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191970><#191970> '''{{{#white 직위}}}''' ||||<:><white> 가잠성(椵岑城) 현령(縣令) || ||<:><#191970> '''{{{#white 이름}}}''' ||||<:><white> 찬덕(讚德) || ||<:><#191970> '''{{{#white 아들}}}''' ||||<:><white> [[해론]] || ||<:><#191970> '''{{{#white 사망지}}}''' ||||<:><white> 가잠성(椵岑城) || ||<:><#191970> '''{{{#white 생몰연도}}}''' ||||<:><white> ? ~ 612 || [목차] == 개요 == [[삼국시대]] [[신라]]의 정치인, 군인. 신라 상대 사회의 계율 [[세속오계]] 중 임전무퇴를 실천한 인물이다. == 생애 == [[서라벌]]의 모량부 출신으로, 용맹과 절개를 갖추고 있어 당시에 유명했다고 한다. [[진평왕]]에 의해 발탁되어 백제와의 국경에서 가까운 가잠성[*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 학계에서 논란이 있다.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의 죽주산성설, [[충청북도]] [[괴산군]]설 등이 있다.] 현령으로 부임했는데, 바로 다음 해인 611년 겨울 10월에 [[백제]]의 [[무왕(백제)|무왕]]이 대군을 일으켜 가점성을 공격했다. == [[가잠성 전투]]와 죽음 == 진평왕은 상주(上州,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 하주(下州, [[경상남도]] [[창녕군]]), 신주(新州, [[경기도]] [[광주시]]) 3주의 병력으로 원군을 보냈지만 백제군에 의해 패퇴하게 된다. >세 주의 장수들이 적이 강한 것을 보고 진격하지 않고, 성이 위급한데도 구원하지 않으니 이는 [[의리]]가 없는 것이다. 의리 없이 사는 것보다는 의리를 지켜 죽는 것이 낫다 >[[삼국사기]] [[해론]] 열전 100여일 동안 포위된 상태로 싸우면서 가잠성의 군량과 식수가 바닥나 [[시체]]를 뜯어먹고 [[오줌]]을 받아 마시면서까지 버티며 [[지옥]] 같은 [[공성전]]이 계속되었다. 612년 정월에 들어 결국 병사는 지치고 물자가 완전히 바닥나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상태에 다다랐고 찬덕은 하늘을 우러러 크게 부르짖었다. >우리 임금이 나에게 하나의 성을 맡겼으나 온전하게 지키지 못하고 적에게 패하게 되니, 원컨대 죽어서 큰 귀신이 되어 백제인을 다 물어 죽이고 이 성을 되찾겠다! >삼국사기 해론 열전 이는 곧 찬덕의 [[유언]]이 되었고 찬덕은 이내 팔을 걷고 눈을 부릅뜨고 [[느티나무]]에 부딪혀 자결했다. 가잠성은 함락되고 살아남은 병사는 모두 항복하였다. 비록 찬덕은 전장에서 죽음을 맞았지만 [[명예]]를 지킨 공로를 인정받아 아들 [[해론]]은 20세의 젊은 나이에 대나마[* 현대 군 계급으로는 대위.]라는 높은 관등을 하사받게 된다. 당시 신라는 장수들이 용맹하게 전쟁에서 싸울 수 있도록 장려하기 위해, 공을 세운 인물은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남은 가족은 큰 보상과 명예를 받을 수 있었는데 비슷하게 큰 보상을 받은 인물로 [[소나#s-6|소나]], [[야이차]] 등이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아들 해론 역시 훗날 아버지가 죽은 가잠성에서 똑같이 죽음을 맞게 된다. [각주] [[분류:생년 미상]][[분류:612년 사망]][[분류:신라의 인물]][[분류:자살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