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신라왕릉)] [include(틀:경주시의 관광)] ||<tablewidth=360><tablealign=right><bgcolor=#fff><tablebordercolor=#315288>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사적|{{{#f39100 대한민국의 사적}}}]]''' '''{{{#f39100 제177호}}}''' || ||<bgcolor=#315288> {{{+1 {{{#fff '''진흥왕릉'''}}}}}} {{{-1 {{{#fff 眞興王陵}}}}}} {{{-1 {{{#fff }}}}}} || ||<bgcolor=#fff> {{{#!wiki style="margin: 0 -12px; border-right: 2px solid transparent; border-left: 2px solid transparent"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px; margin-top: -6px; margin-bottom: -5px" ||<tablewidth=100%><tablebgcolor=#315288><width=22%> '''{{{#fff 소재지}}}''' ||<bgcolor=#fff>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 산92-2번지 || || '''{{{#fff 분류}}}''' ||<bgcolor=#fff> 유적건조물/무덤 || || '''{{{#fff 면적}}}''' ||<bgcolor=#fff> 50,148㎡ || || '''{{{#fff 지정연도}}}''' ||<bgcolor=#fff> [[1969년]] [[8월 27일]] || || '''{{{#fff 제작시기}}}''' ||<bgcolor=#fff> [[신라]] || ||<-2> '''{{{#fff 위치}}}''' || [include(틀:지도, 장소=, 너비=360)]}}}}}}}}} || [[파일:external/www.gyeongjuimage.or.kr/w_%EC%A7%84%ED%9D%A5%EC%99%95%EB%A6%89.jpg]] 眞興王陵 [[대한민국의 사적|사적]] 제177호 [목차] == 개요 ==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신라]] 제24대 국왕 [[진흥왕]] 김삼맥종의 능이다. == 상세 == [[삼국사기]]에 의하면 승하한 뒤 애공사(哀公寺) 북쪽 봉우리에 장사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진흥왕은 신라의 전성기를 열어서 비중이 높은 왕으로 전국 각지에 [[크고 아름다운]] [[진흥왕 순수비]]까지 남아 있는 왕인데도, 남긴 업적과 위상에 맞지 않게 왕릉은 위 사진으로도 알 수 있듯 매우 작다.[* 물론 상대 [[신라왕릉]]치고는 작다는 것이지 [[조선왕릉]] 등 후대 시대의 왕릉이나 일반인들의 무덤에 비하면 봉분은 큰 편이다.] 다만 이 고분이 한동안 잊혀져 있다가 문성왕릉으로 비정된 것은 조선시대에 김씨 문중에 의해서 된 것으로, 현재 이 고분이 조선시대에 진흥왕릉으로 비정된 이후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지정됐긴 하지만, 대부분의 신라 왕릉이 그렇듯 진짜 진흥왕릉이라고 확실시되는 건 아니고 추정하는 정도다. 아무리 봐도 기록에 남은 진흥왕의 위상에 맞지 않는 초라한 무덤이라는 이유로 근처에 있는 [[서악동 고분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거대한 고분이 바로 진흥왕릉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진흥왕과 진지왕이 [[태종 무열왕]]의 직계 조상이므로 무열왕릉 바로 위쪽에 있다는 것도 맞아떨어지기도 한다. 조선시대 추사 [[김정희]]도 저서 《신라진흥왕릉고》(新羅眞興王陵考)에서 [[무열왕릉]] 위에 있는 서악동 고분 4기를 진흥왕, [[진지왕]], [[문성왕]], [[헌안왕]]의 능으로 추정했는데, 이 김정희의 추정은 진흥왕릉 앞의 안내판에도 써 있다. [[파일:Seoakdong.jpg]] 이것이 [[서악동 고분군]]의 모습. 이 정도로 거대한 규모면 신라에서 가장 중요한 왕의 왕릉이라 보기에도 무리가 없는데다 서악동 고분군 가장 아래쪽 [[무열왕릉]]과의 관계나 배치를 생각해보면 신빙성이 있긴 하지만, 아무튼 근현대에 공식적으로 진흥왕릉으로 지정된 것은 위쪽의 고분이다. 왕릉 아래쪽에 [[대한민국의 보물]] 제65호 서악동 삼층석탑이 있는데 원래는 이 자리에 왕릉을 지키는 원찰이 있었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석탑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분류:신라왕릉]][[분류:대한민국의 사적]][[분류:경상북도의 무덤]][[분류:경주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