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회원수정)] Window Tax [목차] == 개요 == [[중세]] [[유럽]]에서 시행되었던 [[조세]] 제도 중 하나. 말 그대로 [[창문]]을 가지고 [[세금]]을 매기는 제도를 뜻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이런 게 있었어?"라는 생각이 들 만하겠지만 정말로 있었다. 당시 중세 유럽에는 난로세, 장갑세, 모자세, 수염세, 벽지세 등 지금 기준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별의별 황당한 조세 정책이 있었는데, 창문세가 그 중 으뜸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 역사 == 흔히 창문세의 원조가 [[영국]]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1303년 [[프랑스 왕국]]의 [[필리프 4세]]가 왕권 강화 차원에서 고안된 여러 세원들 중 하나였다. 그 당시는 아주 잠깐 시행했다가 곧바로 폐지됐지만 나중에 군자금 확보를 위해 다시 시행된 바 있고 다른 여러 나라로도 퍼져나갔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1696년 영국에서 시행된 창문세였다. 그 전에 집에 있는 [[난로]]를 가지고 세금을 매기는 난로세가 시행된 바 있는데 난로세는 1662년 [[찰스 2세]]가 군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난로 1개당 2실링씩 과세했다. 문제는 이게 소득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데다가 징수를 위해서는 징수원이 직접 집으로 들어가서 난로를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반발이 심했다. 이에 [[윌리엄 3세]]가 난로세를 대체할 방법을 고심하다가 나온 게 바로 난로세를 폐지하고 창문세를 도입한 것. 당시에는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유리의 대량생산은 무리였고 자연히 유리가 귀했다. 그래서 유리창은 곧 부유함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창문은 밖에서 세면 되니까 난로세와는 달리 징수원이 일일이 집 안으로 들어가서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창문세는 유리창의 숫자에 따라 매겼는데, 창문세가 처음 도입되었던 1696년에는 모든 주택이 2실링씩, 창문 10개-20개의 주택은 추가 4실링, 21개 이상의 주택은 추가 8실링을 부과하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Glantz, Andrew E. "A Tax on Light and Air: Impact of the Window Duty on Tax Administration and Architecture, 1696-1851." Penn History Review 15.2 (2008): 3.]. 그 이후 여러 차례 세율 및 구간이 조정되었고, 1766년부터 1825년까지는 여섯 개까지는 면세, 일곱 개부터 차등적으로 세금을 매겼다. 창문이 많으면 많을수록 세금폭탄을 맞게 되는 꼴이라, 이에 사람들은 세금을 덜 내기 위해서 창문을 합판 등으로 가려서 숨기거나 아예 창문을 막아 창문의 숫자를 줄이는 꼼수를 쓰기에 이른다.[* 옛날에는 유리는 생산하는 기술이 발달하지 못하여서 큰 하나의 판으로 된 유리를 생산하기 어려웠었다. --창문 트게 하는 건 안됐다는 말이다.--] 이 창문세는 1851년 주택세의 도입으로 폐지되기 전까지 무려 150년 가까이 시행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영국의 중세 건물은 창문이 있어야 할 곳 몇 군데가 막혀 있는 채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창문세를 시행하던 시기 [[런던]]에서는 창문을 막아 놓느라 햇빛을 못 보고 캄캄하게 살아서 우울증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많았고 또 각종 병균이 창궐하여 [[전염병]]이 만연하였는데,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사람들이 창문을 막고 살다 보니 일조량이 부족하고 습도가 높아져서 병균의 온상이 된 탓에 전염병이 만연하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프랑스의 [[루이 16세]]는 다른 방식으로 창문세를 매겼는데, 그건 바로 창문의 수가 아닌 창문의 '폭'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었다. 부유할수록 창문을 넓게 낸다는 점에서 착안하였던 것. 그러자 이번에는 사람들이 창문의 폭을 줄여서 출입문이라고 우겼고 폭을 좁게 낸 창문이 많은 건물들이 많아졌다. 프랑스식 건물 하면 흔히 떠올리는 '폭 좁은 창문'이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 그리고 이는 프랑스의 여러 조세 제도와 맞물려 시민계급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면서 [[프랑스 혁명]]을 촉발하게 된다. 비슷한 시기 네덜란드에서도 창문세와 비슷한 과세 제도가 있었다. 어떻게 했냐 하면 부유한 사람은 넓은 집에 살 것이라는 판단 하에 집이 넓을수록 많은 세금을 매겼다. 그런데 그 기준이라는 것이 '도로에 면한 건물의 너비'였다. 그래서 세금을 한 푼이라도 덜 내고자 집을 높고 길게 지어 총면적은 유지하면서 과세의 기준이 되는 너비는 최대한 좁게 만든 기형적인 구조의 가옥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다만 이 제도는 대도시에서만 적용되었으며, 현재는 폐지되었다. [[오스만 제국]]에서도 도시 한정으로 도시내의 주택들에 대해 프랑스식인 창문의 폭과 네덜란드식인 도로에 닿은 건물 면적에 비례해 세금을 거뒀다. 덕분에 오스만 제국 당시 부유한 도시였던 [[이스탄불]]이나 현재 [[불가리아]]의 플로브디프(Plovdiv) 구시가지, [[알바니아]]의 베라트(Berat),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 남아있는 오스만 제국 시절의 주택들을 보면 1층은 좁은데, 2층, 3층을 아랫층이 버틸 수 있을만큼 확장을 시켜서 밑에서 볼때 역계단꼴인 집 구조를 볼 수 있다(...) == 기타 == [[Warhammer(구판)]]의 진영인 [[제국(Warhammer)]]에서 창문세를 걷는 것이 [[고트렉과 펠릭스]] 시리즈에서 묘사되는데, 1990년대 대처의 인두세 부활 및 중세 영국, 프랑스의 창문세의 패러디로 추정된다. 설정상 창문세 시위를 카를 프란츠가 무력진압했는데, 이 영향을 받아서인지 [[햄탈워]]에서는 애완인간과 함께 [[카를 프란츠]]의 별명으로도 쓰이고 있다. [[분류:세금]][[분류:법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