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clude(틀:창덕궁)] ---- ||<table width=662> [[파일:존덕정.png|width=100%]] || || 존덕정 || ||[youtube(gJ3hp72gHa4)]|| ||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3D 입체 영상,[br][[창덕궁 폄우사|폄우사]], [[창덕궁 관람정|관람정]], [[창덕궁 승재정|승재정]]과 같이 소개한다. || [목차] == 개요 == {{{+1 昌德宮 尊德亭}}} [[창덕궁#s-5.4.5|창덕궁 후원]]에 있는 [[정자]]이다. [[창덕궁#s-5.4.5|관람지 권역]]에서 가장 화려하고 규모가 큰 정자이다. == 이름 == ‘존덕(尊德)’ 뜻은 --[[김쫀떡|쫀떡이]]가 아니고-- ‘[[덕]](德)을 높이다(尊)’이다. [[임금]]이 덕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훌륭한 [[정치]]를 하라는 마음을 담았다. == 역사 == [[헌종(조선)|헌종]] 때 지은 《궁궐지》에 따르면, 1644년([[인조]] 22년)에 지었다. 첫 이름은 육면정(六面亭)이었으나 훗날 존덕정으로 고쳤다. 이후 불타거나 훼손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른다. ||<table width=1000> [[파일:옛날 존덕정.png|width=100%]] || || 왼쪽은 《[[동궐도]]》의 존덕정(붉은 원 안), 오른쪽은 《조선고적도보》의 존덕정 || == 구조 == === 건물 주변 === * 건물 북쪽에 [[연못]]이 있다. 《[[동궐도]]》를 보면 원래는 반월 모양의 연못 반월지(半月池)와 사각형의 연못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두 연못을 합쳐 하나로 만들어 현재에 이른다. ||<table width=662> [[파일:존덕정 북쪽 연못.png|width=100%]] || || 존덕정 북쪽 연못 || ---- * 존덕정 동편으로 [[시내]]가 지난다. 그 위에 [[다리(건축물)|돌다리]]를 세웠다. [[아치]] 위와 옆에 석축을 쌓고 그 위에 돌기둥을 올렸다. 그리고 돌기둥 위에는 돌란대를, 돌기둥 하단에는 판석을 끼웠다. 돌란대와 판석 사이에는 하엽동자기둥을 두어 [[난간]]을 구성했다. ||<table width=662> [[파일:존덕정 석교.png|width=100%]] || || 존덕정 돌다리 || ---- * [[다리(건축물)|돌다리]] 동남쪽에 돌로 만든 조형물이 있다. 총 6단으로, 맨 윗단에는 [[연꽃]]을 조각했다. 그 아래로 2, 3, 4단은 둥글게 만들었고 단 사이마다 구슬 모양을 새겨넣었다. 5단에는 잎사귀문을 조각했다. 제일 아랫단은 8각으로 만들었으며 덩굴과 모란을 새겼다. ||<table width=662> [[파일:존덕정 조형물.png|width=100%]] || || 존덕정 조형물 || ---- * 돌다리와 존덕정 사이에 일영대(日影臺)가 있다. 일영대는 [[해시계]]를 올려놓으려고 만든 대로, 원래는 그 위에 해시계가 있었으나 지금은 대만 남았다. [[헌종(조선)|헌종]] 때 지은 궁궐지에 따르면 원래는 돌다리의 남쪽에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북쪽에 있다. 총 네 단으로, 제일 아랫단은 8각이나 최대한 둥글게 만든 흔적이 보인다. 위로 올라갈수록 면적이 넓어진다. 밑에서 2, 3째 단에는 [[구름]]을 새겼고, 제일 윗 단에는 연덩굴을 조각했다. 윗단 상부에는 홈이 파여있는데 해시계를 놓았던 흔적이다. ||<table width=662> [[파일:존덕정 일영대.png|width=100%]] || || 존덕정 일영대 || === 건물 === * 1층[* 보통 [[전통]] [[건축]]에선 단층이라고 표현한다.] [[목조]] [[건물]]로 동남향(東南向)이다. 하지만 [[지붕]]을 이중으로 만들어 마치 2층처럼 보이게 했다. * 6각형이다. 안에 6개의 [[기둥]]을 두고 바깥쪽에 18개의 기둥을 두었다. 안쪽기둥은 두껍고, 바깥기둥은 얇다.[[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anmun2014&logNo=220244462490&categoryNo=21&parentCategoryNo=0&viewDate=¤tPage=12&postListTopCurrentPage=&from=postList&userTopListOpen=true&userTopListCount=5&userTopListManageOpen=false&userTopListCurrentPage=12|#]] * [[지붕]]은 육모지붕이다. [[처마]]는, 아랫층은 홑처마, 윗층은 겹처마로 만들었다. 보통 홑처마를 만들 땐 서까래를 둥글게 만들지만, 존덕정의 홑처마 서까래는 네모난 것이 특징이다. 추녀마루는 [[기와]]로 마감했고 지붕 꼭대기에는 [[청동]]으로 만든 절병통을 얹었다. * [[공포(동음이의어)#s-2|공포]]는 초익공이며 주두는 원형이다. [[단청]]은 모로단청으로 칠했다. [[기둥]]은 원형이고 [[주춧돌]]은 6각형이다. 북쪽은 연못과 맞닿아 있기에 북면에는 주춧돌대신 세로로 긴 [[암석|돌]][[기둥]]을 [[연못]] 바닥에 맞닿게 만들었다. 그래서 마치 연못에 발 담그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 [[현판]]은 걸려있지 않다. 단, [[헌종(조선)|헌종]] 시기에는 헌종이 직접 써서 걸었다고 한다. * 각 기둥 하단부마다 [[난간]]을 설치했다. 다만, [[건물]]로 들어가는 서남면, 남면, 동남면 부분에는 [[기둥]] 양 옆에 짧게 난간을 두었다. 난간의 모양은 바깥기둥과 안쪽기둥에 설치한 것이 다르다. 안쪽 기둥의 난간은 평난간으로, 풍혈을 뚫은 궁판을 두고 그 위에 난간기둥과 돌란대를 둔 형태이다. 바깥기둥의 난간은 ‘만(卍)’자 형 교란으로, 그 위에 하엽동자 모양의 난간기둥과 돌란대를 얹은 형태이다. ||<table width=662> [[파일:존덕정 난간.png|width=100%]] || || 존덕정 난간 || * 서남쪽, 남쪽, 동남쪽 칸의 창방에는 연꽃과 덩굴, 기하학적인 문양의 장식 틀을 두고 그 밑에 [[박쥐]] 모양의 낙양각을 두었다. 그러나 서북쪽, 북쪽, 동북쪽 칸의 창방 밑에는 교창을 두어 다르게 만들었다. ||<table width=662> [[파일:존덕정 장식틀과 낙양각.png|width=100%]] || [[파일:존덕정 교창.png|width=100%]] || || 존덕정 장식틀과 낙양각 || 존덕정 교창 || * 남쪽과 북쪽의 [[기둥]] 4개 위에 대들보를 2개 얹었고 그 위에 대들보를 잡아주는 간보를 설치했다. 그리고 대들보와 간보 위에 포대공을 두어 중도리를 받치게 했다. 중도리에는 6각형 모양의 우물반자를 설치하고 그 안의 보개천장에 [[청룡]]과 [[황룡]]을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이 조각해 걸었다.[[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anmun2014&logNo=220244462490&categoryNo=21&parentCategoryNo=0&viewDate=¤tPage=12&postListTopCurrentPage=&from=postList&userTopListOpen=true&userTopListCount=5&userTopListManageOpen=false&userTopListCurrentPage=12|#]] 반자를 제외한 나머지 천장은 서까래가 보이는 연등천장이다. 각 모서리의 서까래는 부챗살 모양의 선자연 형태이다. ||<table width=662> [[파일:존덕정 천장.png|width=100%]] || || 존덕정 보개천장에 걸린 용 조각 || * 실내 바닥은 [[마루]]인데 안쪽과 바깥쪽이 다르다. 안쪽 바닥은 우물마루로 깔았으나 바깥 바닥은 장마루로 깔았다. * 북쪽 칸에 [[정조(조선)|정조]]가 쓴 《만천명월주인옹자서》 판을 걸어놓았다. ||<table width=662> [[파일:만천명월주인옹자서.png|width=100%]] || || 《만천명월주인옹자서》 판 || * 안쪽기둥의 바깥쪽에 주련을 걸었다. 주련에는 [[시]]를 적어놓았다. 주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盛世娛遊化日長 (성세오유화일장) >태평성세에 즐겁게 놀며 덕화(德化)의 날은 기니 > >羣生咸若春風暢(군생함약춘풍창) >온갖 백성 교화되어 봄바람 화창하네 > >庶俗一令趨壽域 (서속일령추수역) >뭇 백성들 한결같이 태평성대로 나아가게 하고 > >從官皆許宴蓬山 (종관개허연봉산) >근신(近臣)들도 모두가 봉래산 잔치에 허락 받았네 > >艶日綺羅香上苑 (염일기라향상원) >고운 봄날 비단 치마는 상림원(上林苑)에 향그럽고 > >沸天簫鼓動瑤臺 (비천소고동요대) >하늘까지 치솟는 피리소리 · 북소리는 요대(瑤臺)를 뒤흔드네 > >[[http://www.cha.go.kr/newsBbz/selectNewsBbzView.do;jsessionid=JinGc946Q1nSp01RIikfH3LbQWi1olFSGe75sY1gn1t58jtD4wFoZNTl5cyzcjHy.cha-was02_servlet_engine1?newsItemId=155696064§ionId=ocp&pageIndex=11&mn=NS_01_02&strWhere=&strValue=&sdate=&edate=|#]] == 여담 == * 1907년([[융희]] 원년)에 일본 [[다이쇼 덴노|요시히토 황태자(훗날의 다이쇼 덴노)]]가 [[방한]]하여 [[창덕궁]]에 들렀을 때 [[영친왕|의민태자(영친왕)]]과 함께 존덕정에서 찍은 사진이 남아있다. ||<table width=400>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rown_Prince_Yoshihito_and_Crown_Prince_Lee_Eun_1907.jpg|width=100%]] || || 존덕정에서 사진을 찍은 [[대한제국]] [[황태자]] [[영친왕|의민태자(영친왕) 이은]](가운데), [[일본 제국|일본]] 황태자 [[다이쇼 덴노|요시히토]](왼쪽), 일본 [[황족]] [[아리스가와노미야|아리스가와노미야 다케히토]] [[친왕]](오른쪽) || * 2010년부터 [[문화재청]]에서 매년 [[봄]]과 [[가을]]에 여는 ‘창덕궁 후원에서 만나는 한권의 책’ 행사 장소로 사용한다. 정자 내부에 책을 비치해두어 [[시민]]들이 후원의 경치를 보며 [[독서]]할 수 있게 한다.[* [[창덕궁 영화당|영화당]], [[창덕궁 폄우사|폄우사]], [[창덕궁 취규정|취규정]]도 장소로 활용한다.] 행사 기간은 일정하지 않으나 대략 4월 중순 ~ 5월 중순(봄), 10월 중순 ~ 11월 중순(가을)이다. 창덕궁 후원 입장료만 내면 별도로 들어가는 [[돈]]은 없다. 2020년에는 [[SARS-CoV-2|코로나 19]] 사태로 진행하지 않았다. ||[youtube(pv2JmEsjpE0)]|| ||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창덕궁 후원에서 만나는 한권의 책’ 행사 홍보 영상.[br]시기는 2016년 가을이다. || [[분류:창덕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