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clude(틀:창덕궁)] ---- ||<table width=662>[[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AKR20140507055100805_05_i.jpg|width=100%]]|| || 석복헌 사진 || [목차] ---- == 개요 == {{{+1 昌德宮 錫福軒}}} [[창덕궁 낙선재]] 권역의 안채이다. 낙선재의 동쪽에 있다. == 역사 == 낙선재 본채보다는 1년 늦은 1848년([[헌종(조선)|헌종]] 14년)에 지었으며 헌종의 [[후궁]] [[경빈 김씨]]가 머물렀다. 그러나 불과 1년 뒤인 1849년(헌종 15년)에 헌종이 죽자 [[후궁]]인 경빈 김씨는 궁에서 나왔고 석복헌은 비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1912년에 [[고종(대한제국)|고종]]의 친형인 [[흥친왕]]이 죽자, [[순종(대한제국)|순종]]이 석복헌 동쪽 뜰에서 망곡[* 望哭. 시신 있는 쪽을 향해 곡하는 것.]했다.[[http://sillok.history.go.kr/id/kzc_10509009_002|#]]. 1917년 [[창덕궁 대조전|대조전]]이 [[화재]]로 불타자 순종과 [[순정효황후]]가 잠시 석복헌을 침전으로 사용했다. 1966년 2월 3일 [[순정효황후]]가 이 곳에서 붕어했다. == 구조 == *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장대석 기단 2단을 놓고 그 앞에 2단짜리 [[계단]]을 2개 놓은 뒤 그 위에 [[건물]]을 지었다. 뜰은 ‘ㅁ’ 자 형 평면으로 되어있으며 본채와 행랑채가 서로 붙어있고 동, 서 행랑채의 [[지붕]]은 각각 높이의 차이를 두어 [[층]]이 나있다. 서쪽엔 [[온돌|온돌방]], 동쪽에 [[대청]]을 두었고, 대청 쪽 온돌방 앞의 한 칸은 [[마루|툇마루]]를 두고 다른 온돌방 앞은 툇마루를 막아놓았다. * [[창덕궁 낙선재|낙선재]]와 마찬가지로 [[난간]]과 [[창호]]의 무늬가 제각기 다 다르다. 그래서 각 [[창]]과 [[문]]의 [[개성]]이 뚜렷하다. * 석복헌 본채를 나가면 동쪽에 작은 [[문]]이 있다. 이 문을 통해 [[창덕궁 수강재|수강재]]로 드나들 수 있다. ----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창덕궁 낙선재, version=72, paragraph=5.1)] [[분류:창덕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