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151B54><tablebgcolor=#151B54> '''{{{#ffffff 차명주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bgcolor=#ffffff,#19191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table align=center>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 ||<bgcolor=#151B54> '''[[2001년 한국시리즈|{{{#ffffff 2001}}}]]''' ||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bgcolor=#151b54> [[KBO 리그 역대 타이틀홀더/투수#s-5|[[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KBO_League.svg.png|width=150]]]] [br] '''{{{#ffffff 2001~2003 KBO 리그 홀드왕}}}''' || ---- ||<-5><table align=center><bgcolor=#d2d2d2,#2d2d2d> '''[[롯데 자이언츠|{{{#000000,#e5e5e5 롯데 자이언츠}}}]] {{{#000000,#e5e5e5 등번호 70번}}}''' || || 김진영(1990) || → || '''차명주(1996~1997)''' || → || [[공필성]](2002~2014) || ||<-5><bgcolor=#d2d2d2,#2d2d2d> '''[[롯데 자이언츠|{{{#000000,#e5e5e5 롯데 자이언츠}}}]] {{{#000000,#e5e5e5 등번호 7번}}}''' || || [[이종운]](1989~1997) || → || '''차명주(1998)''' || → || [[임재철]](1999~2001) || ||<-5><bgcolor=#151B54> '''[[두산 베어스|{{{#ffffff 두산 베어스}}}]] {{{#ffffff 등번호 17번}}}''' || || 박상근(1993~1998) || → || '''차명주(1999~2004)''' || → || [[임재철]](2004~2007) || ||<-5><bgcolor=#f7000d> '''[[한화 이글스|{{{#ffffff 한화 이글스}}}]] {{{#ffffff 등번호 17번}}}''' || || [[강석천]](1989~2003) || → || '''차명주(2004~2007)''' || → || [[신주영(야구선수)|신주영]](2008~2009) || }}} || ---- ||<-2><table align=center> [[파일:ToPMRXe.jpg]] || ||<-2><bgcolor=#ffffff,#191919> 2006년, 최연소 600경기 출장을 달성한 뒤.[* 이 기록은 이후 2013년 [[강영식]]에 의해 갱신되었다.] || || '''이름''' || 차명주(車明珠 / Myoung-Joo Cha) || || '''생년월일''' || [[1973년]] [[9월 22일]] ([age(1973-09-22)]세) || || '''출신지''' || [[부산광역시]] || || '''학력''' || [[부경고등학교 야구부|경남상고]] - [[한양대학교|한양대]] || || '''포지션''' || [[투수]] || || '''투타''' || [[좌투좌타]] || || '''프로입단''' || [[1996년]] [[롯데 자이언츠]] 1차 지명 || || '''소속팀''' || [[롯데 자이언츠]] (1996~1998) [br] '''[[두산 베어스]] (1999~2004)''' [br] [[한화 이글스]] (2004~2006) || [목차] == 소개 == 前 [[롯데 자이언츠]], [[두산 베어스]], [[한화 이글스]]의 야구선수다. 별명으로는 학창시절에는 [[독고탁]][* 작은 키로 거대한 강타자들을 사정없이 돌려세운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이 있었으며 현역 시절엔 항상 머리를 모두 밀고 나와서 붙여진 별명인 '명주대사', 그리고 두산에 있던 시절 잦은 등판으로 인해 언제나 불펜에서 대기한다는 의미로 붙여진 '차대기' 등이 있다. 등번호는 07번(입단 당시) - 70번 - 7번 - 17번(두산)이었다. == 선수 경력 == === 아마추어 선수 시절 === [[부경고등학교 야구부|경남상고]][* 3학년이었던 1991년 대통령배, 청룡기 우승에 기여했고, 특히 청룡기에서는 대회 MVP도 차지했다. 다만 경남상고 때는 키가 160cm밖에 되질 않아, 생각보다 출장이 적었다. 먹을 건 다 먹어보고 철봉에 매달리고, 선배들은 사지를 쭉쭉 잡아 당겨주고 키크는 약이란 약은 다 먹는 눈물나는 노력 끝에 대학시절까지 13cm가 컸다.(173cm)]-[[한양대학교|한양대]] 시절 [[박찬호]], [[임선동]], [[조성민]]과 함께 '고교야구 4대 천왕'이라 불리우는 에이스급 좌완투수였다. 좌완으로서 평균구속 140km이상의 묵직한 공에 예리한 슬라이더로 프로에서도 당장 10승이 가능한 즉시 전력감으로 평가를 받았다. 이 명성은 과장이 아니었던 게 [[한양대학교|한양대]] 4학년 때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60만 달러의 러브콜을 비롯해 당시 최강팀 중 하나였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도 관심을 가졌고, 몇몇 일본프로야구팀도 관심을 가졌을 정도였다. 결국 해외 진출을 포기하고 1차지명을 받은 연고팀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아버지가 "쪼매난 막둥이"인 그를 아껴, 키도 작은데 [[미국]] 가 봤자 더 고생한다고 적극 만류했다고 한다. === 프로 시절 === ==== [[롯데 자이언츠]] 시절 ==== 이 명성은 돈 안쓰기로 소문난 [[롯데 자이언츠]]가 그를 1차지명하고 5억 원이라는 파격적인 계약금[* 당시 국민소득이 1만 달러도 안 되던 시절이니 오늘날 물가로는 7~8억원 정도를 호가하는 거다. 게다가 롯데는 연봉협상 때마다 상습적으로 짠돌이짓을 벌인 구단이었으니.][* 역시 같은 구단에 1년 후 입단한 [[손민한]]과 [[문동환]] 에게도 나란히 계약금 5억 원씩을 안겨줬으니, 당시 차명주에게 롯데 구단이 건 기대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을 지르며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입단테스트를 준비하던 그를 붙잡은 데서 잘 드러났다. 이 때 차명주에 대한 기대치가 어느정도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롯데는 기존의 베테랑 투수들 대신 신인에 불과한 차명주에게 무려 [[마무리 투수]] 보직을 맡겼다. 좌완이면서도 빠른 공을 던지고 베짱까지 두둑한 탓에 마무리로서 필요한 조건은 최상이었다는 뜻이다. 다만 입단 과정부터 순탄치 못했는데 졸업반 시절 절정으로 올라간 가치 탓에, 롯데와의 첫 협상 때는 해외 진출 동기생들인 [[박찬호]]나 [[조성민]]에 준하는 대우를 받아야만 한다며 계약금으로 무려 '''10억'''을 요구했다. 정말 10억을 받아낼 생각이었다기보단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대우를 해 달라는 뜻. 계약 협상이 지지부진해 이미 8개구단의 해외 전지훈련이 막바지로 치달을 2월 중순까지도 계약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결국 구단 역사상 최고의 계약금인 5억으로 합의하고 입단[* 롯데가 1993년말에 [[주형광]]에게 준 금액이 9200만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무려 5배나 넘는 돈을안겨준 것이다. 그 짠돌이 롯데가. 롯데는 이듬해에 입단하는 문동환(95년에 입단했어야 하나 현대 피닉스 때문에 2년 늦어짐)과 손민한에게도 5억을 안긴다.] 입단을 확정짓고도 순탄치 못했던 게 등번호 문제. 차명주는 야구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7번만을 달았기에 7번을 받지 못하면 입단을 철회하겠다고까지 말하면서 집요하게 7번을 요구했다. 문제는 이 번호가 이미 베테랑 외야수 [[이종운]]이 달고 있는 번호였다는 점. 이종운 또한 역시나 한 고집하던 성격이었는지라 '7번을 뺏으려면 차라리 날 은퇴시켜라'고 버텼고 결국 구단에서 장고 끝에 '07'번을 부여해 줬다. 그러나 영 애매한 번호였던지라 개막하기 전 '70번'으로 변경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는 [[에디슨 러셀]]이 있었으나, 러셀은 원래 5번을 달고 싶어 했는데 정현민이 달고 있어 고사하고 05번을 선택했으나 바로 다음 날 05번은 사용 불가라고 50번으로 바꿨다. 단, 차이점을 꼽자면 정현민은 원래 러셀에 5번을 넘겨주려 했으나 러셀이 거절한 것이다.] 위의 두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자존심이나 강한 고집 등 투수로서는 좋은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것이 야구 외적인 부분에서 불거진 바람에 동계 훈련을 충실히 하지 못하고 데뷔 시즌인 1996 시즌을 그르치게 된다. 개막 후 세 게임 연속 세이브를 따내며 아마시절의 활약을 고스란히 이어가는가 했으나, 이후 두 게임 연속으로 블론세이브를 저지른 후 기세가 확 꺾인다. 이후 구원승과 몇 개의 세이브를 더 추가하긴 했지만 내용이 영 좋지 않아 선발투수로 전환. 그러나 승을 따내지 못하고 패전만 쌓아가면서 후반기 즈음에는 사실상 주요 전력에서 배제되었다. 데뷔시즌 성적은 기대치에 한참 못미치는 정도를 넘어 먹튀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는 2승 5패 8세이브 7.43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이듬해인 1997시즌엔 전 시즌의 실패를 거울삼아 아예 보직을 선발투수로 고정하고 충실한 동계훈련으로 시즌 초반 연승행진을 달리며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선발투수로 뛰기 시작한 이 시점에서 그의 치명적인 약점이 드러나는데, 선천적으로 공을 오래 던지지 못하는 점이였다. 다한증과 일종의 '습진'이 겹친 난치병으로, 손에 굳은살과 물집이 매우 잘 잡혔고, 습기찬 날에는 더욱 심하였다. 그리고 공을 오래 던지면 공을 던지는데 가장 중요한 중지가 해지는 증상을 보였다.[* 이를 고치기 위해 1997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조직 검사도 받았고, 주사를 수도 없이 맞아봤으며, 온갖 약을 가리지 않고 썼으나, 난치병이라 소용이 별로 없었다.][* 비슷한 문제로 크게 고생했던 선수가 바로 2016년도 신인왕 [[신재영]]. 신재영 역시 16시즌 풀타임 선발로 15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하는 듯 했으나, 17-18년 2년동안 차명주와 비슷하게 다한증+물집+굳은살이 떨어지는 증상으로 인해 선발 로테이션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진을 거듭했다. 결국 18시즌이 끝난 이후 오른팔의 묶는 다한증 수술을 받고 나서야 19년에 다시 임시선발로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이 탓에 시즌 초반의 기세를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고 등판 간격도 들쭉날쭉해지며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다가 결국 7승 9패 4.68의 평균자책점이라는 다소 아쉬운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다만 이 시즌 롯데의 성적 자체가 48승 1무 77패에 그치며 압도적인 꼴찌를 한 시즌임을 감안하면 꽤 분전한 셈이다. 3년차인 1998시즌은 [[이종운]]이 한화 이글스로 이적한 탓에 염원하던 '7번'을 달고 뛰었다. 그러나 2년 연속으로 꼴지를 기록한 팀 성적과 더불어 차명주 본인으로서도 정말 의아하리만치 승운이 절망적으로 안 따라준 시즌이었다.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33게임에 등판했지만 이 시즌 차명주가 기록한 성적은 '''"0승"''' 7패 0세이브 4.99의 평균자책점. [[WHIP(야구)|WHIP]]는 입단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음에도 단 1승조차 올리지 못했다. 결국 롯데에서의 3년동안 9승 21패 8세이브라는 참담한 성적을 기록하고 시즌 종료 후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 된다. ==== [[두산 베어스]] 시절 ==== [[파일:external/dimg.donga.com/6820915.1.jpg]] [[두산 베어스]] 시절. 전술했듯이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 되었으며 트레이드 상대는 포수왕국 두산에서 좀처럼 자리를 못 잡던 [[최기문]]이었다. 트레이드에 대한 떡밥은 이미 던져져 있었는데 당시 롯데의 감독대행에서 정식 감독으로 승격한 [[김명성(1946)|김명성]]이 팬들과의 간담회에서 전력 보강에 대한 질문을 받자 '투수를 내 주고 포수를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구상 중이다'고 답변했던 것. 결국 이 구상중인 트레이드가 그대로 성사된 셈. 그리고 이 트레이드 이후 차명주와 최기문 모두 전성기를 맞이하며 윈-윈 트레이드의 사례로 기록되었다. [[두산 베어스]]에서는 [[중간계투]]로 자리잡아 첫 해부터 무려 83경기에 출전하며 중용되었다. [[2000년]]부터 신설된 [[홀드(야구)|홀드]] 부문에서 3년 연속 홀드 1위(2001년 ~ 2003년)[* 2014년까지 3년 연속 홀드 1위를 기록한 선수는 차명주뿐이다.]를 기록하며 비로소 꽃을 피운다. 그 시절, 생소하던 너클커브를 던지던 몇 안 되는 투수기도 하였다.[* 차명주 외에는 [[진필중]], [[마일영]]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 영광 뒤에는 혹사라는 그늘이 자리잡고 있었다. 두산의 [[김인식]] 감독은 그가 살인적인 혹사 때문에 연투가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위의 이유 참조) "매일 2이닝씩 먹어줄 수도 있는 투수"라고 칭찬하며 좌타자가 나오면 2경기에 1번 꼴로 차명주를 등판시켰고, 1999년에는 83경기, 2001년에는 84경기에 등판하는 등 엔간한 대타 전문 요원보다도 자주 TV 브라운관에서 볼 수 있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이때 '차대기'라는 별명도 얻었다. 의미는 짐작하는 대로 언제나 불펜에서 '''항상 대기'''한다고 해서 '차대기'였다. ==== [[한화 이글스]] 시절 ==== [[파일:/image/001/2006/10/29/kp1_2061029p2591.jpg]] [[한화 이글스]] 시절. [[김인식]] 감독이 물러난 후 [[김경문]] 감독과의 불화로 2004년 시즌 중 [[임재철]]+5000만원을 상대로 [[한화 이글스]]에 현금 [[트레이드]]되었다. 한화 이적 후에는 주로 [[원 포인트 릴리프]]로 나왔다. 하지만 한화에서는 두산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고, 말년쯤엔 '''분식회계사'''라는 별명으로 까였다. 한 점 차 박빙인 상황에서 등장해 동점주자를 홈인시킨 뒤 그 다음에 잘 막아서 구원승을 무려 7번이나 기록했다. 더구나 소화하는 이닝도 해마다 줄어들어서 [[한화 이글스]] 팬들 사이에서 그의 별명은 0⅓이닝의 신화였다. 매일같이 등판하지만 올라올 때마다 한 타자만 잡고 내려가서 생긴 별명이다. 그 예로 2005년에는 1군에서 77경기에나 마운드에 올라왔지만 소화한 이닝은 33이닝에 불과했다. 그나마 유승안 시기에는 관리를 받기라도 했지 2005년에는 핀필 김인식이 감독으로 오면서 등판경기수가 많아졌고 은퇴하던 해에도 50경기 이상을 등판했다. 2006 시즌 후 FA를 선언했으나 소속팀 우선협상 기간에 [[한화 이글스]]가 '''재계약을 거부했고''' 이후에도 불러 주는 팀도 없자 자신도 현역 생활에 대한 욕심이 더 이상 없어서, 선수 생활을 더 이어나갈 수 있었음에도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 은퇴 후 == 야구계를 떠나 재활 트레이너로 전업하였다.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에 아버지와 형이 운영하고 있는 횟집 바로 옆 건물에 Gem Fitness라는 유소년 전문 회원제 재활 트레이닝 센터를 개장, 운영하고 있다. [[파일:/image/003/2010/02/07/NISI20100207_0002277715_web.jpg|width=350]] [[2009년]] [[MBC SPORTS+|MBC ESPN]]에서 방영한 '날려라 홈런왕'이라는 리틀야구 프로그램에서 투수코치로 오랜만에 방송에 모습을 드러냈다. 2021년 현재는 자신이 설립한 SSL 연구소라는 과학적 및 데이터 분석 위주로 교육을 진행하는 일종의 야구 연구소의 원장 및 [[국민대학교]] 생체역학실 연구원이자 [[차의과학대학교]] 스포츠의학대학원 겸임 교수로 지내고 있다. 겸임 교수 신분으로 제 1기 KBO 코치 아카데미에서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 여담 == * [[두산 베어스]]에서 워낙 많은 등판 횟수를 기록하다보니 '''최연소 600경기 출장(32세 11개월)''' 기록을 갖고 있었다.[* 이는 이후 2013년 8월 15일 [[강영식]]에 의해 갱신되었다.] * 아버지가 부산 송정에서 횟집을 운영하고 '''어선도 여러 척 가지고 있는''' 토호였다. 청소년 대표 시절 친해진 친구이자 [[한양대학교]] 동기인 [[박찬호]]의 자서전을 보면, 청소년 야구선수권 대회가 끝난 뒤 차명주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차명주가 혼자 방을 썼고 방 안에는 침대와 VTR, 24인치 텔레비전[* 당시는 집에 [[냉장고]]와 [[텔레비젼]]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시절이다.]이 있었다고 한다. * 프로 데뷔때부터 탈모의 조짐과 더불어 상당한 노안이었다. 신인 시절의 사진을 보면 20대 초중반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액면가를 자랑했다. 바로 위 날아라 홈런왕 사진도 2009년 사진으로 당시 나이는 '''만 35세'''였다. == 연도별 주요 성적 == ||<-17><table align=center><bgcolor=#000000> {{{#ffffff 역대 기록}}} || ||<rowbgcolor=#d2d2d2,#2d2d2d> {{{#000000,#e5e5e5 연도}}} || {{{#000000,#e5e5e5 소속팀}}} || {{{#000000,#e5e5e5 경기수}}} || {{{#000000,#e5e5e5 이닝}}} || {{{#000000,#e5e5e5 승}}} || {{{#000000,#e5e5e5 패}}} || {{{#000000,#e5e5e5 세}}} || {{{#000000,#e5e5e5 홀}}} || {{{#000000,#e5e5e5 승률}}} || {{{#000000,#e5e5e5 ERA}}} || {{{#000000,#e5e5e5 피안타}}} || {{{#000000,#e5e5e5 피홈런}}} || {{{#000000,#e5e5e5 4사구}}} || {{{#000000,#e5e5e5 탈삼진}}} || {{{#000000,#e5e5e5 실점}}} || {{{#000000,#e5e5e5 자책점}}} || {{{#000000,#e5e5e5 WHIP}}} || || 1996 ||<|3> [[롯데 자이언츠|롯데]] || 27 || 46 || 2 || 5 || 8 || - || 0.286 || 7.43 || 57 || 4 || 34 || 29 || 43 || 38 || 1.935 || || 1997 || 25 || 107⅔ || 7 || 9 || 0 || - || 0.438 || 4.68 || 124 || 8 || 58 || 64 || 65 || 56 || 1.663 || || 1998 || 33 || 92 || 0 || 7 || 0 || - || 0.000 || 4.99 || 95 || 13 || 40 || 41 || 61 || 51 || 1.457 || ||<rowbgcolor=#131230> {{{#ffffff 연도}}} || {{{#ffffff 소속팀}}} || {{{#ffffff 경기수}}} || {{{#ffffff 이닝}}} || {{{#ffffff 승}}} || {{{#ffffff 패}}} || {{{#ffffff 세}}} || {{{#ffffff 홀}}} || {{{#ffffff 승률}}} || {{{#ffffff ERA}}} || {{{#ffffff 피안타}}} || {{{#ffffff 피홈런}}} || {{{#ffffff 4사구}}} || {{{#ffffff 탈삼진}}} || {{{#ffffff 실점}}} || {{{#ffffff 자책점}}} || {{{#ffffff WHIP}}} || || 1999 ||<|5> [[두산 베어스|두산]] || '''{{{#ff0000,#ff0000 83}}}''' [br] (1위) || 76⅓ || 1 || 2 || 1 || - || 0.333 || 4.01 || 84 || 4 || 37 || 60 || 38 || 34 || 1.572 || || 2000 || 57 || 40 || 1 || 1 || 1 || 2 || 0.500 || 4.50 || 44 || 5 || 32 || 33 || 30 || 20 || 1.825 || || 2001 || '''{{{#ff0000,#ff0000 84}}}''' [br] (1위) || 97⅓ || 6 || 2 || 1 || '''{{{#ff0000,#ff0000 18}}}''' [br] (1위) || 0.750 || 3.42 || 86 || 6 || 49 || 73 || 42 || 37 || 1.356 || || 2002 || '''67''' [br] (5위) || 51⅓ || 1 || 2 || 1 || '''{{{#ff0000,#ff0000 17}}}''' [br] (1위) || 0.333 || 3.86 || 46 || 4 || 19 || 37 || 23 || 22 || 1.247 || || 2003 || '''77''' [br] (4위) || 31 || 1 || 1 || 0 || '''{{{#ff0000,#ff0000 16}}}''' [br] (공동 1위) || 0.500 || 4.35 || 28 || 0 || 17 || 14 || 18 || 15 || 1.419 || ||<rowbgcolor=#ff6600> {{{#ffffff 연도}}} || {{{#ffffff 소속팀}}} || {{{#ffffff 경기수}}} || {{{#ffffff 이닝}}} || {{{#ffffff 승}}} || {{{#ffffff 패}}} || {{{#ffffff 세}}} || {{{#ffffff 홀}}} || {{{#ffffff 승률}}} || {{{#ffffff ERA}}} || {{{#ffffff 피안타}}} || {{{#ffffff 피홈런}}} || {{{#ffffff 4사구}}} || {{{#ffffff 탈삼진}}} || {{{#ffffff 실점}}} || {{{#ffffff 자책점}}} || {{{#ffffff WHIP}}} || || 2004 ||<|3> [[한화 이글스|한화]] || 32 || 14⅔ || 0 || 1 || 0 || 11 || 0.000 || 2.45 || 14 || 0 || 8 || 11 || 5 || 4 || 1.364 || || 2005 || '''{{{#ff0000,#ff0000 77}}}''' [br] (1위) || 33⅔ || 4 || 1 || 0 || 12 || 0.800 || 5.88 || 46 || 3 || 13 || 17 || 23 || 22 || 1.634 || || 2006 || 51 || 22 || 3 || 0 || 0 || 4 || 1.000 || 3.27 || 20 || 1 || 7 || 11 || 11 || 8 || 1.136 || ||<-2><bgcolor=#ffff88><color=#373a3c> '''[[KBO 리그|KBO]] 통산''' [br] (11시즌) ||<rowbgcolor=#ffffff,#191919> 613 || 612 || 26 || 31 || 12 || 80 || 0.456 || 4.51 || 644 || 48 || 314 || 390 || 359 || 307 || 1.528 || [각주] [[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73년 출생]][[분류:1996년 데뷔]][[분류:2006년 은퇴]][[분류:투수]][[분류:좌완 투수]][[분류:좌투좌타]][[분류:롯데 자이언츠 은퇴/이적]][[분류:두산 베어스 은퇴/이적]][[분류:한화 이글스 은퇴/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