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clude(틀:창덕궁)] ---- [include(틀:조선 왕궁의 편전 정문)] [목차] == 소개 == {{{+1 昌德宮 協陽門}}} [[창덕궁]]의 [[편전]] [[창덕궁 희정당|희정당]] 권역의 [[정문]]이다. 다만, 단순히 희정당의 정문만이 아닌, [[창덕궁]] 내 합문(閤門) 역할을 했다. 합문이란 궁궐에서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경계로 설정한 문을 말하며, 보통 [[편전]] 영역에 있었다. 왜냐하면 [[정전]]은 명실상부한 공적 공간이고 [[내전]]은 확실한 사적 공간인데 그 사이에 있는 편전은 일상적으로 [[왕]]이 머물며 [[정사]]를 돌보는, 즉, 공적 · 사적 역할이 섞인 곳이기 때문이었다.[[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합문(閤門)|#]] 협양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창덕궁 희정당|희정당]]이 나오는 게 아니었고, 중간에 선화문(宣化門)과 희인문(熙仁門)을 지나야 비로소 희정당이 보였다. == 역사 == 정확한 건립 연대는 모르지만 1405년([[태종(조선)|태종]] 5년) [[창덕궁]] 창건 때 지은 듯 하다. 1608년([[광해군]] 원년)에 복구했으나, [[이괄의 난]] 때 다시 [[화재]]를 입어 이후 재건했다. 현재는 없다. 훼철 시기 역시 정확히 모르나 [[대한제국]] [[순종(대한제국)|순종]]이 창덕궁으로 [[이어]][*A 移御. 임금이 [[이사]]하는 것.]한 이후 헌 것으로 보인다. == 구조 == * 《[[동궐도]]》에 따르면, 1칸짜리 문으로 [[지붕]]은 맞배지붕에 솟을대문 형식이며 용마루에 [[용두]]를 놓았다. 양쪽 칸은 [[벽]]으로 마감했으며 [[기단]]과 [[계단]]은 없다. ||<table width=430>[[파일:동궐도 협양문.png|width=100%]]|| || 《동궐도》 협양문 || == 여담 == * 합문은 고정된 게 아니라 때에 따라 바뀌었기 때문에 현직 [[관료]]가 아니면 합문이 어딘지를 잘 몰랐다.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다. [[정조(조선)|정조]]시기 한 신입 [[사관]]이 [[창덕궁]]의 합문인 이 곳에서 [[왕]]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 때 정조는 [[창경궁]]에 머물고 있어서 당시 합문은 [[창경궁 빈양문]]이었다.[* [[창경궁 명정전]]과 [[창경궁 숭문당|숭문당]] 사이에 있는 문이다.] 사관이 이를 뒤늦게 알고 [[멘붕|땀을 뻘뻘 흘리며 부랴부랴 빈양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http://sillok.history.go.kr/id/kva_12005025_002|#]][[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협양문(協陽門)|#]] [[분류:창덕궁]][[분류:조선 시대의 없어진 건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