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rokps.or.kr/575.jpg|width=150]] 陳馨夏 1907년 3월 11일 ~ 1985년 1월 03일 [[대한민국]]의 전 법조인, [[정치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907년 [[충청남도]] 회덕[[군(행정구역)|군]](현 [[대전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일본]] [[주오대학]] 법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였다. [[일제강점기]] 말기 [[조선인]]으로는 드물게 대전지방법원 부장[[판사]]까지 올랐다. [[8.15 광복]] 후에는 변호사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남도 대전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성낙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충청남도 대전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김종열]]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5년 [[민주당(1955년)|민주당]] 창당에 참여하고 충청남도당 대표최고위원에 선출되었다. 이후 민주당에서 구파에 속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충청남도 대전시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연말 민주당 구파 출신 정치인들과 민주당을 탈당하여 [[신민당(1960년)|신민당]]을 창당하였다. 1963년 민주당 구파 출신 정치인들과 민정당 창당에 참여하고 충청남도지부 위원장이 되었다. 같은 해 치러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로 충청남도 대전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박병배]]에 [[신민당(1967년)|신민당]] 공천에서 밀리자 [[한국독립당#s-6]]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신민당 박병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일제강점기 말기 부장판사를 역임한 경력으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법조인 부분에 수록되었다. [[분류:법조인 출신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대전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사법]][[분류:1907년 출생]][[분류:1985년 사망]][[분류:고등문관시험 출신]][[분류:주오대학 출신]][[분류:제4대 국회의원]][[분류:제5대 민의원의원]][[분류:제6대 국회의원]][[분류:민주당(1955년) 국회의원]][[분류:신민당(1960년) 국회의원]][[분류:민정당 국회의원]][[분류:민중당(1965년) 국회의원]][[분류:신민당(1967년)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