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신라왕릉)] [include(틀:경주시의 관광)] ||<tablewidth=360><tablealign=right><bgcolor=#fff><tablebordercolor=#315288>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사적|{{{#f39100 대한민국의 사적}}}]]''' '''{{{#f39100 제517호}}}''' || ||<bgcolor=#315288> {{{+1 {{{#fff '''진지왕릉'''}}}}}} {{{-1 {{{#fff 眞智王陵}}}}}} {{{-1 {{{#fff }}}}}} || ||<bgcolor=#fff> {{{#!wiki style="margin: 0 -12px; border-right: 2px solid transparent; border-left: 2px solid transparent"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px; margin-top: -6px; margin-bottom: -5px" ||<tablewidth=100%><tablebgcolor=#315288><width=22%> '''{{{#fff 소재지}}}''' ||<bgcolor=#fff>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 산92-1번지 || || '''{{{#fff 분류}}}''' ||<bgcolor=#fff> 유적건조물/무덤 || || '''{{{#fff 면적}}}''' ||<bgcolor=#fff> 411㎡ || || '''{{{#fff 지정연도}}}''' ||<bgcolor=#fff> [[2011년]] [[7월 28일]] || || '''{{{#fff 제작시기}}}''' ||<bgcolor=#fff> [[신라]] || ||<-2> '''{{{#fff 위치}}}''' || [include(틀:지도, 장소=, 너비=360)]}}}}}}}}} || [[파일:external/www.gyeongjuimage.or.kr/w_IMG_3698.jpg]] 眞智王陵 [[대한민국의 사적|사적]] 제517호[* 원래 문성왕릉과 함께 사적 제178호 '신라진지문성왕릉'으로 지정했었는데, 2011년에 문성왕릉을 따로 떼고 진지왕릉을 517호로 재지정했다.] [목차] == 개요 ==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신라]] 제25대 국왕 [[진지왕]] 김사륜의 능이다. == 상세 == [[진지왕]]은 비록 [[폐위]]당했다고는 하지만 결국 왕위는 돌고 돌아 [[손자]] [[김춘추]]가 [[태종 무열왕]]에 즉위했고 그 왕통이 신라 중대 내내 이어졌는데, 그런 위상에 맞지 않게 진지왕릉은 위 사진으로도 알 수 있듯 매우 작다.[* 물론 상대 [[신라왕릉]]치고는 작다는 것이지 [[조선왕릉]] 등 후대 시대의 왕릉이나 일반인들의 무덤에 비하면 봉분은 큰 편이다.] 사실 아버지이자 정복왕인 [[진흥왕릉]]이 의외로 소박하게 조성됐기 때문에 진지왕도 거기에 따라 작게 만들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 다만 이 고분이 한동안 잊혀져 있다가 문성왕릉으로 비정된 것은 조선시대에 김씨 문중에 의해서 된 것으로, 현재 이 고분이 조선시대에 진지왕릉으로 비정된 이후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지정됐긴 하지만, 대부분의 신라 왕릉이 그렇듯 진짜 진지왕릉이라고 확실시되는 건 아니고 추정하는 정도다. 여기가 아니라 근처에 있는 서악동 고분군이 바로 아버지 [[진흥왕]]과 진지왕 등의 능역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진흥왕과 진지왕이 [[태종 무열왕]]의 직계 조상이므로 [[무열왕릉]] 바로 위쪽에 있다는 것도 맞아떨어지기도 한다. 조선시대 추사 [[김정희]]도 저서 《신라진흥왕릉고》(新羅眞興王陵考)에서 [[무열왕릉]] 위에 있는 서악동 고분 4기를 [[진흥왕]], 진지왕, [[문성왕]], [[헌안왕]]의 능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파일:Seoakdong.jpg]] 이것이 [[서악동 고분군]]의 모습. 서악동 고분군 아래쪽 [[무열왕릉]]과의 관계나 배치를 생각해보면 신빙성이 있긴 하지만, 아무튼 근현대에 공식적으로 진지왕릉으로 지정된 것은 위쪽의 고분이다. 왕릉 아래쪽에 [[대한민국의 보물]] 제65호 서악동 삼층석탑이 있는데 원래는 이 자리에 왕릉을 지키는 원찰이 있었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석탑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분류:신라왕릉]][[분류:대한민국의 사적]][[분류:경상북도의 무덤]][[분류:경주시]]