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clude(틀:창덕궁)] ---- [목차] ||<table width=650> [[파일:창덕궁 경추문.png|width=100%]] || || 경추문 || == 소개 == {{{+1 昌德宮 景秋門}}} [[창덕궁]]의 궁문이다. 서쪽 궁장에 있으며 [[창덕궁 금호문|금호문]]과 [[창덕궁 요금문|요금문]] 사이에 있다. == 이름 == '경추(景秋)'의 뜻은 '상서로운(景) 가을(秋)'이다. 전통적으로 가을은 서쪽을 의미했다. 즉, 서쪽 문이란 뜻이다. == 역사 == 1655년([[효종(조선)|효종]] 6년)에 [[왕대비]] [[장렬왕후]]를 위해 [[창덕궁]]에 새로운 대비전 [[창덕궁 만수전|만수전]]을 지었다. 이에 만수전 근처에 새로운 문이 필요해서 지은 것이 경추문이다. 1687년([[숙종(조선)|숙종]] 13) 9월에 만수전이 [[화재]]로 불탔다. [[대왕대비]]였던 [[장렬왕후]]는 예전에 살던 [[창경궁 통명전]]으로 거처를 옮겼고 이후 만수전을 복구하지 않았다. 만수전이 없어지면서 경추문을 쓸 일도 사라졌다.[[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경추문(景秋門)|#]] 그래도 문 자체는 없어지지 않고 오늘까지 남아있다. 《한경지략》에 따르면 이후에는 비상시에 [[군사]]를 동원할 때에만 열었다고 한다. == 구조 == * 정면 1칸, 측면 2칸이다.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용마루와 내림마루는 기와를 얹어 마감했다. [[공포(동음이의어)#s-2|공포]]가 없는 민도리 양식이다. * 문짝은 나무 판으로 중앙 열에 달았다. 양 측면의 칸 마다 중인방을 끼우고 위, 아래 --[[위아래|위위아래]]--를 초록색 [[나무]] [[판]]으로 마감하였다. [[천장]]은 서까래와 [[구조]]들이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하였고, [[문]] 위에는 홍살을 두었다. [[단청]]은 긋기단청[* 가칠단청 위에 [[선]]만 그어 마무리한 단청이다. 가칠단청은 무늬없이 단색으로만 칠한 단청이다.]으로 입혔다. * [[현판]]은 걸려있지 않다. 언제 없어졌는지는 모른다. * 보통 [[궁궐]] [[건축]]에서 [[담]]을 만들 때에는 [[문]]의 중간 부분과 이어 만드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경추문의 경우는 다르다. 북쪽 담은 문보다 궁 쪽으로 물려나있으나 남쪽 담은 바깥 기둥과 바로 붙어있다. --말그대로 중간이 없다.-- == 여담 == * 1777년(정조 1년) 8월에 [[창덕궁|궁궐]]을 지키는 [[군사]]들이 경추문 북쪽 [[담]]을 넘으려던 전홍문이란 사람을 붙잡았다. 알고보니 그는 한 달 전에 일어난 [[정조(조선)|정조]] [[암살]] 미수 사건의 범인 중 한 명으로, 다시 정조를 죽이려고 궁에 들어가려던 것이었다. 결국 [[역모]]의 주모자인 홍상범 등은 [[사형]]당했고 이들의 추대대상이었던 정조의 이복동생 [[은전군]] 역시 [[사약]]을 받고 죽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va_10108011_001|#]]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창덕궁, version=526, paragraph=4.1)] [[분류:창덕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