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clude(틀:창덕궁)] ---- ||<table width=662>[[파일:external/dunggu.com/changdeokgung75_10.jpg|width=100%]]|| || 수강재 || [목차] ---- == 개요 == {{{+1 昌德宮 壽康齋}}} [[창덕궁 낙선재]] 권역에 있는 건물. [[창덕궁 낙선재|석복헌]]의 동쪽에 있다. 낙선재 권역에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되었다. 이름은 [[태조(조선)|태조]] 시절 옛 수강궁 터였던 데에서 유래했다.[[http://sillok.history.go.kr/id/kva_10908027_005|#]] == 역사 == 1785년([[정조(조선)|정조]] 9년)에 처음 지었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창경궁]]에 [[창경궁 자경전|자경전]]을 지으면서 공사하고 남은 [[자갈]]과 [[벽돌]]을 모아 가짜 [[산]]을 만들었는데 이를 철거하고 지은 것이 수강재이다. 원래는 [[임금]]의 [[서재]], 또는 [[태자|세자]]가 [[공부]]하는 곳으로 지은 듯 하며, [[순조]] 시기 [[효명세자]]가 [[대리청정]]을 할 당시 이 곳을 별당으로 사용했다. 그러다 [[헌종(조선)|헌종]] 때 이 일대에 [[창덕궁 낙선재|낙선재]]를 지으면서 낙선재 권역으로 편입시킨 뒤 고쳐지었고 이후 [[대왕대비]] [[순원왕후]]가 머물렀다. [[8.15 광복|해방]] 이후 1962년에 [[일본]]에서 [[고종(대한제국)|고종]]의 딸 [[덕혜옹주]]가 돌아온 뒤 1989년 4월 21일 서거하기 전까지 이 곳에서 살았다. == 구조 == * [[창덕궁 낙선재|낙선재]]보다 먼저 지은 건물이라 그런지, 자세히 보면 다른 낙선재 권역의 건물과 다르게 [[단청]]을 칠했던 흔적이 보인다. 《[[동궐도]]》에도 단청을 입힌 모습으로 나온다. 다만, 현재는 너무 색이 바래서(...) 쉽게 알아보긴 어렵다. ||<table width=662>[[파일:동궐도 수강재.png|width=100%]]|| || 《동궐도》의 수강재 || * 한단 반의 장대석 [[기단]]을 설치한 뒤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지붕은 팔작 [[지붕]]이고 홑처마 [[양식]]의 [[건물]]이다. 정면 6칸으로 동쪽에 [[대청]]을 두고 가운데에 [[온돌|온돌방]]을 두었으며 제일 서쪽 칸은 [[창고]]로 조성했다. 서북쪽에 온돌방이 더 있으며 이 서북쪽 온돌방을 통해 복도를 거쳐 석복헌으로 갈 수 있다. 제일 동쪽 칸은 행랑채와 통한다. 정면에서 볼 때 기준으로, 대청쪽 온돌방은 툇마루를 밖으로 내었으나 다른 온돌방은 툇마루를 막아놓고 창을 세웠다. * [[창호]]는 낙선재, 석복헌과 달리 단순한 정(井)자 살과 띠살 창호로 꾸몄다. * 수강재 동쪽에는 서향(西向)한 2채의 창고가 있다. 각각 지붕의 모양이 다르다. 한 채는 팔작지붕 형태이고, 다른 한 채의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그 북쪽엔 넓은 뜰이 있다. 그 곳에서 동북쪽을 바라보면 [[궁궐]] 지붕들이 보이는데 바로 [[창경궁]]의 건물들이다. ||<table width=700>[[파일:창덕궁 수강재 창고.png|width=100%]]||[[파일:창덕궁 수강재 창고2.png|width=100%]]|| ||<-2> 수강재 동쪽 창고 || ----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창덕궁 낙선재, version=73, paragraph=5.2)] ---- [[분류:창덕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