟁을 꺼리며 자신의 분수를 지키는 얌전한 사람으로 나온다. 그래서인지 [[문정왕후]]와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던 [[경빈 박씨]]나 [[희빈 홍씨]]와는 달리, 창빈은 문정왕후의 편에 서거나 아예 나서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중종(조선)|중종]]이 세자를 책봉하기 위해 아들들의 재능을 살피며 경쟁을 시켰을 때도, [[큰 그림|그녀 스스로가 자신의 아들을 기권시켜 옥좌를 포기하게 만든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순한 모습만은 보인 것은 아니고, 이런 창빈도 파릉군이 살생부를 제작해 반정공신을 비롯한 대신들이 모조리 쓸려나갈 위기에 처하자 다른 [[후궁]]들과 의기투합해 독기어린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창빈 역시 친정의 생사가 걸린 이때만큼은, 반정공신의 딸들인 다른 후궁들과 다르지 않게 [[문정왕후]]에게도 눈을 희번득하게 부라렸다. 그런데 실제 역사 속 창빈은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 사실상 이런 행동을 할 이유가 전혀 없어서,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역사왜곡이 창빈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밑에도 나와 있지만 창빈이라는 직위 또한 죽은 다음에야 받았고, 실제 역사에서는 어디까지나 한낱 숙용일 뿐으로 권력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그리고 평소 오만방자하게 날뛰던 [[경빈 박씨]]를 찍어낼 때도, 창빈이 [[희빈 홍씨]]와 함께 전면에 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친정의 생사가 걸리거나 왕실 전체가 발칵 뒤집어질 정도의 일이 아니면 다른 일에는 나서지 않고, 특히 무엇보다도 세자 자리에는 시종일관 욕심이 없다. 그 덕에 작중에서 한성깔하는 [[문정왕후]]는 다른 간택후궁인 [[경빈 박씨]], [[희빈 홍씨]]와는 정말로 목숨을 걸고 서로 물어뜯어댔지만, 창빈만은 실제 역사와 똑같이 친하게 지내며 곁에 두었고, 결국 경빈과 희빈은 모두 쓸려나갔지만[* [[희빈 홍씨]]는 드라마 중반부터 쩌리가 되며 폐출되지 않고 드라마의 [[후궁]] 중에서는 가장 오래 살았지만, [[양재역 벽서 사건]] 때 아들 [[봉성군]]이 연루되어 [[사약|사사]]당하는 불행을 겪었다(봉성군은 [[윤원형]]이 몰락한 후 신원된다).] 창빈만 홀로 살아 남았다. 뿐만 아니라 [[명종(조선)|명종]]이 요절하면서 [[문정왕후]]에서 비롯한 혈통은 끊어지고 [[덕흥군]]의 아들 [[하성군]]이 선조로 즉위해 [[조선]] 왕실의 대통을 이어가게 되면서, 후세에 이르러 진정한 승리자가 된다. 드라마에서는 아예 창빈의 사망 이후 나레이션에서 대놓고 '''"[[후궁]] 중 결국 유일하게 천수를 누린 최후의 승리자"'''라는 평가를 내린다.[* 이건 틀린 부분이 있는게 희빈 홍씨가 팔십이 넘어서까지 천수를 누렸다. 그러나 손자가 왕이 된 창빈 안씨와는 비교되지도 않는다. ] 참고로 극중에서는 안씨를 칭하는 호칭이 창빈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이것은 틀린 칭호다. 안씨가 창빈으로 책봉된 것은 사망 이후의 일로, 생전에는 어디까지나 숙용일 뿐이었기 때문에 안 숙용이나 숙용 안씨라고 불러야 옳겠지만 [[여인천하]]에서는 그냥 창빈으로 불린다. 또, 여인천하에선 [[안당]]의 조카딸이라고 나왔지만 성이 같을뿐이지 안당과는 본관이 다르고 엄연히 남남이다. [[KBS 2TV]] [[드라마]] [[조광조(드라마)|조광조]]에서는 역시 ~~존재감은 없지만~~ 얌전한 이미지로 묘사되었다. [[후궁]] 시절부터 [[장경왕후]]와 친했던 것으로 나온다. 장경왕후가 승하할 때 다른 후궁들이 겉으로는 울면서도 [[왕비]]의 자리를 내심 노릴 때, 안씨는 진심으로 통곡하였다. == 묘소 == 묘소는 현재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경내 후방에 있다. 1549년 사망했을 때는 [[양주시|양주]] 장흥에 매장되었으나 풍수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1550년 [[과천]] 동작리로 이장했다. 그런데 무덤을 이장한 후 손자 [[하성군]]이 왕으로 즉위하자 이곳이 명당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세간에서는 창빈묘를 '동작릉'이라 높여 불렀다. 재미있게도 창빈묘 주변에는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등 대통령 4인의 묘가 있어서 '''주변에 [[대한민국 대통령]]들을 거느리고 잠들어 있는 셈'''이다(!). 창빈의 묘를 가 보려면 국립현충원 대통령 묘소 쪽으로 가면 찾기 쉬운데, 창빈 묘는 정말로 저 네 대통령 무덤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역시 진정한 승리자는 죽어서도 뭔가 다르다. [[분류:조선의 후궁]][[분류:1499년 출생]][[분류:1549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